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999년 검찰 공안부의 충격적인 노사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오찬에서 폭탄주를 마신 뒤 기자들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검찰)가 유도했다"고 취중진담을 내뱉았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에 쐐기를 박는 사례를 만들기 위해 회사로 하여금 불성실하게 교섭에 응하도록 하고 불법직장폐쇄를 강행하게 했다는 것.

 

이는 '조폐공사파업유도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특검제까지 도입됐으나 몇몇 개인의 공명심에서 비롯된 일로 종결처리됐다.

 

그런데 최근 한 회사의 노사갈등과정에서 제 2의 '파업유도사건'을 떠올리는 글귀가 발견돼 노사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충북 옥천에 있는 (주)코스모링크(충북 옥천군 이원면)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노조원들이 지난 달 26일 회사 본관 3층 강당에 있는 칠판(화이트보드판, 가로 세로 약 100cm)에 '적극 파업 유도' 등 내용이 새겨진 글씨 흔적을 발견했다.

 

당시 칠판글씨는 지워져 있었지만 희미하게  "조정중지 결정" "적극파업 유도"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던 것.

 

또 '문 넘어 오는 사람 야간X (가중처벌)' '노동부와 검찰이 문제되나 문제가 커지면 정부가 개입'이라고 써 있다. 노조측은 전후 문맥상 파업유도책을 펴 파문이 커질 경우 '노동부와 검찰은 문제가 되지만 오히려 정부가 개입하면 유리하다'는 판단을 적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칠판에는 '긴급 출동 훈련' '증거 채집, 사진' 등 내용들이 새겨져 있다. 충북노동위원회가 노사단체협상 '조정중지 결정'을 한 때는 지난 달 25일이라는 점에서 이후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와 검찰이 문제되나 문제 커져 정부 개입하면 유리?"

 

노조 측은 해당 강당이 주로 회사 관리직 직원들의 교육실로 쓰여온 점 등으로 미뤄 사측이 관리직 사원들에게 의도적으로 파업 유도 등 노조대응 방안을 논의 또는 지시한 물증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 관계자는 "이는 회사 측이 이명박 새 정부의 친 기업관을 믿고 노동

부와 검찰 등 공권력마저 무시하는 편향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사측이 의도적으로

파업을 유도하기로 모의 또는 지시했다는 명확한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달 11일 노사가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사측 대표가 '노조 측이 머리띠를 맸다'는 이유로 퇴장해 대화가 결렬됐고, 사내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회사기숙사에 용역직원을 상주시킨 일 등은 칠판 글씨 내용과 흐름이 일치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회사측 한 임원은 "노조측이 이달 초 교섭자리에서 칠판 글씨를 문제삼은 바 있

다"며 "하지만 회사측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장소가 많은 관리직 사원이 이용하는 곳인 만큼 누군가 개인이 썼을 수는 있겠지만 회사는 아는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파업유도' 발견 이후, 비정규직 노조원 해고 -> 직장폐쇄

 

하지만 노조측은 사측의 이후 대응도 파업을 유도한 측면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측은 지난 7일 새벽 2시를 기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지난 달 29일에는 노동조합 소속의 비정규직 17명을 전원 해고했다.

 

사측은 "노조측이 준법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잔업을 거부해 지난 2월 월 평균 생산 매출이

예전의 3분의 1로 떨어졌고 금속노조 등 외부세력이 같은 노조원이라는 명분으로 회사에 들어와 시설물을 파괴하는 등으로 부득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반면 노조측은 "사측이 먼저 용역직원들을 회사로 불러들였고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해 이를 밀어내는 과정에 마찰이 있었다"며 "하지만 용역직원을 통해 마찰을 유도하고 시설물을 파괴한 쪽은 우리가 아닌 용역직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잔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직장을 폐쇄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 담당 근로감독관은 당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측의 폐업은 어떤 명분도 없어 하지 말라고 지도해 왔는데 폐업신고서를 냈다"며 "조사를 해 사법처리할 계획이다"고 말한 바 있다.

 

노조 측은 지난 9일 새벽 2시를 전후해 벌어진 사건도 물리적 충돌 및 시위를 유도한 대표

적 사례로 꼽고 있다.

 

9일 새벽, 사원협의회는 왜 노조 농성장 진입했나?

 

당시 몇몇 현장 취재 기자와 현장에 있던 노조원들에 따르면 관리직 사원들로 주로 구성

된 사원협의회와 용역직원들은 노조의 임시사무실인 식당 건물 유리창을 부수고 소화기를

쏘면서 진입했다. 당시 식당건물에는 노조원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노조원들이 있는 식당 건물의 유리창을 대리석 돌을 던지거나 각목 등을 사용해 모

두 깼고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이들이 각목과 소화기 외에도 인화물질인 시너를 뿌려 방화를 시도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김아무개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용역 직원과 사원협의회 측이 준비해온 각목 등으로 전면 유리와 외벽 유리를 부수고 시너를 뿌렸다"며 "이중 일부가 큰 소리로 '불을 질러버리겠다'며 건물 안의 조합원들을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어 "'불 질러'하는 고함 소리와 코를 자극하는 시너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소개했다.

 

사원협의회 측은 또 이날 새벽 5시 30분 경 식당 안에 있던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식당 밖으로 밀어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이 각목에 맞아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 간 충돌을 우려해 경찰과 대전지방노동청 청주지청 소속 담당 근로감독관이 출동해 이후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사원협의측의 농성장 진입은 아침 7시 경 노사 양측이 ▲ 용역직원 전원 철수 ▲ 조합원 공장 출입 허용 ▲ 교섭 재개 등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노조 측은 "이날 사실상 사측인 사원협의회 측이 새벽 2시부터 돌을 던져 유리를 모두 깨는 등 의도적으로 충돌을 유도했다"며 "폭력을 유발하려는 의도로 판단해 일절 대응하지 않았지만 경찰과 노동청 소속 감독관이 제 때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 "애사심 강한 관리 사원들의 자발적 행위"…"지시없었다"

 

반면 사측은 "일부 애사심이 강한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몰려가 시비가 된 것으로 사측의 지시는 없었다"며 "유리창 또한 양 측이 서로 옥신각신하다 서로 밀쳐서 깨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인화물질인 시너가 뿌려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살인미수에 해당하는 엄한 범죄행위"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분명히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옥천경찰서 관계자는 "이날 새벽 경찰이 나간 사이 기물파괴가 일어난 현장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때 관리직 직원들로 구성된 사원협의회 측이 유리창을 깨고 부순 것으로 보인다"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너가 뿌려졌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어 전체를 다 확인하

지는 못했지만 시너와 같은 인화성 물질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조 측은 사측을 지방노동청에 고발해 폭력행위는 물론 시너 사용과 파업유도 진위를 밝힐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다른한편 노사는 11일 오후 8차 단체교섭을 갖고 오는 18일 교섭을 이어 가기로 했다.

 

(주)코스모링크는 현재 각종 전력선과 관케이블, 통신선, LAN케이블 등을 주로 생산하는 국내 10개 전선류 제조회사 중 하나로 지난 98년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동양전자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노조는 지난 1월  민주노총 금속노동조합 코스모링크 지회가 설립돼 생산직을 중심으로 약 120여 명이 가입돼 있다.


태그:#코스모링크, #파업유도, #직장폐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