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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 겉그림
<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겉그림 ⓒ 서정시학
우리말도 다 배우기 전에 이미 우리 아이들은 '미쿡말'부터 배운다. 미역국을 먹자고 '미역'을 배우는 게 아니라 우유 한 잔 먹자고 힘겹게 미역이 아닌 '미옄'을 혀 안에서 굴려댄다.

 

어딜가나 영어로 된 간판을 보고 산다. 영어를 피해서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국어도 국어가 아닌 '영어'로 배우자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동네일을 보기 위해 때때로 찾던 동사무소도 이제는 어디로 가고 없다. 대신 무슨무슨 '센터'로 가야한다.

 

하도 '미쿡말'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다보니 우리말을 배우기 위해 글방을 가야할지 '스쿨'을 가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영어만능시대'에 살면서도 '우리말 전성시대'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데에 조금이라도 동의한다면, 여기 시집 한 권을 주목해주기 바라다. '표준어'도 아닌 '방언'을 주인공으로 삼아 세상에 태어난 <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라는 시집이다.

 

'표준어' 대우를 받는 서울말을 다 익히기도 어려운 판에 갑자기 무슨 '사투리'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집은 결코 제목 한번 힐끗 보고 말 시집이 아니다. 물론, '표준어' 대우를 받는 서울말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고생하는 마당에 각 지역말을 지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다양한 '우리'말을 하나하나 놓치다보면 어느새 '외래종'들이 우리말을 다 잡아먹어버릴지도 모른다(지나친 상상이기를 바랄 뿐이다).

 

시 한편 한편마다 '표준말'과 '방언' 두 가지로 나누어 알려주니 우리말이 지닌 매력을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그야말로 '지화자, 좋다!'이다.

 

우리말을 지키려면 '우리' 말들을 알아야

 

우리말로 해도 충분한 상황에서 늘 우리는 외국말, 특히 영어를 사용하려고 진짜 '용쓰며' 산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겁다고 하면 그만인데 어떤 이들은 항상 '엔조이'라고들 한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 정도로 말하면 될 것을 어떤 이들은 굳이 '이런 케이스, 저런 케이스'라고들 한다. 이런 식으로 예를 들자면 정말 끝이 없다.

 

이렇게 한글파괴 현장을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가끔 불안하다. '뭐 묻은 놈이 뭐 묻은 놈 나무란다'는 말처럼, 정작 꾸중을 들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글에 대한 그런 소박한 관심과 사랑 때문인지 <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우선 잔뜩 긴장했다. 날마다 쓰고 듣는 '표준어'도 때때로 헷갈리는데 들어본 일도 드문 방언을 어떻게 알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곧 사라졌다.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각 지역 방언으로 된 시를 '표준어'로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한국시인협회가 한국 현대시 100년, 한국시인협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각 지역 방언으로 된 시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낸 것은 이 시집이 처음이기도 하단다. 101명이나 되는 각 지역 출신 시인들이 엮어 낸 이 아름다운 '말잔치'는 그 안에 이미 우리나라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 삶을 참 많이도 알차게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에도 '사투리'가 있다?

 

다른 곳과 비교해서 특별히 '우리 고장, 우리 말'이라고 할 만한 게 없어보이는 경기도에도 '사투리'는 있다. 경기도도 역시 '우리'말이 숨쉬는 곳이다. 사실, 이 시집에는 경기도 말로 된 시가 딱 한 편만 있다. 그래서인지, 경기도 말로 된 시를 보는 내 마음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이 시집의 유일한 경기도 사투리 시 제목은 '용인 전상서'이다. 이 시 지은이는 경기도 용인이라는 곳이 각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들르는 길목과 같아서 의외로 여러 지역 말이 섞인 듯한 재밌는 방언이 스며있다고 말한다. 이 시를 잘 따라 읽다보면, 현대에도 여전히 가장 낯선 말인 제주도 말 못지 않게 경기도 말로 된 이 시도 재밌다는 점을 느낄 게다. 방언시집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방언과 '서울말' 두 가지로 이 시를 소개한다.

 

<용인 전상서>

-쪽진 머리 곱던 용인 외숙모는 떠도는 외숙부 때문에 늘 독수공방이었다. 그래도 입담은 늘 질퍽했다. 외숙모의 어느 하루 입담이다.

 

김유선

 

아녀, 바람 잡는 남정네 생각 안혀, 참말여, 성님

엄니는 맨날 나만 보구 민충이, 민충이 하며

싸래기 밥만 먹었니, 성질머리하능거 하구는

부어터져서는, 연실 입이 댓발이네

속알 딱지가 밴댕이여 여시가 낫지, 게다 내우까지 한다며

뒷구녕 말하는 거 나두 알어

바람 피는 남편에 복도 많지

짜장 안강굴 승년으루 살 걸, 잡것, 우라질 인생살이

줄창 베라묵을 날들이야, 에라, 설라무니,

성님, 그나 예나 밥힘으로나 버텨야지

싱건지며 짠지며 겅거니 많응께 얼릉 오기나 하셔

아줌니가 봌에서 술국이며 누루미며 맨들고 있어

살광에 술겅지도 남았어 깨부숭이 챔기름 듬뿍 널게 입맛 날겨

한 케 한 케 흰설기떡 설듯 혼자 속볶지 말구, 경을 칠

달챙이 숟갈처럼 날서가지구선 어쩌,

제 살 깎기지, 그래설레매

사는게 그려 암 것두 아녀, 흐르는 물야, 진짜루

개울 건너 굴량둘 바지랭이 논배미 돌망구 엄청났지 그치

땡빛에 불나지 뱉에 있어봐, 내 속이 그려

아유 징그러워, 건 그쿠, 어찌거나

보재기처럼 넉넉해야지, 우덜은 그케 배웠어

사진각구 속 후루매기 입은 아부지땜에 공부 짧았다는 말두 말어

호박풀떼기 먹구 밑창까지 가두 헐 사람은 혀

짚똥가리 뎀자리에서두 꽃이 피잖어

잘해야지 자식들 대 내린다구

성님두 지지리 궁상 떨지 말구, 색경두 좀 보구, 밴니도 바르구그셔,

그 속도 속이 아니잖어.

 

표준>>>

<용인 전상서>

-쪽진 머리 곱던 용인 외숙모는 떠도는 외숙부 때문에 늘 독수공방이었다. 그래도 입담은 늘 질퍽했다. 외숙모의 어느 하루 입담이다.

 

아니야, 바람 피는 남편은 생각 안 해, 정말이야, 형님

어머니는 매일 나만 보고 민춤이, 민춤이(미련둥이) 하며

반 토막 말하기는, 성질부리는 거 하고는

성이 났네, 또 입이 다섯 발 나왔어

속이 밴댕이처럼 좁아, 여우가 낫지, 거기다가 내외까지 한다며

뒤에서 말하는 거 나도 알어

바람 피는 남편에 복도 많지

차라리 안강굴 중년으로나 살걸, 잡것, 우라질 인생살이

늘 빌어먹을 놈의 날들이야, 에라, 그건 그렇고,

형님, 거기나 여기나 밥힘으로나 버텨야지

싱건지며 짠지며 반찬 많으니까 얼른 오기나 하세요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술국이며 부침개며 만들고 있어

찬장에 술지게미도 남았어 깨소금 참기름 듬뿍 넣을 게 맛있을 거야

한 켜 한 켜 백설기 설듯이 혼자 속 끓이지 말고, 경을 칠

달챙이 숟가락처럼 날이 날카로워서는, 어쩌나,

제 살 깎기지, 그건 그러하니

사는 게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흐르는 물이야, 정말로

냇물 건너 굴량들 바지랭이 논배미에 돌멩이 엄청 많았지 그렇치

땡볕에 불나지 볕에 있어봐, 내 속이 그래

아유 지겨워, 그건 그렇구 어쨌거나,

보자기처럼 마음 넉넉해야지, 우리들은 그렇게 배웠어

사진액자 속 두루마기 입은 아버지 때문에 공부 못했다는 말도 말어

호박죽 먹고 밑바닥까지 가도 할 사람은 해

짚더미 두엄자리에서도 꽃은 피잖어

잘해야지 자식들에게 물려지는데

형님도 궁상 떨지 말고, 거울도 보고, 입술도 칠하고 그러셔,

그 속도 속이 아니잖어.

 

좋다! 참 좋다! 이렇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우리 고장, 우리 말'을 듣고 읽어보자니 절로 어깨가 으쓱인다. 말이란 그저 글자가 아닌 우리 삶이 담긴 얼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그만큼 우리나라, 우리 고장 정서를 담아낸 우리말에 익숙해야 외국말로도 그것을 잘 드러낼 수 있다. 우리말을 잘해야 외국말도 잘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오탁번 시인께서 회장을 맡고 계신 한국시인협회가 이 시집을 낼 쯤에는 오세영 시인께서 회장을 맡고 계셨다. 이 시집 머리말에서 오세영 시인께서 하신 말씀들이 다시 마음을 살살 부드럽게 매만진다.

 

우리말 잘해야 외국말도 잘 한다

 

오세영 시인께서는 "문화는 다양성과 개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경우에만 그 존재 의의를 지닐 수 있"다고 하셨다. "다양한 지역 문화가 어울려 하나의 민족문화가 되고, 다양한 민족문화가 어울려 다시 하나의 세계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도 하셨다. 그래서 시인께선 '여러개이면서도 하나', '다양성 속에서의 하나'일 때 진정 돋보이는 아름다움을 드러낸다는 생각을 말씀하시고 싶어하셨다.

 

"아이고 이 처녀야 노처녀야"라는 말이 물 건너 제주도에 이르면 "하이구 요 비바리야 냉바리야"로 바뀌는 걸 듣노라면, 지금껏 입가에 웃음을 띠던 독자들 낯빛이 또 변할런지 모르겠다(이 시구는 강통원 시인의 제주말 시(詩)인 "비바리야 냉바리야"의 한 구절이다). 그러나, 늘 쓰고 늘 듣는 우리말이 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답다는 사실과 힘써 노력하지 않고서는 정겨운 우리말을 다 지켜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조금만 노력하면 아름다운 우리말이 늘 우리 옆에서 살면서 살가운 인사를 해주리라.

 

그래서 평소 가보지 못했던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말을 일부러 배워보는 노력도 해보면 좋겠다. 그 작은 배려가 이어질 때 우리나라에는 갖가지 모양과 색을 지닌 아름다운 '꽃들'이 참 많이도 필 게다. 언제까지든 또 어디에서든.

 

참고로, 이 시집에 나온 시들을 지역별로 나누어보면, 강원도 6편, 경기도 1편, 경상남북도 32편, 전라남북도 23편, 제주도 17편, 충청남북도 18편이다. 재밌는 것은, 북한말로 지은 시도 4편이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101명에 이르는 각 지역 시인과 101편의 다양한 시를 만나게 된다. 책 뒷편에 있는 '시인의 약력'은 덤이다 여기고 읽어주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방언시집 요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 한국시인협회 엮음. 서정시학, 2007.
한국시인협회 www.koreapoet.org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 - 시인 101명, 내 고향 말로 시를 쓰다

한국시인협회 엮음, 서정시학(2007)


#방언시집#한국시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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