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구호를 내건, 평화통일가정당이 18대 총선에서 전국 245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고 합니다. 현재 국회 의석이 있는 정당들도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했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가정을 살리는 일을 최우선과제로 하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가족행복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이 이 정당의 공약입니다. 평화통일가정당의 정책방송 연설자로 TV에 등장한 탤런트 태현실씨 방송 내용 중에서 다음 대목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요즘 이혼뉴스도 계속 들려옵니다. 후배 연예인들이 파경을 맞았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뉴스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불륜은 이거 단골 메뉴입니다.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혼하고 외도하고, 아! 그렇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중략) 그런데 이혼율을 낮추겠다는 정당은 없습니다."평화통일가정당은 '통일교'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무튼 평화통일가정당에는 가정파괴범죄, 성범죄와 더불어 이혼을 범죄에 준하며 가정의 행복을 파괴하는, 나아가서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여기 세 번이나 이혼하고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그녀의 딸을 주인공으로 한 '명랑하고 발랄한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 봅니다. 싱글맘으로 성(姓)씨가 다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리고 그녀의 열아홉 살 된 딸 '위녕'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새로운 시대의 가족관계에 관한 이야기, 바로 공지영이 쓴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말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엄마와 매사에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딸, 위녕이 <즐거운 나의 집>의 주인공입니다. 위녕이 재혼하는 아빠의 결혼식에 부른 노래가 바로 '즐거운 우리집'이 아니라 '즐거운 나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위녕'이 재혼한 아빠와 새엄마를 떠나오면서 그리고 작가인 엄마, 성이 다른 두 남동생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갈등과 각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 이혼한 그녀를 둘러싼 새로운 가족의 의미위녕 엄마는 세 번을 이혼하였습니다. 첫 번째 남편이었던 위녕 아빠와는 무기력한 운동권 출신 가장의 가부장적인 사고와 삶을 받아들일 수 없어 헤어집니다. 위녕의 눈에 비친 엄마와 아빠의 모습은 이렇게 다릅니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 밥은 여섯 시에 먹고 과일은 일곱 시에 먹지 않는다구. 화요일은 출판사를 가고 목요일에는 수영을 하지 않는다구. 엄마는 배고프면 먹고 과일도 먹고 싶은 때에 먹어. 출판사는 필요하면 가고, 수영은 귀찮다고 안 해." (본문 중에서)두 번째 남편이었던 둥빈 아빠와는 '폭력' 때문에 헤어졌구요. 세 번째 제제 아빠와도 이유는 분명하게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평화통일가정당을 지지하는 태현실 같은 분이 보기에는 그녀의 이혼 사유는 그래도 다 참고 살 만한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아마, 위녕 엄마와 같은 삶은 굉장히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그녀의 세 아이 위녕·둥빈·제제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아픔을 겪고 있다고 확신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가정파괴와 불행을 막기 위해 '가정행복특별법'을 제정하여 '이혼율'을 낮추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위녕·둥빈·제제는 참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냥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위녕 엄마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자식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 번이나 이혼하는 고단한 삶을 견디며 살아올 수 있었던 저력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위녕 엄마에게는 자신의 삶을 지지해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위녕 엄마가 두 번을 이혼하는 동안 한 번도 나무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세 번째 이혼을 결정하던 날에도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는 내 딸이 세 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되는 거 정말 싫다… 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 건강만 챙겨라. 앞만 보고 가거라.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우리가 안다. 그러니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은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오직 너와 네 아이들 생각만 해야 해."(본문 중에서)"세 번 이혼보다 불행해지는 것이 더 싫어"그리고 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하필 수술하는 날 외국으로 출장을 가야 하는 딸을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합니다.
"아빠는 오래 살았고 참 재미있게 살았다. 설사 결과가 아주 좋지 않다고 해도, 그래서 세상을 일찍 떠나게 된다 해도 후회는 없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보다 일찍 죽는다. 얘야 두려워하지 마라. 아빠는 너로 인해 슬픔도 많이 겪었지만 너 때문에 참 기쁜 일도 많았고 또 자랑스러운 일도 많았단다."(본문 중에서)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올 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인생의 황혼 무렵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운 우리 집>이 갖추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여건'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위녕 엄마에게는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부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구나. 위녕 엄마가 만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 위녕·둥빈·제제가 건강하게 자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그녀가 '위풍당당'한 이혼녀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러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이혼한 '그녀'들이 위녕 엄마만큼 위풍당당하지도 않고 행복한 날이 적은 것도 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겠지요. 물론 그녀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불행하게 보였지만, 스스로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행복한 것은 스스로 불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위풍당당한 위녕 엄마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자식들 문제입니다. 자식들이 '이혼한 엄마와 살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 누구의 아들(딸)이기 때문에'하는 선입관으로 평가 받은 것이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엄마들처럼 자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위녕'은 위녕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문제에 있어서는 자주 흔들립니다.
"위녕, 엄마 친구들이 너 고액 과외라도 시키래. 빚을 내서라도 시키래. 족집게 과외, 명사 과외, 과목당 한 달에 이백만 원이라나? 더한 것도 있다나. 그것도 연줄 있어야 들어간다나. 대학 갈 때까지 수천 쓸 생각 해야 부끄럽지 않은 데 보낸다고." (본문 중에서)<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 위녕 역시 공부를 못해도 당당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그래도 고민은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황당한 결말은 내내 공부 못하는 아이로 그려지던 위녕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 위하여 '교대'에 입학하는 대목입니다.
공부 못해서(?) 지방 교대 간다고?'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도 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고민들이 거듭되었는데, 수능시험을 망쳤다고 하는 '위녕'이 설령 지방 대학이라 하더라도 웬만한 성적으로는 원서도 내 볼 수 없는 교육대학에 당당히 합격하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지은이와 같은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지방 교대'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였을까요? 그렇다면 지방교대에 가는 아이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는 아이들이라야 '교대'에 갈 수 있는 것으로 보이던데 말입니다.
결국 "공부 못해도 좋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너의 삶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돼"라는 말 속에는 "적어도 '지방 교대' 정도는 입학해서 초등학교 선생은 될 수 있잖아"같은 뜻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였습니다.
공부 못하는 위녕이 지방 교대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이야기만 빼고 나면, 참 명랑하고 유쾌한 이혼 가정이야기라서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혼 가정의 삶이 불행하거나 칙칙하게 그려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평화통일가정당 공천을 받아 '가정과 나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출사표를 던지신 후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345쪽 /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