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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빨래터'  민중의 삶 속의 문화 정말 소중한데..
그리운 '빨래터' 민중의 삶 속의 문화 정말 소중한데.. ⓒ 송유미

 

'손빨래'가 취미라고 말하면 웃을까. 그러나 '일'은 고달픈 구석이 없지 않지만, '취미'삼아 빨래를 하면, 빨래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희열이 있다. 갖은 시집살이 속에서도 빨래만은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하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일부러 손빨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취미가 됐다. 취미로 빨래를 하고 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러나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내 이런 모습을 보시면 "수돗물 많이 든다"고 나무라실 것이다. 물 한 방울도 쌀 한톨과 같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세대에는 시냇가와 강가, 동네 개천에 빨래터가 많았다.
 
그 흔했던 '빨래터'를, 이젠 어디 가야 볼 수 있나 싶은데 내가 유독 좋아하는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기사를 접하는 순간, 가슴이 쿵쿵 빨래방망이 소리를 내며 뛰었다. 아, 문화재란 것은 우리 삶 속에 있는 것인데 그 문화재를 현실의 주위에서 찾을 수가 없으니…. 예술 작품 속에 '빨래터'를 문화재로 삼은 것일까. 물론 그건 아닐테지만, 그 그림 값 정말 귀한 만큼 비싸다.  
 
박수근 화백의 비싼 '빨래터'처럼 이제는 정말 귀해서 더욱 소중한 사라진 빨래터. 시골을 찾아가도 그 정겨운 빨래터를 만나기 쉽지 않을 터다. 내 유년의 기억을 풍부하게 해주던 동네 공동 빨래터, 그 빨래터의 즐거웠던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들은 감물이 든 것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졸졸 물소리들이 재잘거리며 흐르는 맑은 계곡에서, 왁자하게 빨래하던 냇가에서, 물장구치고 가재를 잡던, 그 빨래터 정말 그립다. 
 
외할머니는 이남 땅에 이주해 와서 사는 막내딸을 보러 오셨다가, 6·25 전쟁 때문에 영영 외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실 수 없는, 한(恨)의 세월을 살다가셨다.
 
외할머니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지만, 지혜로운 분이셨는데, 너무 부지런해서 어머니가 걱정하셨던 분이셨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 계신 모습을 보질 못했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엄마 대신, 집안을 돌보며, 동네 소대사에도 빠지지 않던 할머니. 할머니의 손이 닿는 가재도구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서, 주위 분들이 할머니의 손을 '황금의 손'이라고 불렀다.
 
외할머니의 빨래는 38선의 경계를 지우는 물소리
 
왼쪽이 외할머니이시다. 함경북도 이산가족 동향 모임 한때
왼쪽이 외할머니이시다.함경북도 이산가족 동향 모임 한때 ⓒ 송유미
그런 외할머니가 즐겁게 콧노래를 부르시며 하셨던 일은 빨래였다. 제법 먼 빨래터까지, 매일 출근하시듯이 무거운 빨래감을 이고 갔다 돌아오셔도 힘든 표정 짓지 않고 도리어 흐뭇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시며, '빨래 하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좋아…'하시던 그 말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집안에서 빨래 하실 때는 수돗물을 아끼신다고, 아버지 옷은 항상 먼저 씻으시고, 그 헹군 물에다 검은 빨래와 걸레 등을 빨고, 비가 오면 빗물을 그릇그릇 받아 허드레 빨래를 하셨다. '사위는 백년 손님이다'는 속담처럼 사위인 아버지가 할머니를 아들처럼 잘 모셔도, 늘 외롭고 쓸쓸한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던 외할머니.
 
그래도 왁자한 빨래터에 나오시면, 함께 웃고 떠드는 그 이웃들의 위안에 그 뼛속을 스미는 고독과 쓸쓸함을 얼마간이나마 위로 받으셨을 것이다. 평생 갈수 없는 나라처럼 북에 계신 외할아버지에 대한 말못할 그리움을 안고 살다가신, 그 아무도 모르는 외할머니의 유일한 즐거운 취미는 빨래였구나… 생각하니 정말 눈물 난다.  
 
탕탕 꽁꽁 언 물을 빨래방망이로 두드려 깨던 그 빨래 방망이 소리 오늘 따라 이명처럼 크게 들린다. 뒷마당에 가득 널린 아기 동생의 기저귀 사이로 뛰어다니던 일이 새삼 그립다. 요즘은 가까운 슈퍼에 나가면 일회용 아기 기저귀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어서 아기가 있는 이웃집에도 기저귀 빨아 너는 모습 보기 힘들다. 아기 기저귀가 마치 꿈의 깃발처럼 나부끼던 그리 오래지 않았던 동네 골목길의 풍경이 흑백 풍경으로 떠오른다.      
 
아버지 검은 작업복 걸린 빨랫줄 쳐다 본다.
뚝뚝 파란 잉크물이 강빛처럼 흘러내린다.
식구들 구멍 난 헌 양말짝도
몇 개 씩이나 음표처럼 걸려 있는
낡은 오선지 같은 빨랫줄.
더러 텅빈 허공에 걸려
잠자리 떼 놀다가고 
개구장이 동생이
오줌으로 그린 물 그림엔,
바다 그리운 섬 조각
낮달을 닮아간다.
할머니 언 손으로
탕탕 빨래방망이로
얼음장 깨서 남루를 빨던
그해 겨울 강물소리 
차디찬 가슴 밑장을 흐른다. - 자작시 '빨래'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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