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말에 경기도 평택에 사는 막내누님 집들이에 참석하고, 파주에 사는 조카 집에도 다녀왔습니다. 그 길에 5년 전 인터넷에서 사귄 친구와의 만남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2년 전에 부부 동반 초청을 받긴 했지만, 여간 먼 거리여야지요. 그래서 조카 집을 다니러 가는 길에 만나게 됐습니다. 친구 아파트를 방문해서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서면서부터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취했고, 잘 정리된 소장품들이 너무 좋아 허락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예술을 좋아하는 친구라서 흥이 나면서도 대화가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눈에 들어오면, 3년 만에 만난 애인에게 달려가듯 쫓아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허락도 없이 찍었지만 작품에 대해 설명도 듣고 공개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습니다. 
 그림1 마음이 부자인집 2 웃음
그림1 마음이 부자인집 2 웃음 ⓒ 조종안

'마음이 부자인 집'과 '웃음'이라는 글귀에서 사람 사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지인이 써준 것이라고 하는데, 획에도 힘이 들어가 있지만, 창작력이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부자이면 허허롭고 여유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또 그렇게 살 수도 있기에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부부를 상징하는 '웃음'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림3 운근동죽(雲根凍竹)
그림3 운근동죽(雲根凍竹) ⓒ 조종안

올해로 탄신 301돌을 맞는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의 묵죽도 '운근동죽(雲根凍竹)'입니다. 한때 서예와 사군자에 빠져 밥도 굶어가며 필묵을 가까이 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 작품은 세월 속에서 상처받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네요.

 그림4 염화취실(斂華就實) 그림5 춘농로중(春濃露重)
그림4 염화취실(斂華就實) 그림5 춘농로중(春濃露重) ⓒ 조종안

왼편 추사의 '염화취실(斂華就實)'은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추사난맹첩 상권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화려함을 거두고 실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삶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른편 추사의 춘농로중(春濃露重)은 봄빛이 짙어져 이슬이 무거워지고, 그 무게에 난(蘭) 잎이 휘어진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추사는 "난을 치는 것은 글씨를 쓰는 것과 같다"고 말하곤 했는데, 어렵게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연상시켰습니다. 대원군의 난도 품위가 정갈하기 그지없으나 글씨가 마음을 잡아당기지는 못하더라는 친구의 설명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습니다.   

 그림6 숭정금실(崇禎琴室)
그림6 숭정금실(崇禎琴室) ⓒ 조종안

'숭정금실(崇禎琴室)'은 추사의 공부방 편액입니다. 도연명과 전설적인 '줄없는 거문고' 얘기가 떠오르는데, 추사가 숭정(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 시절의 거문고를 자신의 서재에 들여다놓고 '숭정금실(崇禎琴室)'이라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崇'자의 '山'이 '音에 흔들려 날아가려는 듯 보인다며 무척 기뻐하더군요. 

 그림7 자웅장추(雌雄將雛)
그림7 자웅장추(雌雄將雛) ⓒ 조종안

수탉이 병아리들과 평화롭게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자웅장추(雌雄將雛)'는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의 작품입니다. 화재는 다른 그림도 잘 그렸지만, 특히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卞古羊)'으로도 불렸으며, 초상화(肖像畵)와 영모(翎毛)에 뛰어나 국수(國手) 칭호를 받기도 했던 조선 후기의 대가입니다.   

수탉의 벼슬과 꼬리의 품위와 깃털에서 홰를 치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리는 것 같습니다. 또, 암탉과 새끼를 지키는 모습이 당당하고 든든해 보여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관입구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림8 정국추추황
그림8 정국추추황 ⓒ 조종안

'정국추추황 자모연년백(庭菊秋秋黃 慈母年年白)'은 늙으신 어머님을 매일 그리워 하려고 안방에다 붙였다고 합니다. 지인에게 일부러 부탁하여 얻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효(孝)를 몸으로 실천하는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림9 돌탑 10 왕솔방울
그림9 돌탑 10 왕솔방울 ⓒ 조종안

베란다의 화분 옆 작은 돌탑은 전국을 여행 다니던 시절 모아온 돌이라고 합니다. 돌탑 몇 개가 그 사이를 운행하는 바람처럼 저를 항상 떠도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서해안 새만금에 갔을 때 해풍에 꿋꿋이 버틴 왕솔방울이 너무 잘 생겨 거실에 모셔놓았다고 하더군요. 

 그림11 민살풀이춤
그림11 민살풀이춤 ⓒ 조종안

민살풀이춤의 일인자인 장금도 선생의 양 팔의 자연스런 각도와 그 흐름에 감탄해 신문에 난 사진을 오려 액자에 모셨다는 말을 듣고, 예술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 친구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친구는 찾아다니며 만들어야 한다는 누구의 말이 떠오르더군요.

군산에서 태어난 장금도 선생은 필자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전통 춤에서 제대로 팔을 들어 올리는 데만도 8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의 나이 올해로 80이 넘었습니다.

"춤은 멋으로 추는 것이므로 많이 배워야 한다"고 설파하는 장금도 선생의 춤은 우주를 떠받치는 힘을 보여주면서도 바람에 오락가락하는 깃털처럼 가벼워 심청이의 서러움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식탁의 가족들에게 손님을 소개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친구
식탁의 가족들에게 손님을 소개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친구 ⓒ 조종안

친구가 식탁에서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따님에게 저를 소개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대하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예(藝)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깨우치며 살아가는 친구가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흡족했는지 헤어질 때도 별로 서운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집 페이지를 넘기는 것처럼 하나씩 떠오르네요.  

설명은 들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걸작이 따로 있겠습니까? 내가 아끼고 마음에 들면 걸작이지요. 솔방울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친구가 진정한 예술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