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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다 보면 차도로 불쑥불쑥 뛰어드는 노인들 때문에 식겁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찔한 사고 순간에 나도 모르게 "아니 저 노인네가 미쳤나?"하는 막말을 하며 콧김을 씩씩 불기도 하지만 시골 국도, 특히 노인 천하의 면 소재지 같은 번화가에서는 운전을 각별히 조심하는 편이다.

 

공간과 지각 개념이 없는, 대책 없는 노인들 문제가 남의 집 이야기인 줄만 알았더니 바로 내 집 이야기였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부모님이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큰 소리로 말다툼을 벌이시는데 아버지의 무단횡단이 발단이었다.

 

"아니 늙은이가 남의 집 자식 잡을 일 있어? 빨간 불 켜져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무턱대고 건너면 어떡하겠다는 거야. 남들 죄다 서있는 것도 안 보여요? 도대체 정신은 어디다 두고 있는지, 아이고 못 살아…."

 

마나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바보처럼 멀거니 서 있는 아버지가 딱해 어찌 된 영문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한숨을 쉬며 하시는 말씀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차도로 뛰어드시더라는 것이다.

 

미처 붙잡을 새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시는 아버지 앞에서 차들이 급정거를 했고, 급기야 창문을 내린 한 젊은 운전자한테 "늙은이가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하는 험한 욕지거리까지 얻어들었다는 것이다.

 

제 앞의 것만 볼 줄 아는 서너 살배기 꼬마나 앞뒤를 살피지 못하는 노인들이나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치매기 있는 노인처럼 정신이 없는 아버지를 보니 한숨만 나오는데, 아버지의 이런 행동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엄마 말씀이 더더욱 머리를 아프게 한다.

 

"옷도 제대로 못 입는단다. 조끼 위에 내복을 입질 않나, 점퍼 위에 티를 끼워 넣질 않나…, 어디 나가려면 옷 입혀줘야지, 신발 찾아줘야지 나까지 준비하려면 한나절이 걸린다니까."

 

단순 '주의력 결핍'이 아닌 아버지, 이제 어쩌나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쉬지 않고 아버지를 구박하는 엄마 모습이 보기 싫었는데 속사정을 듣고 보니 엄마의 울화통이 십분 이해되기도 했다. 하긴 오늘 아침에도 아버지 때문에 나까지 '민방위 훈련'을 하는 소동을 벌였으니.

 

오전 7시도 안 됐을 시각이었는데 내 방에 슬그머니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그러더니 긴 대걸레로 쓱쓱 방바닥을 문지르시다가 내가 자고 있는 요 밑까지 대걸레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기척에 놀라 벌떡 일어나보니 이 사단이 벌어졌는데도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청소에 열중하고 계셨다.

 

"아버지 아침부터 청소하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도 멀뚱히 쳐다보시더니 다시 아무 말 없이 대걸레질을 하시는데,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양반이 이제 사고와 감각기능이 망가져 버렸구나. 오랜 세월 앓던 당뇨 합병증이 뇌신경을 손상시킨 것이 틀림없었다.

 

식사 중에 국물을 줄줄 흘린 것은 오래 전 이야기고 지금은 가끔 바지에도 실례를 하시는 것 같았다. 날짜를 보는 데도 글자 빼곡한 달력 글씨는 못 보고 휴대전화를 열어 확인하시고 TV를 켜놓고는 그 앞에서 냅다 졸기 일쑤였다.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느냐"고 닦달을 하며 영감님을 혼내는 엄마한테 "그러셔 봤자 소용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가 주의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뇌 조직이 파괴돼 그런 것이니 환자이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엄마는 앞이 캄캄하신 표정이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영감님 수발이 온전히 당신 몫인데 24시간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언제 어느 때 사고를 칠지 모르는 영감님을 무슨 수로 보호한단 말인가.

 

엄마 앞에서 나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자식 된 도리로 말하자면 팔십이 다 돼 가시는 엄마 고생을 덜어드리겠다고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 선뜻 약속을 하기가 겁이 났다. 나중에 아버지 상태가 더 심해지면 무슨 수를 낼 수밖에 없겠지만 부모님을 생각해 시골집 버리고 수도권으로 올라온다는 것은 내게 감옥생활과 다름없는 일이니.

 

혀 차며 한심해하지 마시길, 우리도 곧 저와 같을테니

 

시속 30~40㎞로 달렸기에 망정이지 속도라도 더 냈으면 사고 나기 딱 알맞던 순간들. 시골 국도 혹은 번잡한 면 소재지 도로에서 나를 진땀나게 하고 열 뻗치게 했던 정신없는 어른들이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가슴만 아프다.

 

가뜩이나 주의 집중이 약한 노인들에게 갓길조차 없는 시골 국도는 살인도로와 다름이 없는 형편이다. 차량이 적은 국도의 속성상, 주행하는 차들이 시속 60㎞를 지킬 리 없다. 가까운 이웃 마을은 주로 걸어다니시는데 마을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어른들이 한두 분이 아닌 실정이다.

 

우리 마을도 노환으로 사망하시는 분보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시는 분이 더 많은데 작년에는 예순 중반의 마을 아저씨가 약주 잡숫고 거나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오다 차에 치여 돌아가시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겪어봐야 안다고 우리 아버지를 보니 노인 문제가 현실로 다가온다. 어린아이를 보면 무조건 속도를 줄이듯 노인도 어린아이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하면 될 것 같다. 정상적으로 걷는 사람이라도 순식간에 몸을 돌려 차도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차량통행이 한산한 시골국도에서 사람을 만났을 땐 무조건 속도를 줄여주기를 말이다. 사람이 없을 때 속도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사람이 걷고 있을 땐 최대한 저속운행을 해주기를 신신당부한다.

 

횡단보도 신호등 색깔도 구별 못 하는 노인들이 있으니 갓길 없는 시골 국도는 오죽하랴. 어린아이나 노인들이나 바람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몸놀림이 불편하시면 집안에나 계실 것이지' 혀 차며 한심해하지 말고 젊은 우리가 이해하자. 수십 년 후면 우리도 저와 같을 텐데, 그 누군들 세월 비켜 갈 것이라 자신하겠는가.


#노인 교통사고#시골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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