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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춘년(2006년)과 황금돼지해(2007년)를 보내면서 주위에 엄마가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황금돼지해였던 지난해 신생아 수는 총 49만7000명으로 전년보다 약 4만5000명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의 엄마도 생겨난 셈입니다.

그러나 과연, 애를 낳았다고 다 엄마가 되는 걸까요? 욕조에서 배냇저고리까지 출산준비물을 다 갖췄다고 해서 엄마 될 준비가 끝난 걸까요? 제 경험으로 보건대, 천만에요. 그건 아닙니다. 밥 짓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엄마 되는 법도 배워야 합니다.

벌써 세 번이나 읽었는데, 또...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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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개월 무렵, 틈이 날 때마다, 이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지 7개월여. 그 사이 두 번이나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마지막 읽을 때는 전공서적 공부하듯 밑줄까지 그어가며 그렇게 세 학기를 끝냈지만, 다시 재수강을 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우리나라 대표(?) 엄마 서형숙씨의 책 <엄마학교> 이야기입니다.

엄마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전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글쓴이는 엄마를 ‘다정한 엄마, 영리한 엄마, 대범한 엄마, 행복한 엄마’로 구분해 그러한 ‘엄마가 되는 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이 자못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엄마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이런 철학을 가지고 아이를 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글쓴이처럼 ‘다정하고 영리하고 대범하고 행복한’ 엄마는 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이제 7개월 된 아이를 보는 데도 때때로 너무 지치고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받고, 그래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입에선 어느새 ‘짜증나’라는 말을 내뱉곤 하는데 어찌 ‘다정한’이란 타이틀을 달 수 있을까요.

마음에도 없는 말 대신 사랑한다는 말을 넘치도록 해주는 엄마,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에게 ‘무얼 배웠니’ 대신 ‘얼마나 즐거웠니’ 하고 물을 수 있는 엄마, 순식간에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이를 혼내긴커녕 머리가 좋아 궁금한 게 많아 그런 거라고, 그것마저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정말이지 책 속에 등장하는 엄마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그러나 한 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면, 언젠가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나라 대표 엄마라고 하는 서형숙씨나 이제 막 엄마 배지를 단 나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내 하늘, 내 사랑인 우리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고, ‘아이들은 기다리면 다 알아서 한다’는 말을 믿으며, 내 아이가 ‘엄마와 사이 좋은 아이, 사람다운 사람이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것은 사는 기쁨을 매 순간 맛보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육아, 다시 인생을 공부하는 터닝포인트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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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여러 번 읽게 된 것은 비단, 아이를 대하는 글쓴이의 테크닉이 뛰어나서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를 하면서 놓치기 쉬운, 엄마 자신의 삶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육아 때문에 가정에서 사회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게 아니라, 육아를 하면서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나를 키운다, 부모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배려를 배운다. 희생도 배우고 용기도 배운다. 참을성도 기른다.’
‘엄마라면 누구나 세수하듯 마음 닦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엄마들은 왜 마음먹는 일이 뜻한 대로 잘 안 되는지 궁금해 한다. 결과를 끈기 있게 기다리고 마음을 자주 닦아야 한다. 세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하면서 엄마 마음 닦기는 한번으로 완성되길 바란다. 마음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 자주 닦아야 한다.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면 더는 닦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왜 밤에 잠을 안 자고 우는지, 우유도 배불리 먹였는데 왜 칭얼대는지 기타 수없이 많은 짜증의 순간에 ‘아이다움을 인정하면 엄마도 짜증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떼를 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떠올리면 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아기를 돌보게 됩니다. ‘그래 아기니까 울지’ 하고 내 마음을 토닥이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기도 나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됩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 온 세상이 다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엄마학교, 굳이 먼 데서 찾을 필요 있나요?

그런데, 책을 덮고 생각해보니 엄마 학교는 아주 가까운 데 있었습니다. 바로 친정엄마입니다. 얼마 전 제게 보낸 메일에서 엄마는 ‘사랑하는 내 딸. 잘 지내지? 애기도 키워야지, 일도 해야지 힘들지? 주부라는 명칭, 엄마라는 명칭 그래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너에게는 지식, 지성, 지혜 이 삼박자가 있어 잘 꾸려 가리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대표 엄마 서형숙은 누구?
원래는 한살림 공동체 운동을 시작으로 농업과 먹을거리의 생명성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를 해 온 분인데, 잘 자란 아이들 덕분에 교육 강사로 더 유명해졌단다.

잘 자란 아이들이라니, 뭔가 특별한 아이들을 기대할 법도 한데, 요즘 같은 세상에선 오히려 평범하게 자란 아이들이 더 특별해 보인다. 서형숙씨 아이들도 그런 점에서 특별하달까.

‘서두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키웠더니,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의 지덕체를 잘 갖춘 인재로 자라준 아이들. 그 아이들 덕에 대표 엄마 서형숙은 오늘도 아침은 늘 웃으며 맞는단다.

서형숙씨는 북촌 계동 한옥에서 실제 ‘엄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그의 블로그(blog.naver.com/usan)를 방문해보자.  기회가 된다면 그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세상의 그 어떤 교양 많은 대표 엄마들이 해준 말보다, 내겐 더 강력한 말이었습니다. 딸에 대한 엄마의 ‘무한’ 믿음. 아이를 낳고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지만, 대화는 많이 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엄마학교를 두고 뭘 했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되는 것은 인생을 다시 공부하는 ‘터닝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 될 공부를 게을리한, 혹은 몰라서 하지 못한 엄마들이 퇴근 후 들어온 남편을 붙잡고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있겠지요? 엄마들, 이제부터라도 '공부하세요'!

‘아이 기르는 것도 그 순간을 음미하며 차분히 기다리면, 찰진 밥처럼 맛깔스러워’ 진답니다.

덧붙이는 글 | <엄마학교>는 꼭 '엄마'만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아빠가 봐도 좋고, 학교 선생님들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 책은 영유아를 위한 육아서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도 좋을 그런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이제 고2, 고3 아들을 둘이나 둔 이모에게 추천했습니다. 좋은 나눔이 되었으면 합니다.



엄마 학교 - 달콤한 육아, 편안한 교육, 행복한 삶을 배우는

서형숙 지음, 큰솔(2006)


#엄마학교#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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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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