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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잃었지만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시력 잃은 후 방황의 세월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마시술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통해 행복을 일구는 권홍식씨.
▲ "시력 잃었지만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시력 잃은 후 방황의 세월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마시술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통해 행복을 일구는 권홍식씨.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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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죠? 하지만 전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더 행복해졌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들면 더 고통스럽다고 하잖아요. 비록 몸은 불편하고 힘들어도 마음이 행복한 지금 저는 무지 행복합니다."

전북 군산시에 사는 권홍식(38)씨. 그는 지금 1급 시각장애인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건강했던 권씨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평범한 회사원 시절을 보내던 어느날,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술과 담배를 가까이 했던 권씨가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희뿌연 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별일 아니겠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점점 상태는 악화됐다. 15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권씨는 갑자기 닥친 불행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2년여 동안 그는 세상과 등지고 방황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오랜 방황 끝에 생각을 바꿨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좌절을 딛고 새로운 삶에 도전한 권씨는 사물의 윤곽이 흐릿하게나마 보일 때 뭔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지난 2005년부터 익산에 위치한 전북맹아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맹아학교 다니던 시절, 빼곡히 쓰여진 그의 노트! 희미하게나마 눈이 보일 때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권씨. 맹아학교에 다니면서 안마 등을 배웠다.
▲ 맹아학교 다니던 시절, 빼곡히 쓰여진 그의 노트! 희미하게나마 눈이 보일 때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권씨. 맹아학교에 다니면서 안마 등을 배웠다.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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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두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 자신을 다 잡았다.

‘안 보이는 만큼 더 노력하자.’

그는 하루에 몇 번이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안마, 마사지, 지압, 양의학, 침술을 배우는데 온 땀을 흘렸다. 그렇게 2년 동안 새로운 삶에 도전했고, 올 2월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안마사자격증을 취득했다.

힘든 과정을 극복한 권씨는 지금 ‘행복 경락ㆍ안마 치료원’에서 경락과 안마사로 일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새롭게 일어선 지금,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아들이 시작장애인이 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는 어머니 윤앵순씨도 “장애를 딛고 어엿한 직업을 얻은 아들이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며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들이 그저 고맙다고.

권씨를 만나며 ‘행복’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가진 능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에 있음을 아주 조금은 깨닫고 돌아왔다.

행복이 늘 그와 어머니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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