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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는데 마침 꽃 축제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이가 엄마에게 조르기 시작했다. 꽃피는 장면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보여 달라고 한 개화장면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속성 화면이다. 오랜 시간 촬영한 내용을 단시간에 보여주는 것은 미디어 속에서만 가능하다. 빠른 개화 장면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피어나는 꽃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즐겨보는 <동물의 왕국>에는 용맹한 사자가 등장한다. 백수의 왕, 사자는 과연 실제로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사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번에 영양의 숨통을 끊어놓는 사냥의 명수 사자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사자는 수차례의 사냥 실패를 겪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미디어에 갇힌 전쟁이다. 아랍에 대한 편견적 인식도 그러한 소산이다.

 

시뮬라크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을 지배한다. 그것은 주로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드라마 <온에어>도 시뮬라크르에 충실하다. 이렇게 아는 척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방송 내부의 문제를 결국 미디어의 안에서 소통시키려 하지만, 그 속에 갇히고 만다. 실감 나게 방송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디어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 그 새장 안에 갇혀 있다. 새장은 약간 날수 있는 공간은 있지만, 한정된 공간이라는 데서는 넓고 좁음에서 차이가 없다.

 

 SBS 드라마 <온에어> 한 장면. 드라마작가 서영은 역의 송윤아(왼쪽)와 톱스타 오승아 역의 김하늘
SBS 드라마 <온에어> 한 장면. 드라마작가 서영은 역의 송윤아(왼쪽)와 톱스타 오승아 역의 김하늘 ⓒ SBS

우선, 드라마 <온 에어> 인물들은 극단적이다. 스타의 행태와 작가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물론 속물적인 특징도 가감 없이 묘사하고 있다. 방송을 둘러싼 사람들의 모순과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시청자들의 눈을 잡아두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과연 그러한 인물들이 있을까. 다만, 여기저기에서 모은 단편적인 이야기들, 수많은 행태들을 조합하여 하나의 인물형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심리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선망과 질시, 편견의 조각들이다. 방송주변의 문제는 어떠한 고정인물이 아니라 수많은 행태들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며, 그것의 기반은 방송구조와 시스템, 자본이다.

 

한국 방송 구조를 꿰뚫은 듯하지만, 결국 그렇지 못한 이유는 오승아(김하늘), 이경민(박용하), 장기준(이범수), 서영은(송윤아) 등과 같은 각각의 극단적인 인물의 강조를 통해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시스템에 따른 모순은 없다. 이는 마치 미국이 자행하는 행태적 문제는 부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같다.

 

각 인물은 대표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 오승아(김하늘)와 같은 연예인은 실제로 존재하기 힘들거니와 스타의 문제가 젊은 여성 연예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으로 인식시킨다. 드라마 작가를 둘러싼 문제들은 서영은과 같은 신출내기 작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속물주의와 허영심에 빠진 작가 서영은이라는 다소 비정상적인 인물보다 정상적인 욕망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행태들이 더 문제다.

 

수십 년 간 보이지 않게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작가를 다루지 않는다면 다루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들이 한국 드라마를 새장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88만원세대도 안 되는, 다단계식 착취구조속의 작가들의 고군분투는 간단화 된다. 기획사는 더 간단하다. 복잡 다단화 된 스타 시스템은 매니저 한명으로 단촐, 파편화 시키는 것도 진짜 같은 가짜다. 21세기에 20세기 형이다.

 

<온 에어>의 등장인물과 같이 할 말 다하는 작가와 피디, 배우들의 자기감정에 충실한 설전과 대화법은 그들 각 자가 언제쯤 한번 쯤 꿈꾸는 로망에 불과하다. 결국 논점은 그러면서도 왜 그들은 그러한 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는가이다. 그것은 진흙탕에 빠져서 고고한 세상을 꿈꾸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복병은 다른 데도 있다.

 

그간 방송가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성공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심지어 스타 일대기를 다룬 영화도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스타의 이면, 적나라함을 보려하지 않는 대중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이전에 방송구조에 대한 예전과 같은 아우라는 이미 대중에게 없다. 아쉽게도 <온 에어>는 거꾸로 방송 권력을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몰입은 아우라가 있는 스타에게만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시청률을 의식하지 말아야 하는 드라마다.

 

더구나 이미 드라마에서 다루고 있는 적나라하다는 내용들은 인터넷의 수혜 덕분에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충분히 공유된 사실들이다. 원색적이고, 감각적인 적나라함이 시선을 끄는 몇 회로 그칠 수밖에 없다. 그 정보들은 맥락 없이 단편화된 조각들이다. 드라마적 현실을 통해 조각만 맞춘다고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그 이후가 관건이다. 방송에 대한 환상은 사라지고 이면에 대해 이미 많은 부분을 확인하는 대중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 확인만 하려고 드라마를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같은 가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는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인물과 소재를 통해 승부를 걸 때 이미 예견 된 결과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실린 글입니다.


#온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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