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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육 괴담'이 떠돌았다. 서울시의회는 '24시간 학원 운영'을 추진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부터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육 괴담'이 떠돌았다. 서울시의회는 '24시간 학원 운영'을 추진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 권우성

지난해 대선 기간 동안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교 학생들에게 때 아닌 괴담이 떠돌았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어찌어찌 교육정책이 바뀔 것이다 하는 내용들이었다. 이를 테면 중학교에도 0교시가 생긴다거나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11시 이전엔 집에 못 온다, '놀토'와 방학을 없애고 학력평가 시험을 매주 단위로 치른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루머 수준의 얘기들이어서 웃어 넘긴 적이 있었다.

 

2MB 시대에 대한 마음 준비, 철저히 했지만... 

 

하지만 자사고 및 특목고 300개 설립, 영어 공교육 강화. 고교등급제의 실질적 부활 등은 이미 공약사항이어서 아이들을 얼마나 학습지옥으로 몰아붙일지는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새 정부 들어 '어륀지'로 상징되는 영어 몰입교육시행 과정의 파행이나 중학교 1학년의 학력 진단평가와 그 후폭풍(사실 이것은 '쓰나미'에 가깝다. 몇 개 틀리지도 않았는데 강북에 사는 아이가 강남에 가면 하위권이다. 그러니 사교육의 유혹을 떨쳐버릴 부모는 사실상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다.

 

지난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됐던 사진작가 이시우씨 사건이나 "6·25는 통일전쟁" 발언으로 옥고를 치른 강정구 교수 사건 당시 3500여 명의 보안경찰들이 환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그들이 새 정부 들어 얼마나 많은 공안 사범들을 만들어 내고 잡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경찰의 분위기가 그러하니 정보과 형사들이 대운하 반대 서명을 한 교수들을 사찰하거나 유력한 야당 공동 선대위원장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일이 딱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백골단 부활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그리고 애초에 대규모 삽질을 공약했으니 이전 정부에서 대운하에 부정적 의견을 개진했던 논문들을 폐기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하며 대운하 기획단을 꾸려 내년 4월 착공을 목표로 은밀히 뛰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지 않았다. 또 그들이 만들었다는 대규모 홍보단의 터무니없는 광고가 총선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심기를 흩뜨려 놓을 것인가도 감당할 만하다.

 

작심한 듯 쏟아내는 고위급 관료들의 강경 대북발언들은 철저하게 '상호주의에 입각한 실용외교(?)'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일이라 생경하지 않았다. 물론 '고소영' 내각, '강부자' 내각으로 일컬어지는 땅투기 전문 머슴들의 정부 장악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가끔 이런 저런 모임에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위직 공무원인 사촌형은 쌓아놓은 재산이 없어 머슴짓 못하겠다고 울분을 터트린다. 새로 영어 학원에 아이를 등록시킨 학부모는 이게 사교육비 줄이는 일이냐며 한탄한다. 감당할 수 없는 의료비에 암 치료를 포기한 구멍가게 아저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더니 지들 경제만 살리는거 아니냐며 분노한다.

 

서민생활안정대책, 그것만은 솔깃했다

 

 서민생활안정 대책에 포함된 품목이 발표된 날. 애초 나의 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는 의구심, "해도 너무하네"하는 분이 치밀어 올랐다.
서민생활안정 대책에 포함된 품목이 발표된 날. 애초 나의 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는 의구심, "해도 너무하네"하는 분이 치밀어 올랐다. ⓒ 청와대 제공

새 정부 들어서 처음으로 귀가 솔깃했던 정책 중에 '서민생활 안정 대책'이라는 게 있다. 굳이 속내를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일단 어감에서 주는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친근함도 호감이 갔다. 또 통 크게 **류로 따지면 약 20여개 정도 관리가 돼도 충분할 것을 무려 50여개까지 확장한다니 그것도 기분 좋았다.

 

정리해 보자. 서민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

 

우선 곡물류, 채소류, 육류, 과일류, 주류 등의 먹을거리 비용이 있어야겠고 대중교통비와 각종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등을 포함하는 교통비, 우리 아이 '쪼다' 만들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지출하는 학원비와 학교 운영비 등을 포함하는 교육비, 의료보험료와 국민연금, 수도, 전기, 가스.

 

어쩌다가 발부 받는 교통위반 스티커를 포함하는 공과금, 집 살 때 은행에서 꾼 돈이 있으니 연리 7%로 꼬박꼬박 나가는 은행융자금과 사무실임대료, 관리비를 포함하는 주거비, 메이커는 아니라도 철마다 한두 벌씩은 사 입는 의류비. 사실 정부에게 관리해 달라고 요구하기 미안한 가족 여가비(박물관, 놀이동산, 각종 공원 등의 입장료)나 외식비의 일부도 거기에 포함되면 좋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

 

대략 이정도 목록에 의료비 정도를 포함한 서민 생활대책 안정이라면 그럭저럭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는 실용정부의 혜택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진짜 몰랐다.

 

이른바 서민생활안정 대책에 포함된 품목이 발표된 날. 애초 나의 생각과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순간, "그럼 그렇지"하는 자조와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하는 의구심, "해도 너무하네"하는 분이 치밀어 올랐다.

 

**류로 통칭되는 품목이 아니라 아주 친절하게도 단일품목으로 '바리바리' 싸주셨다. 쌀, 밀가루, 식용유 등 먹을거리 23가지. 의류는 달랑 바지 한 가지. 화장지, 유아용품, 세제 등 그야말로 생필품 6가지.

 

참 열거하기도 치사하다. "발표된 52개 품목은 정부가 관리할 테니 나머지 필요한 수백 가지는 돈 많이 주고 알아서 해결하세요. 능력이 안 되시는 분들은 꼭 요거만 먹고 사세요"하는 말과 똑같지 않은가? 그럴 요량이었으면 아예 상표까지 정해주시던지.

 

이명박 대통령은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통해 "공무원은 주인인 국민의 머슴"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런데 내가 부리는 머슴이 "꼭 이것만 쳐드세요"하며 밥상을 차려주니 말뿐인 주인 노릇하기가 여간 속 터지는 게 아니다.

 

무식한 국민들 세계시민으로 만들려고 영어 몰입교육으로 난리를 치더니, 돈 못 버는 국민들 땅 파서 부자 되는 법 알려준다고 대운하 삽질을 예고했다. 그도 안타까운지 시대를 잘사는 사람들의 표본을 보인다며 39억짜리 내각 만들더니 그 분들이 이젠 더 불쌍한 국민들 위해 밥상의 반찬까지 관리하겠다 한다. "그대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쪼그라들고 그대 등 뒤에 서면 한 없이 끓어오르는" 국민의 마음은 감지를 하실런지.

 

"그럴 거 모르셨쎄요?" 이 말은 하지 않기를

 

빗겨 때려도 전치 4주라고 대충 이번 총선이 끝나면 180여석 이상을 가져갈 것이라는 정부 여당의 행태가 눈에 선하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각종 규제 법안들, 사학비리 줄이자고 만들어놓은 사학 관계법, 언론시장의 비정상적 유통과 방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신문법, 방송법 등이 국회 합의 또는 날치기 정도로 개악될 것이다.  

 

더 어렵사리 만들어 놓은 남북교류협력법 등의 통일 관련 법안들도 개악될 것이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백두산 관광, 남북한 장성급·고위급 회담은 열리네 마네 할 것이다. 또 경제 살리겠다고 내려버린 법인세, 부동산세를 포함한 각종 직접세의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해 또 다른 세금을 신설할 것이다.

 

거기다가 국민연금 시원치 않으니 없던 일로 하십시다 얘기 나올 것이고 의료보험 재정 파탄이니 민간보험 강화하자 할 것이고 당연히 대운하 관계법은 만들어질 것이고…. 그 외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들의 국민 감시 관리 감독 기능들을 최대한 활용할 터이니 이 쓰린 가슴 달래려고 들이키는 막대한 소주 소비량을 국민의 간이 어찌 감당할까(다행히 소주는 이번 관리 품목 안에 있다. 거기다가 해장 하라고 콩나물까지. 참 감읍할 만한 배려).

 

올해 찬바람 부는 가을쯤 또 순도 100% 서민들의 입에서 현 정부 여당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올지 모르겠다. 예상하는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예상치 못하는 일이라면 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 말도 하기 어렵지 않을까? 

 

"그럴 거 모르셨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지상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가수겸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운하#서민생활 안정대책#이명박#고소영#강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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