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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방학 안내문 이걸 받아들고 취지에 공감하며 수긍하는 학부모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달된 공문 한 장에 애꿎은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 단기방학 안내문 이걸 받아들고 취지에 공감하며 수긍하는 학부모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달된 공문 한 장에 애꿎은 교사들이 학부모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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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네 뭐네 해도, 우리나라에서 선생만큼 좋은 직업이 또 어디 있어?"

퇴근길 아파트 승강기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5월 중 단기 방학'에 관해 이웃 주민들끼리 나눈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당장 '가정의 달' 5월이 오는 게 두렵다며, 대체 아이를 그 기간에 어디다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 아주머니의 눈빛이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오며 가며 눈인사를 나누는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이지만, 제가 교사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기에 바닥에 버려진 깡통에 발길질하듯 마구 '선생'을 욕해대고 있었습니다. 승강기에서의 잠깐 동안 함께 맞장구치는 제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난데없이 날아든 공문 한 장에 현장은 아수라장

집에 혼자 남겨질 아이 때문에 격주에 한 번씩 쉬는 토요일도 걱정스러워하는 맞벌이 부부들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 얘기 틀린 것 하나 없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고, 학교와 교사를 원망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나 교사로서 억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학부모들의 입장에서야 '학교=교사'로 인식할 테니, 교사가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적어도 이번만큼은 학부모들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라도 변명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어린이날과 부처님 오신 날, 앞뒤 연휴를 묶어 일주일을 통째로 쉰다는 이번 결정은 교사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학년 초만 해도 전혀 몰랐는데, 난데없이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5월 중 휴업을 융통성 있게 시행할 수 있다'는 공문 한 장이 내려오면서 많은 학교가 이미 짠 학사 일정조차 손보게 될 지경이었습니다.

하긴 지난해에 교사를 대상으로 방학 운영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뚱맞은(?) 설문에 응하면서, 여름과 겨울, 1년에 두 번인 정기 방학을 다른 시기로 분산시키는 방안이 구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 단기 방학 계획이 그 설문 취지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수많은 학부모에게 혼란을 주는 방학 계획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렇게 다급히 시행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단기방학' 실시에 이곳저곳 온통 한숨소리 뿐

더욱이 모든 학부모에게 알려진 것은 공문이 내려오고, 학교별로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절차를 밟은 한참 뒤였습니다. 어느 학부모의 말마따나, 학교에서 보낸 통신문을 받아보기에 앞서 언론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교사들도 술렁거렸습니다. 학기 중에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됐다며 좋아하는 반응도 없진 않았지만, 대개는 많은 학부모들에게 예상치 못한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며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나아가 그렇잖아도 교사에 대한 시각이 좋지 않은 마당에 뻔히 '욕먹을 짓'이라며 거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떻든 우려는 미풍에 그치고, 시교육청 관내 모든 초·중학교에서 시행하기로 결정된 마당에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두루뭉수리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학교장 재량'이라지만, 일선 학교와 교사는 공문에 적혀 하달된 내용을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결정된 세부 계획이 안팎에 알려지자, 박수 치며 즐거워하는 철딱서니 없는 아이들 빼고는 지금까지 이곳저곳 온통 한숨 소리뿐입니다. '윗분'들의 지시대로 따랐을 뿐인 교사들이 외려 맨 앞줄에 서서 학부모들의 돌팔매를 맞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제야 공식적인 단기 방학 안내문이 각 가정에 발송되었습니다. 방학 기간과 시행 목적을 알리려는 취지입니다.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맞벌이 가정·저소득층 자녀 등을 위한 대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는 내용이 짤막하게 소개된 점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내놓은 고육지책인 셈입니다.

지금이라도 단기방학계획, 물려주십시오

근심 가득한 학부모들의 손에 들려질 안내문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내려가다가 '목적' 부분에 눈이 멈췄습니다. 일선 학교로 내려 보낸 공문에 적힌 것을 안내문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니, 단기 방학 계획을 구상한 교육청의 '작품'입니다.

가. 가족·효도와 관련된 각종 활동을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제공
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휴업일 운영으로 지역 문화 활동 활성화
다. 휴가의 질적 개선을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토대 마련

이걸 읽고 머리 끄덕이며 수긍하는 학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를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차라리 '교사들의 복지 차원에서 시행되는 것'이라고 썼다면 솔직하다는 느낌이라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승강기에서의 '봉변'만 떠올리면, 지금이라도 단기 방학 계획을 물려주십사 싶은 생각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단기방학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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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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