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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파주 출판단지가 나옵니다.
논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파주 출판단지가 나옵니다. ⓒ 김용국

작년 초여름 서울 봉천동에서 파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열 달이 지난 지금 저는, 아니 우리 가족은 어느새 '자전거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린 '1가구 4자전거 세대'입니다. 자동차가 없는 우리에게 자전거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교통수단이자 운동기구입니다. 네 식구 모두 '자가용'을 갖게 되었으니, 우리도 부자인 셈인가요.

제가 이사를 결심한 것은 복잡한 서울이 갈수록 싫어졌고, 비싼 집세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당장 서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저를 걱정했지만, 전 두 아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고, 우리 가족이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감수하겠다며 아내를 설득했지요.

파주로 이사 온 작년 6월 당시 큰 아들 준호가 만 9살(초등학교 3학년), 둘째 준서가 5살이었습니다. 서울 주택가에서는 자전거타기는커녕 아이들이 뛰어놀 만한 곳이 적어서 걱정이었데 파주로 오니 달랐습니다.

이사 와서 두 아들에게 준 첫 선물은 자전거 

 자전거를 신나게 타던 두 아들이 출판단지에 도착해서 쉬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신나게 타던 두 아들이 출판단지에 도착해서 쉬고 있습니다. ⓒ 김용국

여기저기 자전거도로가 나 있었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오솔길도 많았습니다. 애들에겐 자전거가 여러 모로 좋을 듯 싶었고, 애들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이사 와서 두 아들에게 제일 먼저 자전거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좋을지 또 가격대는 얼마가 적당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너무 싼 것은 고장이 잦고 위험할 수 있으며, 비싼 것은 아이들에게 아직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10만원 대의 적당한 제품 몇가지를 마음에 담고선 자전거 가게로 갔습니다.

먼저 큰 아들 준호에게 24인치짜리 국내 자전거를 추천해주었습니다. 15㎏으로 약간 무겁긴 했지만, 초등학생이 타기에 무난해보였습니다. 둘째 준서에겐 몇가지 제품 중에서 직접 고르게 했습니다. 준서는 앞에 바구니가 달린 18인치 알루미늄 자전거를 골랐습니다.

2대의 가격이 30만원 정도 되었습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몇 년간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비싸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자전거를 산 날부터 두 녀석은 엄마의 지도 아래 자전거 배우기에 들어갔습니다. 며칠간 학교 운동장에서 맹연습을 하던 준호는 드디어 넘어지지 않고 두 바퀴로 가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아직 어린 준서도 보름이 지나자 뒷바퀴 옆에 달린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혼자서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녀석들은 동네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신나게 타는 모습을 보니 자전거 사주기를 정말 잘 했다 싶었습니다. 

20년만에 내가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될 줄이야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서 통일전망대 부근까지 왔습니다.
자전거로 한참을 달려서 통일전망대 부근까지 왔습니다. ⓒ 김용국

두 녀석의 모습을 보니 은근히 저도 한 번 타고 싶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자전거에 올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합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나마도 남의 것을 빌려서 몇 번 타본 정도였습니다.

호기심에 아들 녀석 자전거 핸들을 잡아보았는데 제법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아들에게 핀잔을 들으면서 눈치를 보아야 했고, 게다가 자전거 안장과 크기가 제게 맞지 않아서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졸라 저 역시 자전거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게는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내가 20년 만에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다니. 게다가 내 자전거를 갖게 될 줄이야.' 

저도 무난하게 국내 유사산악용 자전거를 구입했습니다. 두 아들의 자전거를 샀던 매장에서 깎고 또 깎아 20만원 초반대의 가격으로 샀습니다.

제 자전거는 입문용이었지만 아들의 자전거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속도도 속도지만, 부드럽게 움직이는 게 승차감이 좋았습니다. 복잡한 도심에서 바쁜 일상에 치여 살던 내가 평생 다시 자전거를 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동네 한바퀴로 시작해서 파주-여의도 왕복 100㎞를 달리기까지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헤이리에 도착했습니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헤이리에 도착했습니다. ⓒ 김용국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고, 두 바퀴로 가는 기계를 타고 다니는 재미에 전 푹 빠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밤이고 낮이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두 아들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도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가까이는 파주 출판단지에서, 멀리는 일산 호수공원, 헤이리 영어마을까지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인가는 혼자서 엉겹결에(?) 여의도까지 왕복 100㎞를 달리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세 남자의 자전거타기는 가족 중의 한사람을 소외당하게 했습니다. 자전거가 3대이다 보니 아내는 함께 가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멀리 가려고 해도 함께 다니지 못하니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한 집에 무슨 자전거를 4대씩이나 들여놓느냐"며 펄쩍 뛰었습니다. 싫다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보, 당신도 자전거 사면 우리 네 식구 같이 다니기 정말 좋을 텐데. 내가 사줄게. 아니, 이번 달 내 용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정말로!"

겨우 승낙을 얻어내고 아내에게 24인치 여성용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자전거 가게에서 선물로 받은 하얀 바구니도 달아주니 그럴 듯 했습니다. 가격은 10만원 중반대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정한 가족' 됐어요

 집을 나선 준서가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떠납니다.
집을 나선 준서가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떠납니다. ⓒ 김용국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가족은 모두 자전거 1대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정한 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자장면, 설렁탕을 먹으러 갈 때도 타고 다녔고, 영화를 보러 가도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탔습니다. 걷기에 좀 멀다 싶으면 자전거 4대로 몰려다녔는데, 그 덕분에 부러움인지 시샘인지 모를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도 자주 받게 되었습니다. 자주 다니다보니 막내 준서도 이젠 반경 10-20㎞ 거리는 거뜬합니다.

작년 여름 자전거 4대를 사는데 60만원이 넘게 들었습니다. 적은 돈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버스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우리 가족의 교통비는 왕복 5천원-1만원 정도가 듭니다. 그러면 나들이 할 때 백 번만 자전거를 타고 갔다오면 본전을 뽑는 셈이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건강도 챙기고, 가족간의 정도 덤으로 얻게 되니 돈 몇 푼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주변 동료들 중에 웬만한 소형차와 맞먹는 가격의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정말 부럽더군요. 하지만, 한편으론 비싼 자전거를 보관하느라 전전긍긍하며 상전처럼 모셔두는 사람들을 보니, 그에 비하면 전 맘이 편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지름신'이 찾아와 저를 슬슬 유혹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타는 자전거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급자전거 한 대 값에도 못미치는 60여만원으로 가족 모두 '자가용'을 마련한 것도 대단한 일 아닐까요.

안전운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출판단지 생태공원.
출판단지 생태공원. ⓒ 김용국

물론, 자전거가 마냥 기쁨만 주는 것은 아닐 테지요. 항상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작년에 준서는 자전거 체인에 발이 걸려 앞으로 넘어져서 턱이 심하게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바람에 119 신세를 져야 했고 흉터까지 생겼습니다. 저 역시 밤길을 달리면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는 차들 때문에 위협을 느낀 적이 적지 않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안전운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차조심·사람조심·길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자전거 타기를 멈출 수는 없겠지요. 이번 주말에도 우리 가족은 자전거 나들이를 떠날까 합니다. 계획을 살짝 알려드리겠습니다.

'먼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섭니다. 자전거로 5㎞ 거리인 심학산 자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등산을 합니다. 내려와서는 다시 파주 출판단지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구경한 후, 자유로 옆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합니다. 30분이면 통일동산에 도착할 테고 근처 잔디밭에서 점심을 먹을 겁니다. 그 다음에는 자전거로 10분 거리인 헤이리마을을 둘러본 후 마을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이번 주말 출판단지로 오시면 우리 가족의 자전거 행렬을 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가족의 자전거 사랑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안전운전도 잊지 않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자전거 시승기> 응모글'



#자전거#파주#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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