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건축가로서 흥미롭게 풀어나간 건축이야기와 주부로서 주거공간에서 겪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함께 따뜻한 필체로 담겨있는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은 ‘뮌헨의 건축하는 여자, 임혜지의 공간이야기’라는 부제가 붙는다.

이 책은 고등학생 시절 한국을 떠나 현재 독일 뮌헨에서 독일인 남편과 고등학생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인 여성건축가 임혜지씨가 풀어놓는 ‘건축과 공간’ 이야기이다. 그동안 먼 이국 땅에서 인터넷한겨레를 통해 한국의 네티즌들과 소통해왔던 이야기들을 묶어 최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독일 가옥의 전통 주거형태와 도시공간의 발전과정, 메소포타미아 고대 주거지 발굴현장 이야기, 세기적인 건축가들이 남겨놓은 건축 작품을 찾아 떠나는 유럽건축탐방, 저자가 살고 있는 독일 뮌헨의 이웃과 도시 이야기가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책이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독일 주택 이야기

이 책에는 먼저 저자가 주부와 건축가로서 독일 뮌헨의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며 터득하게 되는 실용적인 실내활용 아이디어가 잘 나타나있다. 또한, 독일 보통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형 주거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주거환경과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가정에서 살림과 업무를 동시에 보는 저자가 살고 있는 곳은 독일 뮌헨의 한 주택가. 다가구 공동주택에 해당하는 이곳에서 텃세로 인한 이웃간의 실랑이나 제한된 실내공간을 아기자기하게 가꾸어 나가는 일상의 이야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목되는 부분은 건설된 지 100년이 넘어 문화재로 지정된 뮌헨의 전형적인 고가옥에서 저자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100년은 고사하고 20~30년이 멀다하고 부수고 다시 짓는 우리 건축환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놀라운 사실이다. 독일 뮌헨의 전형적인 고가옥이 여전히 임대주택으로 활용되며 유지되는 점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건축문화가 아닌가 싶다. 

더 나아가 이웃에 사는 친구 모니카의 살림공간은 근검한 독일인들의 주거공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독일 국민의 평균적인 규모에 해당하는 90㎡(27평) 면적의 모니카 집은 1960년대 지어진 근대식 아파트다. 40년이 넘은 아파트가 현재까지 유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건축환경과 경제성면에서 심각하게 반성해 볼 대목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독일인 스타일의 남편과 두 자녀, 이렇게 알콩달콩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는 가정난방에 대한 문제에서 지구생태계 환경에 이르는 담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건축환경을 중시하는 저자 못지않게 생태계 환경을 염려하는 독일인 남편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은 우리가 간혹 소홀히 여기는 난방에너지 문제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다.

독일 남부 뮌헨의 풍경과 도시 이야기

저자가 살고 있는 독일 뮌헨은 알프스산맥에 가까운 독일의 남부지방이다. 볼거리가 많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뮌헨의 도시이야기는 마치 현지인에게 세세하고도 친절한 여행 안내를 받는 느낌이다. 영국식 정원이나 호프브로이하우스, 백조의 성으로 알려진 노이슈반슈타인성 등 뮌헨과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에 대한 저자의 건축탐방기는 당장이라도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도록 자극한다.

일찍이 독일 뮌헨에 발자취를 남겼던 한국인 이미륵(이의경, 1899~1950)과 전혜린(1934~1965)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부분은 아련하고도 애잔한 느낌마저 든다. 이들의 흔적은 1970년대 초반 10대 중반의 나이로 낯선 독일을 찾아 이후 34년 동안 독일에서 생활하는 저자의 가슴 속에 더욱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가족이 함께 자전거 캠핑여행으로 노이슈반슈타인성이나 이탈리아 베로나지역을 여행하는 부분은 부러움을 넘어 이 가족의 남다른 즐거움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게 된다. 생태계와 환경보존에 대한 인식이 뚜렷한 두 부부는 ‘무연료’ 자전거를 이용하고 캠핑을 통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건축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독일 강변의 노동자 마을에서 체험했던 아련한 건축적인 향수를 고국의 안동하회마을에서 비슷한 동질감으로 다시 느끼는 저자는, 서양건축과는 다른 ‘주연이면서 조연이 되는’ 전통적인 한국건축미학을 체감하기도 한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살아있는 건축이야기

'고고학자가 아닌 건축가가 유적발굴을 통해 얻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설계작업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인간의 주거에 관한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와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눈으로 배우고 나면 설계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한 생각이 나름대로 확고하게 서게 된다.' 

이 책에는 저자가 건축가이자 문화재 건물 전문가로 활동하며 터키지역 메소포타미아 유적지 발굴조사단 활동과 독일 칼스루에 주거지역에 대한 연구조사 등을 통해 경험한 현장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유적지나 옛 건축물 발굴조사와 연구과정은 딱딱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같지않고 마치 해답을 찾아가는 탐정소설처럼 흥미롭다.

유럽의 건축양식이나 건축사의 변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유럽을 여행하는 여행객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어차피 여행지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수한 세월을 버텨낸 건축물들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건축양식으로 르네상스나 바로코, 혹은 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을 분별해 낼 수 있다면 유럽여행의 묘미는 더해질 것이다. 

저자가 건축물을 발굴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알게된 18세기 주택의 굴뚝양식과 연관된 사회문제는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생각나는 산타클로스. 그가 성탄전야 때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이용한다는 굴뚝이 사실은 당시 일부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했다는 것이다.

  저자 임혜지는 누구?
독일 뮌헨의 문화재 건물 전문가. 고등학교 재학 중에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독일 칼스루에 대학교에서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3년 대전 엑스포 스위스관 설계 및 기획에 참여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 및 발굴연구를 하고 있다. 대학연구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저서로는 그녀의 15년 작업의 결실인 <프리드리히 바인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 2003>이 있다. 이 저서는 독일 도서관에 전문 서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독일정부가 대북관계개선 협조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신설한 평양의 독일문화원에 기증한 과학서적에 포함되었다.

현재 독일 뮌헨에서 독일인인 남편과 고등학생인 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생활 속의 소소한 즐거움을 블로그 ‘빨간 치마네 집’에 담아내고 있다.
(www.hanamana.de/hana)
당시 굴뚝형태상 그을음을 청소하기 위해 몸집이 작은 대여섯살의 어린이들이 굴뚝청소를 했는데 이것이 학대적인 유아노동의 상징물이었다는 것. 열악한 환경에서 굴뚝청소에 나선 어린이들이 청소년으로 자라면서 악성종양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건축과 도시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인과관계를 유추해내고 발굴해내는 저자의 현장에서 겪은 건축이야기는 일반인들도 쉽게 인간과 건축환경이 갖는 속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건축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분야인지 말하고 싶었고,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해 두고 썼다고 말한다.

‘건축이란 위대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인생과 마찬가지로 담담히 그 해답을 찾아가는 탐구과정이라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 뮌헨의 건축하는 여자 임혜지의 공간 이야기

임혜지 지음, 한겨레출판(2008)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임혜지#한겨레출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