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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오른쪽)이 7일 여의도 당사에서 인천, 경기, 강원, 충북 지역에 대한 공천심사를 마친 뒤 이방호 사무총장과 함께 당사를 나가고 있다.
안강민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오른쪽)이 7일 여의도 당사에서 인천, 경기, 강원, 충북 지역에 대한 공천심사를 마친 뒤 이방호 사무총장과 함께 당사를 나가고 있다. ⓒ 유성호

4월 9일 18대 총선을 앞두고 각당에선 공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공천장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심사 중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공천을 완료한 몇몇 지역은 밀실 공천 혹은 표절 공천 운운하며 재심의를 신청하거나 지지자들의 항의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방송과 언론은 그런 일까지 충실하게 방송하고 보도해준다. 

 

공천 늦을수록 이익 보는 정당 있나?

 

요즘의 상황을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각당이야 공천 심사에 관해 할 말이 있겠지만 방송과 언론은 그래서는 안된다. 적어도 방송과 언론은 각당의 공천 결과를 연일 중계방송만 할 것이 아니라 공천 심사에 대해 닦달을 해야 하고 총선에 임하는 국민의 불편한 심사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그런 의중에 대해 방송과 언론도 외면한다. 국민들이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유권자 없는 선거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총선은 대선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출하는 날이다. 지난 연말에 치러진 대선의 투표율은 6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정치 불신이 극에 달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18대 총선은 봄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농촌에서는 농사일에 바쁜 때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걱정된다는 이들도 많다. 이명박 정부의 '인사파동'과 '부자내각'이 총선 투표율을 저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투표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각당은  알고 있어서일까. 확정이 늦을수록 유리한 정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던가. 공천 탈락자들이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시간 벌기용 공천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나왔던가 싶다. 그래서인가. 총선에 나설 장수를 뽑는 일에 뜸을 너무 들인다.

 

유권자는 장수가 출전하길 기다리지만, 각당은 장수 뽑는 일을 질질 끈다. 뜸도 적당하게 들여야지 지나치면 바닥이 검게 눌어 붙는다. 총선 투표율은 지난 12대 총선(85년) 84.6%의 투표율을 정점으로 계속 내리막길이다. 16대 총선엔 57.2%까지 떨어졌다가 17대 총선에서 가까스로 60.6%로 끌어 올렸다. 

 

대선 투표율이 60%대로 떨어진 선거문화.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가 될 지 모른다. 이미 그런 징조가 여기 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지난 몇 번의 보궐 선거에서 투표율이 40%대도 나오지 않은 것을 절절한 심정으로 지켜본 바 있다. 투표율 50%대도 나오지 않는 선거를 승리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민심을 확인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투표율이 떨어지면 선거관리위원회가 민망한 얼굴을 한다. 정치권이 책임질 일이지, 선거관리위원회가 무슨 죄가 있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투표율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것은 선관위밖에 없는 것 같다. 각당은 투표율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 투표율이 소속 정당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만을 고민한다. 국민들의 마음을 희롱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들이다.

 

국민 우롱하는 정치권, 국민은 없고 장수의 승리만이 목적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6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손학규 박상천 대표에게 47개 지역 1차공천자 명단을 전달했다.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6일 오후 국회 대표실에서 손학규 박상천 대표에게 47개 지역 1차공천자 명단을 전달했다. ⓒ 이종호

각당에서 좋은 인물을 공천하겠다는 근본 취지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 생각이 없다. 그러나 공천 작업을 함에 있어 '전략공천'이니 '전략지역'이니 하는 말은 듣기에 거북하다. 정당들에겐 공천 작업이 전쟁터에서 승리하는 장수들을 뽑기 위한 일이긴 할 테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전략을 짜서는 곤란하다. 국민의 마음을 전략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며, 국민을 바보로 아는 잣대들이다. 어떤 꼼수를 부리더라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의 경우 두 곳이나 심혈을 들여 공천한 공천자를 바꾸는 해프닝도 벌였다. 두 곳은 한나당의 전략지역이 되었다.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권에 근접한다는 게 이번 총선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심사위는 포청천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 좋다. 좋은 장수를 뽑겠다는데 그 정도는 참아 줄만 하다. 문제는 공천 작업이 늦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총선에 임하는 여당이나 야당의 모습은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야당에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견제론에서 안정론을 외치고, 안정론을 외치던 민주당은 견제론을 외친다.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만 바뀌었지 예전과 비교해보면 문맥 하나 틀리지 않는다. 국민에게 눈물로 호소를 해도 될까 말까 하는 것이 작금의 정치권이 아니던가. 이쯤되면 아직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민을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같다.

 

자유선진당은 아예 가을을 맞았다. 수확철도 아닌데 이삭줍기를 기다린다. 한나라당의 공천이 끝나면 남은 이삭을 줍겠다는 생각이다. 자유선진당의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공천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속을 태운다. 그러나 어쩌랴. 한나라당이라고 그런 사정을 모르고 있을까. 한나라당의 입장에서 보면 공천 탈락으로 인해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는 지역일 수록 선거판에 늦게 뛰어 드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 

 

공천 늦어지면 정책 검증은커녕 얼굴도 모르고 투표하는 일 생겨

 

국민의 정치적인 의식 수준이 아직 바닥인 것은 인정한다. 옥석을 가릴 줄 아는 혜안도 부족하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을 이렇게 만든 것은 국민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정책 선거를 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정치권은 아직도 인물 중심이고 전략 중심이다.

 

공천이 늦어질수록 국민은 각당이 내세운 '인물'과 '전략'에 휘말려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후보자를 검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후보자가 보내준 홍보물만 보고 투표장에 나가야 하는 일이 또 생긴다. 지역으로 내려가면 지금으로서는 후보자들의 방송 토론회 일정도 빠듯하다. 국민들의 알권리는 막히고 선택권 또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공천이 확정되지 않으니 후보자들의 공약 개발도 뒷전이다. 이러다간 이번 총선에서 날림 공약과 부실 정책이 판을 칠 지도 모른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역이 조용하다.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이름도 모르고 선거를 하게 되는 초유의 일이 생길까 싶어 두렵다. 공천이 늦어지면 국민들은 결국 객관식 시험을 치르듯 연필을 굴리지 않으면 아무 번호나 눈 감고 찍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미 후보자들의 정책 검증은 물 건너 갔다. 목소리 더 큰 사람이 유리하거나 당의 간판만으로 국회에 입성하는 희극이 또 벌어질 모양이다. 18대 총선에서 평균 점수(투표율)는 과연 몇 점이나 나올까. 30점? 40점? 공천 잡음에다 공천 후유증까지 감안한다면 이번 총선의 평균 점수는 역대 최하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각당은 어서 공천을 마무리하고 정책 선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그 길만이 국민에게 예의를 지키고 정치 서비스를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총선이 치러지는 날 어느 동네에선가는 벚꽃 축제가 벌어진단다. 지금이라도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일이라면, 사람이 많이 몰리는 관광지나 유원지에 투표소를 만드는 일 같은 것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치권은 아직 사우나에서 땀 빼고 있는 중인데, 국민이 별 걱정을 다 한다.      


#공천#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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