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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완연한 봄, 봄은 누구라도 한 자리에 앉아 있게 하지 못하는 설렘의 계절. 영화 <우리 형>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동해 남부선의 간이역 좌천역은,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처럼 정말 소박한 시골역이다.
 
가만히 앉아서 봄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곳은 봄처녀를 마중하러 나오기 가장 적합한 풍경이 있는 역이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도 마침 봄 바다의 물빛 같은 브람스 교향곡 제 1번이다.
 
동해남부선의 좌천역(左川驛)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에 위치한다. 1934년 12월 16일에 영업을 시작했다. 역 구내에 철제 급수탑이 있다. 나무의 나이가 꽤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와 향나무 두그루가 반겨 준다.
 
화단이 예쁘게 꾸며진 역사다. 마치 액자 속의 봄 풍경 속으로 들어 온 듯, 철로변의 꽃나무와 봄이 되어 찾아온 철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반겨주는 듯…. 역사의 건물은 1934년 일제 때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한다.
 
 
빠른 철로에 조는 손님아
시골의 이 정거장 행여 잊으라
한가하고 그립고 쓸쓸한 시골 사람의
드나드는 이 정거장 행여 잊으라
- 김영랑 '빠른 철로에 조는 손님'
 
 
이 역에는 무궁화호만 정차한다고 한다. 해운대에서 좌천역까지는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통일호도 새마을호도 다니지 않고, 상하행 총 20회 기차가 좌천역에 정차한다.
 
 
좌천역에 내리면, 가까운 근처의 아름다운 임랑 해수욕장과 기장 불광산과 달음산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좌천 시장은 오일장이고, 4일 9일이 장날이다. 영화처럼 시처럼, 그 어떤 시간의 아늑한 동굴 같이 따뜻한 풍경으로 둘러싸인 역이다. 그래서 역사만 구경하고 가도 퍽 괜찮다는 느낌을 준다.
 
 
 
아득한 선로 위에
없는 듯 있는 듯
거기 조그마한 역처럼 내가 있다.
- 한성기 '역'
 
 
 
 
역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나오기도 하지만,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른 채 배회하다 역에 나올 때도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열차를 타고 도착하는 사람 속에 앉아 있는 대합실에서 올려다 본 시간표. 그 시간표에 없는 기차를 타고 봄처녀는 온 것이다.
 
좌천역 입구 좁은 골목 시멘트 바닥 틈새에 뿌리 내리고 있는 고목은, 먼 곳에 귀를 쫑긋 세우며, 드디어 봄이 도착했다는 듯이, 활짝 꽃을 피울 태세다. 

태그:#좌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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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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