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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군 연산군과 내시 김처선. 드라마 <왕과 나>.
폭군 연산군과 내시 김처선. 드라마 <왕과 나>. ⓒ SBS


참으로 비극적인 군신관계의 종말

SBS 사극 <왕과 나>의 종영이 다가오고 있다. 폭군 연산군의 난행 앞에서 소신껏 바른 말을 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내시 김처선의 최후도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그는 '감히' 왕의 잘못을 입에 담은 죄로 연산군에 의해 혀와 다리가 잘리는 비극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 입바른 김처선이 얼마나 미웠던지, 연산군은 그를 죽이고 나서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그의 양자를 포함해 7촌에 대해서까지도 연좌제를 적용함은 물론 그의 본관인 전의(全義)마저 없앴다고 한다. 참으로 비극적인 군신관계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산군과 김처선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좋은 사례가 하나 있다. 고대 중국의 유명한 폭군인 진(晉)나라 영공(靈公)과 조순(趙盾)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진나라 영공(재위 BC 621~607년)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폭군으로 기억되고 있다. 고대 중국 역사서인 <좌전>에 소개된 인물로서, 오늘날 중국 대학의 교양교재에서도 다루고 있다. 

영공과 조순의 고사를 소개하는 대목의 첫머리에서 <좌전>은 "진나라 영공은 군주의 도리를 행하지 않았다"(晉靈公不君)라고 못을 박아둔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그런데 영공은 군주답지 못했다(不君)는 것이 <좌전>의 평가다.

영공은 얼마나 '나쁜 놈'이었을까? 저지른 행위들을 보면, 그도 연산군 못지않은 인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체 어떤 짓들을 저질렀기에?

그는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어들였다. 그걸 나라살림에 쓴 것도 아니었다. 궁궐의 담을 치장하는 등 사치를 위해 막대한 혈세를 소모한 것이다. 

그는 잔인한 짓도 많이 저질렀다. 활쏘기 연습을 할 때에 그가 과녁으로 삼은 대상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내가 쏠 테니 너 한번 피해봐"라며 사람을 향해 활시위를 당긴 것이다. 화살을 피해 허겁지겁 달아나는 신하들을 보면서 뭔가 진한 쾌감을 느낀 모양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날의 식사 메뉴는 곰발바닥 요리였다. 그런데 궁중 요리사가 덜 삶은 음식을 내온 것이다. "내가 해프 쿠키드(half cooked, 덜 익은)를 주문했니? 다시 해와!"라고 했을까? 아니다. 그냥 죽여 버렸다. 그러고는 시신을 대나무 바구니에 넣은 뒤에 요리사의 부인더러 직접 와서 끌고 가라는 비정한 명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중국판 연산군의 난행에 떨쳐 일어난 중국판 김처선

 폭군 연산군. 드라마 <왕과 나>. 그는 진나라 영공과 닮은꼴이었다.
폭군 연산군. 드라마 <왕과 나>. 그는 진나라 영공과 닮은꼴이었다. ⓒ SBS

이 같은 중국판 연산군의 난행을 보다 못해 중국판 김처선이 분연히 일어섰다. 바로 조순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조순을 중국판 김처선이라고 한 것은 그의 신체구조가 특수했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조순이 군주의 측근으로서 군주의 비행을 직간하다가 결국 버림을 당한 점이 김처선과 똑같다는 말이다. 

조순은 정경(正卿, 총리급)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영공에게 직접 간언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용기가 얼른 생기지 않았다. 영공 처소의 처마 밑에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게 3번이나 되었다. 군주의 잘못을 대놓고 비판한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해낸다. 영공을 면전에 두고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공이 순순히 나온다. "내 잘못을 알고 있다. 앞으로 고치겠다." 뜻밖의 반응에 조순이 도리어 황송해한다. "사람이 어찌 실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을 범하고도 고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없을 겁니다."

왕이 잘못을 뉘우쳤다고 생각한 조순. 그는 감격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영공은 그냥 말뿐이었다. 그의 난행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판 김처선은 간언하고 또 간언했다.

조순이 너무 귀찮아진 영공. 이제 조순을 죽일 결심을 한다. 그래서 암살을 연달아 시도한다. 암살을 연달아 시도한 것은 암살 시도가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총리급이었으면 나이도 많았을 텐데 왜 쉽게 못 죽였을까?

첫 번째. 자객이 새벽녘에 조순을 죽이러 그의 집을 찾아갔다가, 그 새벽에도 관복을 입고 단정하게 앉아 있는 조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난 저런 사람은 죽일 수 없다"면서 회나무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 

두 번째. 영공이 조순을 죽이기 위해 복병을 숨겨놓은 채 연회를 베풀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조순의 부하가 조순에게 미리 귀띔을 해둔다. 이때 영공 측의 무사들 중 하나가 조순을 죽일 수 있었지만, 조순에게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그는 은공을 갚기 위해 남몰래 조순을 살려 보냈다. 연산군은 김처선을 어렵지 않게 죽인 데 반해, 영공은 결국 그를 놓치고 말았다.

두 차례 암살 시도에 이어 마지막에는 영공이 개까지 풀어 자신을 물도록 한 것에 너무나 실망한 조순. 사람(신하)을 버리고 개를 기용(棄人用犬)하는 임금이었다니! 결국 그는 도주를 선택한다.

그런데 조순은 멀리 가지 않았다. 산을 넘지 않았다. 진나라가 지배한 지역은 오늘날의 산서(산시) 지역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산을 넘지 않았다는 것은 조순이 진나라 영역 밖으로 나가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가 이때 산을 넘지 않은 사실은 이후 그의 정치행보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조순이 숨어 있는 동안에 진나라에서는 정변이 발생했다. 조순의 친척 형제인 조천(趙穿)이 폭군 영공을 시해한 것이다. 중국판 중종반정이 터진 셈이다. 세상은 그렇게 뒤집어졌다.

산만 넘었더라면 오해를 사지 않았을텐데...

 내시 김처선. 드라마 <왕과 나>. 그는 진나라 조순과 닮은꼴이었다.
내시 김처선. 드라마 <왕과 나>. 그는 진나라 조순과 닮은꼴이었다. ⓒ SBS

그럼 조순은 당당하게 서울로 돌아왔을까? 그렇지 못했다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결과적으로는 조순이 승리했지만 정치적으로는 조순이 패배하고 만 것이다. 진나라 사관(史官)들이 "조순이 군주를 시해했다"고 선언함에 따라 조순은 도리어 군신 간의 의리를 배반한 인물로 몰리고 말았다. 영공의 사망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도리어 불리해진 것이다.

조순은 "나는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영공 시해사건은 실제로 조천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순의 친척인 조천이 벌인 일이기 때문에 세상은 조순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조순이 배후에서 조종했을 것이라고들 믿었다.

영공에게 쫓겨났을 때에 진나라 경계를 넘었다면 그런 오해를 받지 않았겠지만, 그가 계속해서 진나라 영역 안에 숨어 있는 동안에 정변이 발생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전직 총리'가 배후에서 사주한 일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도 말했다. 조순이 산만 넘었더라도 그런 오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중국판 폭군 진나라 영공의 잘못을 직간하다가 위험을 피해 도주를 선택한 조순. 영공이 시해당한 뒤에 그는 시해의 주범으로 몰려 정치적으로 불리해지고 말았다. 김처선은 육신은 죽었지만 그래도 충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순은 육신은 건졌지만 불충이라는 불명예를 피할 수 없었다. 물론 오해 때문에 빚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영공과 조순의 고사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는 분들은 없었을까? 조순이 진짜 영공을 죽였다고 해도 그건 잘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 왜 조순이 욕을 먹은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만도 하다.

폭군은 쫓아내되 그 신하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진나라 영공은 불군(不君)한 사람이었다. 군주답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죽었으면 잘 죽었다고 할 일이지, 왜 조순이 도리어 시해의 주범으로 몰려 곤경을 당해야 했을까?

바로 여기에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정서가 담겨 있다. 군주답지 못한 폭군은 방벌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이다. 동아시아인들은 누구나 다 그 점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폭군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던 신하가 방벌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동아시아 내에 부정적 정서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폭군은 응당 응징해야 한다. 하지만, 폭군의 신하는 거기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신하는 어디까지나 신하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주군이 도리를 저버리면 주군을 떠나든가 그렇지 않을 바에는 주군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 동아시아인들의 전통적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조순이 정치적 매도를 당한 것은 그가 바로 이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아비가 아무리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아비를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연장선상에서 발전한 것이 '주군이 아무리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신하가 주군을 죽일 수야 있겠느냐?'라는 인식이다.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바람직한 신하의 모델은 김처선 같은 인물이었다. 왕에게 직언을 하다가 왕이 죽이면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런 유형 말이다. 폭군 밑에서 은혜를 입고 밥을 먹은 사람이 직접 폭군을 방벌하는 것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동아시아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폭정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신하가 주군을 죽여 놓고는 "나는 폭군을 방벌했다" 혹은 "나는 민주화투쟁을 한 것이다"(김재규)라는 등등의 말을 하는 것은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는 용납되기 힘들다. 그런 이유 때문에, 조순은 김처선처럼 육신이 죽지는 않았지만 주군을 시해한 배은망덕한 인물이라는 오해를 받아 정치적 곤경에 처하고 말았다.

폭군을 모시던 신하만큼은 주군에 대해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관념. 이런 관념이 옳은지 틀린지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하지만, 만약 부모와 스승과 주군을 일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주군이 폭정을 저지른다 해서 그 주군을 자기 손으로 시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차라리 스스로 주군의 곁을 떠나는 게 동아시아 사회의 미덕일 것이다.

간통하는 여인에게 돌을 던진 이스라엘 군중들. 만약 그 여인의 아들까지 제 어머니에게 돌을 던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까?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는 부모와 스승과 주군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폭군을 배반하는 신하를 '간통한 제 어머니에게 돌을 던지는 아들'로 생각했던 것이다.

현대 한국사에서 이 같은 동아시아 전통을 무시하고 일을 저질렀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로 김재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폭군' 박정희를 암살한 그가 그 폭군의 최측근 신하였다는 점 때문에 그의 행위는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폭정에 공동책임을 지고 있는 신하가 주군만 죽이고 자신은 살려고 했으니,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 정서로는 그런 인물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뭐라 단언하기 힘든,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아무튼 주군이 폭군이든 아니든 간에 그 신하로서는 조순보다는 김처선 같은 인물이 더 바람직하다는 가치관이 동아시아 전통사회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왕과 나#김처선#조순#연산군#진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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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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