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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간디학교 4교시. 최 교사가 고3 학생들에게 세계사 수업을 하고 있다.
 10일 간디학교 4교시. 최 교사가 고3 학생들에게 세계사 수업을 하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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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학교 학생회장 김정한(고3)군은 올해 1월 5일 전국 청소년통일토론대회에서 통일부장관상을 받았다. 정부기관인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후원한 대회였다.

김군은 상을 받자마자 핸드폰을 꺼냈다. 이 학교 최보경(34·역사) 교사에게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기 위해서다.

"웃기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보경쌤이 3년 동안 가르쳐 주신 것 대회에서 얘기했을 뿐인데 최고상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통일부장관이 저한테 상을 줄 때는 언제고, 이제 경찰이 우리 보경쌤을 조사하고 있어요. 참 웃기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에요."

김군이 상을 받은 지 한달 보름 뒤인 지난 2월 24일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간디학교 교무실과 최 교사 집에 들이닥쳤다. 최 교사는 지도교사상을 받는 대신 압수수색영장과 소환장을 받은 것이다.

최 교사에 대한 경남지방경찰청 2차 소환을 3일 앞둔 10일 오전, 경남 산청군 산자락에 있는 간디학교는 그림 같았다. 비온 뒤 갠 날씨 덕분인지 교정에 핀 봄꽃들이 싱싱해 보였다.
이 학교 교실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우린 영원한 간디인, 나는 언제나 보경쌤 편."
"보경쌤 사랑해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몸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최 교사가 받고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이적표현물 제작, 탐독죄. 이 학교 동아리인 '역사사랑'에서 2000년에 만든 '희망찾기'란 문집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 문집 대부분은 간디학교 학생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 문집은 월간 <우리교육>에서 주최한 '제2회 전국 동아리문집 공모전'에서 으뜸상을 받았다.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달리는 청춘', '테디베어', '보경쌤'…. 학생들이 최 교사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최 교사는 이런 별칭이 보여주듯 낙담하지 않고 있었다.

"요즘 내 모습 자체가 학생들에게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부당한 국가보안법에 맞서 당당하게 조사 받아야지요."

최 교사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화가 난 것은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들이었다. 이들은 "달리는 청춘을 계속 달리게 하자"는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성명서 이어달리기가 시작됐다. 지난 달 10일에는 이 학교 교사들과 졸업생 대책위원회가 성명서를 냈다. 20여명의 교사 전체가 참여한 것이었다.

나흘 뒤인 14일에는 학생들이 '우리는 우리 선생님을 잃기 싫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학생들은 강당 벽에 호소문과 함께 서명용지도 붙여 놨다.

"우리는 최보경 선생님께 역사의 주체가 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그 배움을 실천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구시대의 악법에 보경쌤이 희생되지 않도록 우리 서명합시다."

서명한 학생은 모두 115명. 이 학교 전체 학생이다. 김정한 학생회장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간디학교 식구 총회에서도 이번처럼 만장일치를 이룬 적은 없었다"고 했다. 김태윤(고3) 군도 "한 명의 학생도 빠짐없이 최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서명한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경찰 1차 소환조사가 진행진 지난 2일, 이 지역 단체 대표들과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가운데 개량한복을 입은 이가 최 교사다.
 경찰 1차 소환조사가 진행진 지난 2일, 이 지역 단체 대표들과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가운데 개량한복을 입은 이가 최 교사다.
ⓒ 전교조 경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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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회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달 15일 학부모 80여 명이 총회를 열어 성명서를 채택했다.

"우리 간디학부모들은 선진 여러 나라로부터 폐지를 권고 받는 국가보안법으로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교육의 장을 재단하는 행위는 횡포라고 생각한다."

최 교사는 '참 행복한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학교 구성원 전체가 한 목소리로 나선 경우가 또 어디에 있었을까.

보경쌤, 교육자료가 되다

지난 10일 오후 3시, 이 학교 학생 전체와 교사들은 '식구 총회'를 열었다. 올해 4.19마라톤대회 명칭을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투표 결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마라톤대회'로 결정됐다.

'달리는 청츈, 보경쌤'이 그의 바람대로 역사교육을 위한 교육자료가 된 셈이다.

"학부모와 학생이 좋다는데, 왜?"
[인터뷰] 학부모회장 최세현씨와 학생회장 김정한군
 간디학교 학생회장 김정한 군과 학부모회장 최세현 씨.
 간디학교 학생회장 김정한 군과 학부모회장 최세현 씨.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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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국가보안법 올가미는 단순하다. 이법은 대체로 '친북이냐, 반미냐'란 사상검증 잣대만을 들이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도 최세현 간디학교 학부모회장(48, 농업)에게 단순한 질문을 던졌다.

"최보경 교사가 친북반미, 편향교육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최 회장은 지난 9일 전화통화에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통해 최 선생님 교육 잘 알고 있어요. 친북반미교육, 그런 생각 추호도 해본 적 없습니다. 학부모와 아이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데 왜 공안기관이 나서는지 참…."

이른바 교사에 대한 '빨갱이 사냥'을 막고 나선 이들은 학부모회였다. 최 회장을 비롯하여 이 학교 학부모 80명은 지난 달 15일 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인 국가보안법으로 간디학교 구성원을 재단하지 마라"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성명서 초안은 이 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이 만들었다고 한다. 여느 학교와는 전연 다른 모습이다.

이 학교 학생회장인 김정한군한테도 10일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최보경 교사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돌아온 대답이 재미있었다.

"보경쌤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분이에요. 오히려 제가 토론을 하다가 선생님한테 강요한 적은 있어도 선생님은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보경쌤'이 수업 중에 자주 쓰는 말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다른 의견 가진 사람은 없니?"하는 것이란다.

김군은 "경찰이 보경쌤 수업 한번이라도 들어보면 의식화 편향교육이라는 게 얼마나 틀린 얘긴지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 쓴 내용을 깁고 더한 것입니다.



태그:#최보경,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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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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