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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훈 중위.
 고 김훈 중위.
ⓒ 오마이뉴스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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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1998년 2월 24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그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241GP 3번 벙커에서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판문점 경비대대 소대장 김훈 중위(당시 25·육사 52기)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군 당국은 즉각 "김 중위가 자신의 권총으로 머리를 쏴 현장에서 자살했다"고 발표한다. 처음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은 거의 없었다. 단지 묘한 시점, 묘한 장소에서 발생한 이 묘한 사건에 대해 다음날 신문들은 대통령 취임식 기사 말미에 조그맣게 보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김훈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적어도 유족과 이 사건에 의혹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있어 이 사건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 싸움인 것이다.

군 당국의 엉성한 수사가 '의문사' 만들다

유족을 비롯한 우리(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이처럼 김훈 중위 사망 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도 군 당국이 발표한 사고 경위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철모'가 그렇다. 김 중위가 사망한 현장에서 철모가 발견되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군 당국은 애초 이 철모의 존재 사실을 우리에게 숨겼다.

이후 극적인 계기를 통해 우리 측이 이 철모를 확인하게 되자 나온 군 당국의 해명은 이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밀어넣었다. 군 특조단 측의 해명은 김훈의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도착한 미 군의관이 자신의 철모를 벙커에 실수로 놓고 나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문제의 미 군의관과 함께 근무했던 위생병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현장에서 발견된 철모는 군의관 것이 아니라는 증언을 확보했으며, 특히 사건 당시 사고 벙커 앞을 지키던 사병의 증언을 통해 특조단의 발표는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군 수사단은 김훈이 자신의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하였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은 같은 소대 다른 사병의 권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밝혀낸 것은 유족이었다.

이렇다 보니 군 당국의 수사발표를 유족이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지 않은가.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 "김훈 사인은 타살"

 지난 2005년 2월 24일 오후 고 김훈 중위 추모 미사가 열린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교육실.
 지난 2005년 2월 24일 오후 고 김훈 중위 추모 미사가 열린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교육실.
ⓒ 오마이뉴스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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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족과 군 당국 사이에서 사인에 대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던 98년 9월경. 김훈 중위 사건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재미 법의학자인 노여수 박사의 법의학적 소견이었다.

당시 노 박사는 미국에서 8000여 건에 이르는 사체를 부검했고, 특히 권총 자살 및 타살 사건에 대한 시신 1000여 구를 부검한 30년 베테랑 법의학자였다. 노 박사는 김훈 중위가 타살되었다는 11가지의 근거를 제시하며 국방부의 기존 발표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훈 중위가 몸부림 중에 오른쪽 손에 찰과상을 입고 머리 위를 얻어맞았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김 중위는 뇌진탕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고 권총 자살의 일반적인 위치인 오른쪽 측두부에 총알을 맞았다. 그러나 총상입구와 머리 속에 생긴 총알의 진행방향은 권총 자살 때 생기는 총상의 특성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우울증을 겪지 않았다는 점, 이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없다는 점, 권총에 지문이 묻어있지 않다는 점, 자살쪽지가 없었다는 점, 총을 쓰는 손에 발사된 탄환 잔여물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점 등은 더욱 더 자살에 의한 죽음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준다."

이 같은 노여수 박사의 새로운 법의학적 소견이 98년 9월 10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보도되면서 국민들 속에서 김훈 중위 사망 의혹은 증폭되었다.

새로운 폭로가 불러온 의혹... 그러나 특조단은 사기단?

그러던 98년 12월 3일. 당시 판문점 경비대대의 부소대장이 공동경비구역인 JSA 근무 중 북한군과 접촉하기 위해 수차례 휴전선을 넘나들었다는 폭로가 국회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남북을 넘나들었던 그 부소대장이 그동안 자·타살 논쟁의 주인공이었던 김훈 중위 소대의 부소대장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언론은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고,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국방부였다.

98년 12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방부에 특별 지시를 내렸다. 국방부 창군 이래 군대 내 사망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 사상 유례가 없는 '특별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이 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당시 국방장관은 국회 답변을 통해 "유가족과 언론이 제기하는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히면서 동시에 "80년 이후 군내 의문사에 대해서도 모두 수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제야말로 모든 의혹이 속시원하게 규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우리는 출렁거렸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가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는 데는 불과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특별 합동조사단에 걸었던 우리의 기대는 순진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특조단을 구성하여 재수사하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의도는 "많은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타살 의혹에 대해 정확하게 '해명'하라"는 지시였음을 알게 된 것은 얼마 후였다. 그것은 정말 큰 차이였다. 진상 규명이 아닌 기존 의혹에 대한 '해명'을 위주로 조사가 진행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예상처럼 특조단의 조사는 중립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채 진행되었다. 약속했던 조사 과정의 공정함과 투명성 역시 전혀 충족되지 않은 채 특조단의 실망스러운 행보는 계속되었다. 우리의 기대는 처절하게 무너졌으며 고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99년 1월 14일 개최된 법의학자 토론회에서 항변하다 개처럼 끌려나오는 것뿐이었다. 참담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씁쓸한 기억이다.

나는 아직도 진실에 목마르다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 공식 포스터 /2004/ DV/ Color/ 105min/김희철
 다큐멘터리 영화 <진실의 문> 공식 포스터 /2004/ DV/ Color/ 105min/김희철
ⓒ 김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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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김훈 중위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의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 사이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법정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김훈 중위의 육사 후배인 김희철 다큐멘터리 감독이 김훈 중위의 사망 의혹을 담은 영화 <진실의 문>을 제작, '나도 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는 외침을 담아 의문사 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훈은 자신이 죽은 지 10년째인 현재도 편안한 안식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의 유골은 벽제 군 병원의 허름한 창고에서 자신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달라고 외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우리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이 사건의 진실을 다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어떤 경위로 떠나갔는지 그 이유를 알려달라는 김훈 중위 유족들의 외침에 제대로 귀 기울여주는 인권정부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것이 바로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갔다가 자식을 잃은 유족들에게 국가가 해 주어야 할 또 다른 '신성한 의무'가 아니겠는가.

"지난 세월동안 모든 것을 바쳐 진실을 찾아 헤매면서 군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을 느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3성 장군으로서 국가 안보에 평생을 바친 우리 가족조차 이럴진대 군에 보낸 자식이 의문사 당한 일반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며 그동안 쓰러지려는 나를 추슬러 왔다. 타살이라는 사실이 밝혀져도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폐와 조작에 의해 진실이 죽는 것을 본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진실을 위해 나는 끝까지 싸우겠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온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중장의 진상규명을 위한 지난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김훈 중위 추모 10주년 행사 잇달아

 김훈 중위의 사망 의혹을 담은 다큐 영화 <진실의 문> 첫화면.
 김훈 중위의 사망 의혹을 담은 다큐 영화 <진실의 문> 첫화면.
ⓒ 고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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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유족과 김훈 중위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사후 10주년을 맞아 조촐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먼저 김훈 중위의 사망 의혹을 담은 다큐 영화 <진실의 문>을 서울 명동 소재 중앙시네마 극장 2층 인디스페이스에서 2월 23일(토, 오후 4시)과 24일(일, 낮 12시 30분)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무료로 상영하기로 했다.

또한 23일(토) 오후 6시에는 김훈 중위의 10주기 추모제를 천주교 인권위원회(02-777-0643) 주관으로 명동에 위치한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경당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영원한 청년 장교' 김훈 중위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1998년 2월 24일 판문점에서 의문 사망한 고 김훈 중위 사건 발생 당시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이 사건의 진정을 유족에게 받아 이후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하였고, 이후 결성된 국방부 특별합동조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면서 알게된 사실을 기초로 작성했습니다.

* 고상만 기자는 현재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있습니다.



#고상만#김훈 중위#판문점#진실의 문#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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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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