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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동생들에게 단체로 보내는 문자였습니다. 문자의 내용인 즉 시골에 계신 엄마가 휴대폰을 구입하셨으니 기념으로 '개통 전화' 한통씩 해드리라는 것입니다. 통신회사에 다니는 큰형이 휴대폰을 개통해 드린 것입니다.

 

올해 67세 되시고 농사짓고 계신 엄마에게 왜 휴대폰이 필요할까? 꿈에도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엄마의 휴대폰 개통 사실은 제게 있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국민학교조차 못 나오시어 어깨너머로 한글 깨우치신 바람에 엄마는 사실 기계치십니다. 이제는 눈도 잘 안보여 폰번호 누르기도 벅찬 시골 할머니가 다 되신 엄마께서 어떤 경우에 휴대폰을 사용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논 밭에 계시기 때문에 도회지 자식들이 전화를 해도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맞춰 유선전화를 드리고 있지요. 논 밭에 휴대폰을 들고 나가 일하실만큼 급한 일도 없구요. 읍내 시장은 한달에 한번 나가실까 말까 합니다. 막내 동생이 시골에서 단위 농협에 다니고 있기에 필요한 게 있으면 막내가 다 사들고 들어옵니다. 큰형도 시골집에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고요.

 

이상은 시골 엄마께 굳이 휴대폰이 필요치 않은 이유를 여러 가지 면에서 들어본 것입니다. 물론 여기까지는 제 생각이었고요. 엄마 입장에서 휴대폰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제 엄마와 이런 내용으로 휴대폰 통화를 했습니다.

 

"엄마, 휴대폰 사셨다매?"

"(헤헤 웃으시며) 잉, 근디 어떻게 알고 전화했냐?"

"큰형이 알려줘서, 근데 왜 갑자기 휴대폰 사셨대? 어디에 쓰려고?"

"우리 동네에서 휴대폰 없는 이 나밖에 읍써, 몇백년 살 것도 아니고 넘들 허는거 다 허고 살아야지."

 

그렇습니다. 저녁 마실 마을회관(말은 회관인데 기능은 노인정)으로 가면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할머니가 된 동네 아주머니들이 휴대폰을 갖고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엄마는 소외감을 느끼신 거구요.

 

단지 혼자만 갖고 있지 않다는 소외감 때문은 아닌 것 같구요. 내면을 보자면 자식들이 그깟 휴대폰 하나씩은 다 해주는데 '누구누구네가 휴대폰 없다'고 하면 '그집 자식들은 아직까지 뭐 하는 것이냐?'하는 식으로 분위기가 몰리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러니 휴대폰의 필요성보다는 그것이 자식 자랑의 기준 같은 게 되는 것이지요. 연로하신 시골 분들이 원래 그렇습니다. 노인정에 모여 자식자랑 하시는 게 엄청난 낙이라는 사실 말이지요.

 

그런데 엄마께서 좀 헷갈리시는 듯 합니다. 아버지의 휴대폰에는 단축번호가 설정돼 있습니다. 1번은 큰누나, 2번은 큰형, 3번은 작은누나, 4번은 작은형, 5번은 바로 저고요, 6번은 막내동생이었어지요. 즉 둘째하고 통화하고 싶으면 2, 넷째하고 통화하고 싶으면 4를 누르는 등 몇째 자식인지 생각만 하면 어렵지 않게 통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엄마 휴대폰에 1번 단축번호가 아버지로 저장돼 있고 자식들은 모두 번호 1개씩 뒤로 밀려나게 된 것입니다. 즉 엄마 휴대폰에서는 2번을 누르면 둘째 아들이 나오는게 아니고 첫째가 연결되도록 번호가 저장된 것이지요. 엄마는 그게 너무나 헷갈린다고 아버지 휴대폰처럼 자식들 서열순서대로 번호를 입력해달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번호를 7번에 입력하면 된다고 하시면서 말이지요.

 

여하튼 휴대폰 때문에 기뻐하시는 엄마를 보니 저도 흐뭇해집니다. 그것이 얼마나 쓸모있냐를 따지는게 아니라 휴대폰 소유라는 자체가 엄마께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휴대폰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되지 않도록 종종 휴대폰으로 전화 드려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티스토리 블로그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태그:#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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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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