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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원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서실장.
박지원 김대중 전 대통령(DJ) 비서실장. ⓒ 오마이뉴스 강성관

'금고 이상의 전과자 공천 배제' 기준에 걸려 공천심사조차 받지 못하게 된 박지원 전 장관(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비서실장)과 김홍업 의원(전남 무안·신안)이 7일 오후 나란히 공천심사 재심을 신청했다.

 

이 '공천심사 재심신청'의 수신은 '통합민주당 손학규-박상천 대표', 참조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다. 박 전 장관은 거기에 '재심신청 사유서'를 첨부했고, 김 의원은 알선수재 사건의 핵심 증인인 김성환씨의 양심고백을 담은 서한과 유언을 녹취한 녹취록을 첨부했다.

 

박 전 장관은 우선 재심신청 사유서에 "대북송금특검에서 남북교류협력법 등을 조사하던 중 현대로부터 150억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저를 기소했으나 수표추적 등으로 주변을 샅샅이 조사해도 아무런 물증이 나오지 않았고 결국 150억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그는 이어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은 법원의 무죄판결이 명백해지자 새로운 범죄혐의를 추가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고 결국 주변 언론인들의 계좌를 추적해 당시 6·15남북 정상회담 특별 수행원 모임인 주암회에서 홍보비로 전달한 일부를 발견해서 기소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사건은 '150억+1억원' 사건

 

박 전 장관 사건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150억+1억원' 사건이다. 이 가운데 현대비자금 150억원 뇌물 혐의는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및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의 무죄판결을 거쳐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나머지 1억원은 수표 추적을 통해서도 150억원의 증거를 찾지 못하자 '먼지 털이'를 한 것이다. 이 가운데 7천만원은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친목모임인 '주암회'의 간사인 손길승 SK 회장이 주암회 경비로 쓰라고 준 것이고, 3천만원은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이 "재임시절에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비서실장 퇴임 무렵에 수표로 준 것이다.

 

검찰이 수표 추적을 했을 당시 박 회장은 이미 말없는 고인이었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고인으로부터 받은 돈임을 시인했다. 공직자의 금품 수수는 어떤 명목으로선 합리화될 수 없지만, 상식적으로 뇌물이라면 손 회장이 '1억원'을 주지 7천만원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또 모르겠다, 뇌물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7천만원을 줬을지도. 어쨌건 손 회장으로부터 받은 7천만원은 6·15정상회담 홍보비 등으로 사용되었다.

 

결국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4억5000만달러 대북송금을 주도하고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현대상선에 4000억원 대출을 하게 한 혐의(남북교류협력법 및 외환관리법 위반·직권남용)와 손길승 회장 등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를 모두 뭉뚱그려 3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4개의 죄목을 병합 적용했을 뿐, 각각의 형량을 특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알선수재 1억원의 형량이 징역 3년의 몇 퍼센트(%)인지는 가늠할 길이 없다. 다만, 박 전 장관과 같은 사건에서 같은 죄목(남북교류협력법 및 외환관리법 위반·직권남용)으로 기소된 이기호 전 경제수석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것을 감안하면 대충 형량을 짐작할 수는 있겠다.

 

박지원 "인혁당 관계자 사형결정 판결문은 어떠했는가"

 

그러니 그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그도 "대북송금 특검에서 대북송금 관련 법률 위반사항을 조사를 하다가 알선수재 혐의가 추가되었지만 1억원의 수표 추적 결과 단 한 푼도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이 입증되었다"면서 "사건 전말이 이러한데 개인비리 및 부정인사 제외조항에 제가 포함되어 공천심사에서 배제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특히 "공심위에서 판결문을 기준으로 심사하였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 사법부 결정이 정치적 사건에 모두 공정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면서 "한 예로 인혁당 관계자들의 사형결정에 대한 당시의 판결문은 어떠했는지도 참조 할 사항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지난 3월 5일 '금고 이상 전과자 공천 배제 기준'을 전격 공개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인혁당사건 같은 것이 재발할 수 있다"면서 "일제 때 항일투사도 다 희생했지만, 지금은 국립묘지에 가 있다"고 지도층의 희생을 강조한 바 있다. 박 전 장관은 그에 대해 판사 출신인 박 위원장의 '오심' 가능성을 상기시킨 셈이다.

 

박 장관은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더욱 계승 발전해야 할 책무가 있는 민주당에서 통일을 위한 저의 희생이 폄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 제 책임을 다하다 희생되었던 저에게 당과 공심위는 재심사를 통해 억울한 사정을 풀어 주고 국민들로부터 직접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를 간곡히 기대한다"고 끝맺었다.

 

'재심' 청구하지 않은 것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보좌진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홍업 의원의 보좌진은 지금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 이번 '공천 배제' 사건의 재심청구를 뜻하는 게 아니다. 김홍업 의원 '알선수재' 사건의 재심청구를 말한다.

 

김홍업 의원은 지난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각종 이권청탁과 함께 수십억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 등으로 징역 2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천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되었다. 재판부는 또 김씨의 친구 김성환씨에 대해서는 징역 4년에 추징금 20억6000만원의 실형을 확정지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홍업씨가 비록 받은 돈의 액수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김성환씨로부터 금품수수 사실에 대해 보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직접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던 점에 비춰 받은 돈에 대한 공동정범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성환씨는 교도소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김홍업 의원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나중에는 검찰의 강압 수사압력을 못이겨 거짓자백을 했다며 양심선언 성격의 서한을 보낸 바 있다.  

 

그때 아들 홍업씨로부터 친구의 양심선언 편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시지탄이지만 잘 되었다"면서 "그것을 가지고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누명을 벗으라"고 권고했다.

 

김홍업 "친구의 약점을 잡아 죄를 뒤집어씌운 사건"

 

그러나 그때만 해도 김 의원에게 그 사건은 재판기록을 들춰보기도 싫을 만큼 "너무 억울하고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어서 주위에서는 재심 청구를 권유하지 못했다. 또 그때만 해도 김 의원이 정치를 하게 될 줄을 몰랐다. 그래서 지금 김 의원 보좌진은 김 전 대통령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라고 했을 때 했으면 '공천 배제'와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뒤늦게 한탄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 의원 역시 당에 접수한 '재심청구 사유서'에서 자신의 알선수재 사건이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사한 사건임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검찰은 시종일관 저에게 죄가 있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580여명을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과정에서 저의 혐의가 나오지 않자 저의 친구 중에 개인비리가 많은 김성환 등 몇몇의 약점을 잡아 회유 협박을 통해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건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김성환씨가 작고하기 이틀 전인 금년 2월25일 사실상 유언으로 육성을 남긴 것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제가 죄가 없고 검찰의 장기간 수사와 회유협박에 의해 검찰의 요구대로 진술하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반드시 그 당시의 정황이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고 회유와 협박에 의해 허위 진술을 했던 사람의 유언과 양심고백을 참조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친구 김성환씨가 죽기 이틀 전에 남긴 유언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김 의원이 민주당 공동대표와 박재승 위원장에게 보낸 김성환씨 유언 녹취록에 따르면,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처음에 조사받으면서 제가 '아, 이렇게 하면 곧 조사도 마무리된다니까…!'  그러한 어떤 단순한 마음에서 조사에 응하게 됐습니다. 근데 그 부분에서 제가 많은 부분을 제 친구인, 45년 친구인 김홍업 의원에게 많은 부분을 잘못 진술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김 회장(김홍업-편집자주)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제가 했다라고 시인한 부분도 있고. 그래서 나중에 쭉 제가 조사한 내용을 보니까 사실 사실하고 동떨어진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 이건 참, 사실과 다른데요.' 제가 몇 가지 부분에서 지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번 진술한 건데 뭘 또 두 번 번복하려고 그러냐, 번복은 안된다.' 이렇게 번복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김홍업 의원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이른바 '4대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이름이 거론되곤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이용호 게이트'다. 그러나 김성환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저를 불러서 40일 동안 조사하면서, 저는 이용호랑 일면조차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번도 못본 사람을 봤다고 그러면, '김 의원이 봤다, 안다라고 하면 구형을 15년에서 반으로 낮춰주겠다'고 갖은 회유를 제가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못본 사람을 어떻게 봤다고 그럽니까! 그래서 '아예 나를 죽여라!' 내가 그때 그랬습니다. 그 정도까지 내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오죽하겠습니까! 이용호는 제가 서울구치소에서 처음 봤습니다, 나중에. 그게 답니다. 이용호 사건에 그게 전부 답니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에서 받은 돈을 저하고 000하고 갖다가 쓴 돈을, 김홍업 의원이 사주를 해서 쓴 거라고 답변을 첨부해서 그건 아니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000하고 저하고 분명히 가져다 나눠 쓰고 김홍업 의원은 전혀 모르는 사실입니다. 이게 전부 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 계속 김홍업 의원을 갖다대면서 '김홍업 의원이 받아서 쓴 걸로 해라.' 이거 가지고 40일을 조사한 겁니다."

 

"이미 박재승 위원장의 손을 떠난 것이 아니냐"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 ⓒ 유성호

김성환씨는 지난 2월 27일 운명했다. 김씨는 사망 이틀 전인 2월 25일 마지막 투병 중에도 친구의 명예회복을 위해 용서를 비는 유언을 얼음을 씹어가면서 녹음을 했다고 한다. 김 의원측은 그 녹음을 공증받아 재심신청사유서와 함께 제출한 것이다.

 

김 의원은 "그동안 억울한 심정에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신앙의 힘으로 버텨 왔다"면서 "이제 10개월 전 가까스로 지역유권자의 심판을 받아 명예회복이 조금이나마 되었다고 생각 했는데 당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또 한번 이러한 억울함을 강요받는다는 것이 비통하기만 할 따름이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배신한 친구가 마지막 가는 길에 남긴 유언과 양심선언 그리고 김 의원의 호소가 '공천특검'이니 '저승사자'니 하는 별호와 여론을 등에 업은 박재승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기미는 전혀 안보인다. 박지원-김홍업씨의 한 측근인사도 "이미 박재승 위원장의 손을 떠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재승 위원장은 7일 오후 "당규에 따르면 공천 결과에 대해 당 최고위에서 재심을 요청하게 돼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요구가 절차에 맞는 지는 연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의멸친'(大義滅親)이라는 대의명분을 등에 업은 그가 '칼'을 거둬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당원도 아닌 그가 왜 '친'(親)을 운운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인정사정 가리지 않는 '칼잡이'를 불러들인 것도 민주당이 아니던가. 또 어떡하랴. 이번 총선의 '시대정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인 것을.


#박지원#김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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