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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동안 우리 곁을 지켜주던 숭례문이 지난 10일 독 품은 늙은이에 의하여 한 줌의 재로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숭례문이 불타기 전에 벌써 하인리히법칙의 의한 많은 징조가 있었지만 우리는 애써 외면하였다.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지나쳤던 숭례문, 늘 그 자리에 있어도 우리는 보지 못하였고, 우리를 향해 늘 이야기하였건만 우리는 듣지 못하였고, 여러 가지 징조를 보이며 경고를 하였지만 우리는 깨닫지 못한 가운데 드디어 숭례문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스스로 몸을 태웠다. 하늘이 내리는 엄중한 메세지를 전하기 위하여,

 

그러나 인간들은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기 보다 하루빨리 감추고 회피하고 빨리 잊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어리석다고 늘 생각하던 국민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왜 감추느냐고, 왜 방치했느냐고, 왜 지켜내지 못했냐고 면도칼보다 더 날카롭게, 가시보다 더 아프게, 질책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숭례문이 불탄지 9일째인 오늘(19일)도 전국에서 많은 시민들이 몰려와 애도의 꽃한송이를 바친다.

 

애도의 물결이 한 곳으로 모여 '숭례제'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18일부터 각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 단체가 가지고 있는 특기로 숭례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 숭례제의 중심에는 이 시대의 춤꾼 이귀선 선생이 있다. 우주의 창조를 나타내는 율려를 춤으로 표현한 율려춤의 대가, 이 시대의 진정한 춤꾼이며 무당이라고 할 수 있는 이귀선 선생의 춤은 수많은 관중들을 압도하고, 모두의 정신을 율려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조용하게, 앙큼하게, 황홀하게, 능청맞게, 그리고 격정적이며 절도 있는 그녀의 춤은 바로 율려의 표출이었으며, 소리와 진동이 만들어 낸 태초의 파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저마다 자기의 주장과 색깔을 드러내느라 한 곳으로 시선이 집중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저기서 틀어놓은 확성기 소리며, 군데군데 다투는 소리 등은 어느 시골 상가집의 풍경 같아 나름대로 좋았다.

 

무속을 전공한 사람으로 숭례제에 참가하는 무교인이 하는 굿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숭례문의 화재 현장으로 적당한 주제를 가진 굿을 하지 못하고 대중들이 좋아하고 인기 있는 작두거리 같은 굿은 진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숭례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부디 내일(20일)은 우리 굿의 깊이와 포용력, 그리고 호소력과 흡인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예술성있는 굿판이 될 수 있기를 오우열, 오광우 두 분에게 부탁하여 본다.


#숭례문,#화재, 국보, 문화재#굿, 무당#작두, 상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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