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로 말하자면, 엄마를 만난 후 비로소 그냥 나일 수 있었다. 엄마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불행했지만 스스로는 불행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처럼 그렇게 스스로 행복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이 소설을 빌려 읽으려고 몇 번이고 시도했다. 예약을 하려해도 끝도 없이 예약자가 밀려서 예약도 할 수 없어 한참 뒤에나 읽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며칠 전 서점에서 이 소설을 사고야 말았다. 참 오랜만에 밤을 지새우며 소설을 읽었다. 밤을 새우면서까지 소설을 읽은 적이 언제였던가. 한마디로 이 책을 들자 놓을 수가 없었다. 저자는 “이제는 삶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읽지 않은 소설책을 펼치는 기분으로 산다”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말에 나는 크게 공감한다.

 

나도 스스로 그런 고백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내 말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제는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내 의지, 내 뜻,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게 되는 경험을 수차례 하면서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것,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어떤 순간에 절감한 뒤로 나를 내려놓게 되었다고나 할까. 인생에 대한 겸허를 배우게 되었다고나 할까.

 

내 생각, 내 의지가 아닌 나를 이끌고 가는 그 어떤 거대한 힘과 손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인도하실지 약간의 불안과 설렘과 기대가 있다. 지나온 삶의 갈피갈피마다 긁혔던 생채기가 아직도 시뻘겋게 시린 상처로 남아 있다할지라도 그것 또한 불행하지만은 않았다고, 어떤 것에도 좋은 것이 있었다고 위로하게 되었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집>을 읽으면서 밤을 지새워 읽으며 울고 웃었다.

 

저자 스스로 ‘결혼과 이혼했으며 세상이 자신에게 강요했던 모든 거짓 잣대와 이혼’했다고 말하기까지 세상이 바라보는 가시눈길과 자신을 향한 자책과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하며 싸워야 했을까. 스스로 행복하게 되기까지 또 얼마나 깊은 불행감 속에 눈물 흘렸을까. 실컷 경험하고 난 뒤에, 세상을, 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의 소중함,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할 수 있기까지 남모르는 길고 어둔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 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에 대한 낙관이 보였다.

 

공지영의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집>은 19살의 ‘위녕’이 18살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엄마 집으로 가서 살게 되면서 상처가 치유되고 진통을 통해 성숙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위녕의 엄마는 세상이 다 아는 유명작가이다. 그리고 이혼을 세 번했으며 성이 다른 형제와 위녕과 함께 사는 여자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여자이지만 스스로는 불행하지 않은 여자다.

 

세 번의 이혼,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얻은 결론은 ‘ 엄마는 언제나 어떤 일에든 좋은 점도 있다고, 언제나 밝은 쪽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위녕의 엄마는 사랑이 꼭 아픈 것만은 아닌 사랑도 있다는 것을 새로운 사랑을 통해 알게 되고, 위녕은 엄마와 더불어 살면서 아버지도 엄마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행복해 지는 법을 배우며 집을 떠난다.

 

“이상하게도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 그건 대개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가 불화하는 집 아이들이 왜 불행한지도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그건 엄마가 불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종족의 힘은 얼마나 센지, 그리고 그렇게 힘이 센 종족이 얼마나 오래도록 제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로 슬펐는지.”

 

이 책은 한마디로 새로운 의미의 ‘가족사’를 썼다고나 할까. 아버지가 부재한 한 가정, 그 가정 안에서 만들어 가는 낯설지만 새롭게 적응해 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서 큰 공감을 이끌어 낸다. 한 개인의 역사는 곧 그 시대와 무관하지 않고 그 한가운데를 관통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한해 이혼하는 부부가 12만-16만 쌍에 이르며 이혼자 10쌍 중 6쌍은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 한다. 이혼가정 아이들은 2006년에도 12만 명 이상이라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해체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가족해체 시대에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즐거운 나의 집>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우리가 여태껏 생각해왔던 그런 가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이것이 또한 오늘의 현실에서 경험하고, 아픔을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해체된 가정,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떳떳하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 즉 이혼녀, 이혼남, 그런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어린 자녀들, 그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치 이혼한 것이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라도 되는 것처럼 색안경을 끼고 판단하는 사람들,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라 바라보는 사람들과 사회를 향한 일침을 놓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을 살 뿐이다. ‘온몸으로 자신의 삶의 몫을 지고 가는 것’일 뿐이다. 작가의 목소리를 소설을 통해 들어보자.

 

“사람들은 참 이상해. 엄마가 이혼한 사실만 중요하게 여겨. 하지만 그 이전에 엄마가 세 번이나, 자식을 낳고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남들의 기준으로 보면 뒤틀리고 부서진 것이라 해도, 설사 우리가 성이 모두 다르다 해도, 설사 우리가 어쩌면 피마저 다 다르다 해도, 나아가 우리가 피부색과 인종이 다르다 해도, 우리가 현재 서로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해도,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바로 ‘사랑’이니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은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행복은 개개인마다 그 의미가 다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그것은 각자가 만들고 각자가 써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같이 아파하고 같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같이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하면서 읽어나갔다. 성이 다른 둥빈과 제제, 그리고 위녕, 엄마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 속에서 따뜻하고 뭉클하게 만드는 ‘즐거운 집’을 그려보았다.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소설 속의 엄마요 저자가 위녕에게 썼던 편지는 어쩌면 가족이 해체되고 고통 가운데 성장해 가는 모든 자녀들을 향한 위로와 힘을 주는 따뜻한 메시지가 아닐까. 그리고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아닐까. 나도 문득 이렇게 편지 하고 싶다.

 

“사랑하는 딸(아들), 너의 길을 가거라. 엄마는 여기 남아 있을게. 너의 스물은 엄마의 스물과 다르고 달라야 하겠지. 엄마의 기도를 믿고 앞으로 가거라. 고통이 너의 스승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앞에 있는 많은 시간의 결들을 촘촘히 살아내라. 그리고 엄마의 사랑으로 너에게 금빛 열쇠를 줄게. 그것으로 세상을 열어라. 오직 너만의 세상을.”

 

 

 

 

 

 

 


즐거운 나의 집 - 개정판

공지영 지음, 폴라북스(현대문학)(2013)


#공지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