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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스물한 살의 프라하>
 책 <스물한 살의 프라하>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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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에는 겉표지에 나온 예쁜 여자의 모습과 스물한 살이라는 단어만 보고 '그렇고 그런, 얼굴 내세운 뻔한 여행 책' 정도로 생각했다.

책꽂이에 모셔 두었다가 봄맞이 책 정리를 하면서 다시 꺼내 보니 작은 글씨로 쓰인 ‘음악 유학 갔다 동유럽 최고의 민박집 사장님이 된 박아름’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프라하로 음악 유학을 갔다가 민박집 사장이 되었다니 이게 또 무슨 소린가!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넘겨보니 이 책은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얼굴 내세운 어린 여자가 대필 작가를 동원해 쓴 그렇고 그런 책은 전혀 아니었다. 의외로 당차고 야무진 스물한 살의 여성이 민박집을 꾸리게 된 사연과 프라하에 대한 세심한 안내로 꽉 차 있다고 할까.

한창 꿈 많고 멋 내는 것 좋아할 스물한 살에 민박집을 꾸리게 된 이유는 이렇다. 조그마한 아파트를 얻어 바이올린 연습을 하던 지은이는 주변 사람들의 항의에 주차장에서 연습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된다. 이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자 살기에는 조금 크다 싶은 주택을 얻어 들어가는데, 이곳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실컷 연습할 좋은 공간이 되었다.

바쁘게 집과 학교를 오가던 중 그녀는 우연히 숙소를 구하지 못한 세 명의 한국 여성을 만나게 된다. 집이 워낙 크다 보니 무턱대고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묵고 가세요"라는 친절한 제안을 하게 되고 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다 보니 결국 민박집으로 소문나게 된 것. 프라하를 찾는 이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평범한 한 유학생은 민박집 주인이 되고 만다.

스물한 살의 나이에 프라하로 유학을 떠나고 자유롭게 연습하기 위해 큰 주택을 얻었다는 말만 들어도 저자가 얼마나 부유한 집안에서 곱게 자랐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민박집을 꾸리고 있다는 소식을 한국 방송에서 접해 들은 어머니는 급하게 프라하로 날아온다.

딸이 고생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지만 박아름씨는 당당하게 말한다. 이 일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고 민박집을 꾸리면서 여러 사람을 접하는 것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엄마는 포기하고 사흘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저자의 삶은 이래저래 고달픔의 연속이다.

처음에는 일해주는 아주머니가 계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민박을 시작했건만 갑작스레 아주머니가 그만두고 나서 당장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하는 게 급하다. 한국 음식도 잘할 수 있으면서 언어 소통에 문제가 없는 한국계 교포를 구하고 나니 일단 한시름을 놓았다 싶었는데, 민박 손님이 점차 늘어 결국 옆집까지 세를 얻어 두 개의 민박집을 꾸리게 되는 당찬 스물한 살의 한국인.

그녀의 모습은 나태하게 늘어진 삶을 보내며 자신이 처한 어려운 처지를 한탄하거나 부유함에 익숙해 안일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경각심을 준다. 부모님께 의지해서 한창 멋 부리고 돈 쓰는 재미에 몰두할 젊은 나이에 남들이 힘들다고 여기는 일을 즐겁게 척척 해내니 대단하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저자가 전하는 프라하 정보는 알차면서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경험한 것이라 매우 값지다. 민박집 내에서도 하루 한 번씩은 아침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필요한 유익한 정보를 알려주며 행복했다는 저자. 그녀를 민박집 주인으로 만난 이들은 참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천문 시계는 매시 정각이 되면 줄을 잡아당기는 해골을 시작으로 열두 사도가 번갈아 등장한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로 천문 시계 앞은 늘 북새통을 이루지만 20초도 되지 않는 짧은 공연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천문 시계 앞을 지킨다.

또 한 가지!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그 짧은 순간을 노리는 불청객이 있으니 천문 시계 앞에서는 반드시 ‘소매치기’를 주의하자!"

이런 식으로 전하는 그녀의 알짜 정보는 프라하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어디 가면 환전할 때 이익이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싸게 먹는지까지 상세히 알려주는 덕분에 민박집은 점차 장기 투숙객이 많아진다. 처음에는 이 삼일을 계획하고 프라하를 찾지만 민박집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프라하의 낭만적 모습에 빠져 계획을 수정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을 보면 지금 박아름씨는 한국으로 귀국해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스물세 살이 되어서 예전의 앳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겠지만 프라하의 또순이로 살았던 것처럼 어디선가 또 다른 새로운 일을 벌이며 행복해하고 있으리라. 책을 마치며 그녀는 전한다.

자신은 서점에 널린 다른 책들의 주인공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수재도, 대단한 수완으로 억만금을 번 사업가도 아니라고. 그렇다고 글에 소질이 있어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줄 자신도 없다. 저자는 그저 글을 통해 자기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거짓 없이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프라하에 대한 사랑, 음악에 대한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에게 자신의 집을 거처로 제공하면서 시작된 프라하 풀하우스 민박집의 스물한 살 여주인의 재미있는 이야기.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그녀를 만날 수 없겠지만 왠지 프라하 그 민박집에 머무르며 이곳의 낭만을 한껏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물한살의 프라하

박아름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7)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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