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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를 찾은 관광객들.
 소록도를 찾은 관광객들.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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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만나면, 잃어버린 자아의 복귀를 꿈꾼다. 그것이 여유와 사색의 시간여행이다. 여유와 사색이 없다면 우리네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며, 여행이라는 축복이 없다면, 얼마나 인생이 슬픈 여정이겠는가.

그러한 면에서 여행은 정신적 마음의 동산이요 사색의 바다이다. 그곳에서 세상을 비우고,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자아를 찾는 수행자의 모습을 좇는 기쁨 또한 여행이 주는 또다른행복이다. 

일상에서의 탈출, 오랜 만의 외출, 자연으로의 귀의. 지난 일요일(13일) 아침 산과 들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의 싱그러움과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 모든 삶을 뒤로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광주의 대표적인 문학단체인 문학춘추작가회에서는 해마다 <남도문화의 뿌리찾기> 문학기행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의 기행지는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가 있는 고흥 소록도이다.

일정은 옛 전남도청 앞에서 출발하여 화순 너릿재 휴게소를 거쳐 고흥버스터미널→녹동항→고흥 2경 소록도→녹동→고흥 3경 고흥만→보성→화순→광주 순으로  짜여졌다. 작가회 회원, 일반인 등 50여명이 동참했다.

 애환의 추모비.
 애환의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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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소록도병원.
 국립소록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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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만발한 남도로의 여행

오전9시 옛 전남도청 앞을 출발한 버스는 내리 쉼 없이 초록으로 물결치는 대지의 기운을 가로질러 녹동으로 질주했다. 간간히 창가에 스쳐가는 산과 들의 벚꽃, 진달래, 개나리, 꽃 잔디 등 형형색색의 봄꽃 향기가 눈과 가슴을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가득 채우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고흥 녹동 항까지는 약 2시간 소요. 옛날에 비하면 길이 많이 좋아지고, 시간이 많이 단축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고흥반도는 남도의 끄트머리로 멀었다.

버스 안은 온통 이야기 꽃으로 열기가 뜨겁다.  ‘오늘의 문학기행은 설레는 가슴으로 소중한 우리의 것을 보러가는 것이다’라는 김영관 회장의 인사말씀, 300여명 가까운 문학춘추작가회 회원들의 신상명세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속속들이 알고 있는 문학춘추작가회 박형철 이사장의 참석회원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 참석회원들의 오늘의 만남과 여행에 대한 정감어린 멘트, 떡, 과일, 음료, 술과 안주 등 푸짐한 먹을거리가 한데 어우러져 여행의 맛을 한층 돋운다.

특히 피아노, 발성연습, 시로 가슴 적시면서 남은 여생을 ‘피천득’처럼 살고 싶다는 90노구에도 각종 문학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김재민 시인과 80연세에도 ‘정구와 수영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김학근 곡성군 문화원장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건강관리 비법,  '내 삶의 즐거움은 술 마시는 것이다. 오늘은 내 생일날이다’는 손광은 전남대 명예교수의 너스레, ‘만남은 쉬우나 헤어짐은 어렵다’는 조영일 동시 작가의 인연관, 기타 조수웅 전남문협회장, 임청자 전교장 선생님 등 문학의 원로들께서 들려주시는 덕담과 주옥 같은 문학의 향기가 참석자들의 메마른 가슴에  샘물 같은 생수를 흠뻑 부어 준다. 문학기행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시원스레 탁 트인 들판의 봄꽃 향기를 만끽하며, 중간에 휴게소 한군데 들려 오전11시 경에 녹동항에 도착하니, 바로 600미터 전방에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녹동항은 크고 작은 배들과 관광버스의 행렬로 북적대고, 관광객들의 발길로 대만원이다. 항구가 살아 움직이는 듯 부산하다.

 감금실.
 감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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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시실.
 검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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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센병 자료관.
 한센병 자료관.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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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는 오전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15분 간격으로 관광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소록도 병원 전용도선, 일반용 도선도 매일 수시로 운항되고 있다. 차를 싣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섬에 내려 소록도병원 입구에서부터는 도보로만 관람이 가능하다.

오전 11시 25분 선착장에서 140여명이 탑승할 수 있는 카페리호 유람선을 타고 배에 오르니, 낭만적인 바다가 관광객들을 넓은 가슴으로 반긴다. 그러나 바다 감상도 잠시, 탐승한 지 채 4분도 되지 않아 소록도에 도착했다. 여름철엔 녹동 아이들이 헤엄쳐 건너기도 한다는 섬, 소록도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한센병 원생들의 한과 눈물의 섬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더 유명한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 도양읍 소록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 운다.

소록도 선착장에 발을 내딛으니, 맨 먼저 보이는 게 '국립소록도병원' 표지석이다. 그 옆으로 순록탑이 세워져 있다. 6·25전쟁 당시 한센병 원생들을 지키다 북한군에게 학살당한 병원 직원들을 기리는 탑이라고 한다.

'소록도는 관광지가 아니다'는 입간판이 무색할 만큼 관광객들이 쉼 없이 몰려든다. 우리 일행들이 도착했을 때에도 소록도 입구에서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이 넘쳐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섬 가운데 있는 중앙공원까지만 출입이 허용된다. 전염 우려가 아닌 한센병 환우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경계다. 자원봉사자들이나 면회자들은 환자지대까지 출입을 할 수 있지만, 관광객들은 환자지대로 들어갈 수 없고 숙박도 금지되어 있어서, 오후 6시 이전엔 모두 육지로 돌아와야 한다.

현재 소록도 주민은 약 900여명. 이 가운데 한센병 환우는 700여명 정도다. 나머지는 보건복지부 소속의 직원과 가족들로 개방지역에서 환우들과 따로 거주한다. 섬에 포근히 파묻힌 전원주택들은 모두 직원들이 머무르는 관사다.

우체국부터 교회, 성당, 사찰까지 그럴듯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매점도 여러 군데 눈에 들어온다. 풋풋한 솔숲과 눈이 시릴 만큼 깨끗한 소록도 해수욕장 뒤로 아담한 초등학교도 자리 잡고 있고, 얼마 전에는 카페도 생겼다.

소록도는 여의도 면적의 1.5배인 15만평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고흥지역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섬 안의 주거시설은 국립병원과 환자들이 모여 사는 요양원 같은 곳과 개인이 살림을 하며 사는 연립주택 같은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 병의 심각한 정도에 따라 살고 있다.

이곳은 섬 전체가 울창한 산림과 바다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이룰 뿐 아니라, 도로변 곳곳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쪽 해안에는 해수욕장이 있다. 경치가 뛰어나고 기후 또한 따뜻할 뿐 아니라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고운 모래사장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섬의 남단에 소록도 등대가 있고, 각종 의료시설 및 복지시설을 비롯하여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종교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 일본인이면서 조선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등 공원 곳곳에 환자들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적 기념물들도 세워져 있다.

제2안내소를 거쳐 소록도 병원과 중앙공원이 있는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탄장(愁嘆場)'이라는 안내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이곳은 직원지대와 병사지대로 나뉘어지는 경계선으로 1950-1960년대에는 철조망이 쳐 있었다.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하여 환자자녀들을 직원지대에 있는 미감아보육소에 격리하여 생활하게 하였으며, 병사지대의 부모와는 이 경계선 도로에서 한달에  단 한번 면회가 허용되었다.

이 때 미감아동과 부모는 도로 양옆으로 갈라선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눈으로만 혈육을 만나야만 하는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탄식의 장소'라는 의미로 '수탄장'이라 불렀다.

이리저리 휘어진 곰솔과 해안로를 따라가니, 국립소록도병원 본관 건물이 나타난다. 저 만치 녹동항과 소록도를 있는 1160m의 하얀 연륙교도 보인다. 소록대교다. 지난해 완공을 목표로 했는데, 공사장 안전사고로 인해 올 10월로 개통이 미뤄졌다고 한다. 그래도 어둠이 깔리면 형형색색의 조명이 인근 바다에 뿌려져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뭍이 섬으로 보내는 일종의 화해 메시지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역사는 1916년 일본 명치천황이 하사한 기금으로 설립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 시작되는데, 이 병원은 당시 조선 내의 유일한 한센병 전문의원이었다. 일찍부터 나환자 치료를 위해 건설된 국립소록도병원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아름답게 조성된 중앙공원내 그림같은 나무들.
 아름답게 조성된 중앙공원내 그림같은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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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한양행 나무로 불려지는 설송.
 유한양행 나무로 불려지는 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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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드러진 벚꽃 앞에서 단체 기념촬영.
 흐드러진 벚꽃 앞에서 단체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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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슬픈 역사 '중앙공원'

병원 본관 앞에 세워진 '애한의 추모 비'가 눈길을 잡아끈다. 해방 직후 자치권을 요구하는 한센병 환우 84명을 죽창과 총으로 학살해 묻었던 참혹한 현장이다. 이곳의 중앙공원은 1936년 12월부터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환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6천평 규모로 조성되었다.

지금도 공원안에 들어서면 환자들이 직접 가꾸어 놓은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나무들과 함께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빼어난 조경이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공원의 화려한 겉모습만으로는 아픈 역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공원에는 갖가지 꽃과 나무들로 꾸며져 있었는데, 나무들이 가히 뛰어난 그림이요, 한폭의 풍경화다.

이곳 중앙공원에는 종려, 황금 편백, 적송, 팔손이, 차나무, 향나무, 호랑가시나무, 백일홍, 설송, 녹나무, 후박나무, 히말라야시다, 빨간단풍나무, 사람인체 모양의 팽나무 등 나무 수백 종과  500여 종의 희귀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특히 일명 유한양행 나무로 불려지는 20억짜리 설송은 100년 수령으로 100가지가 뻗어있는데, 유일한씨가 와서 보고는 안티프라민 뚜껑이 이 소나무를 광고 소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중앙공원 입구에 있는 교도소로 갔다. 현재 건물은 비어있고, 당시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일제 시대에 소록도에서 일을 하다가 병이 심해져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원생들은 이곳에 감금되었다. 빨간 벽돌 건물인 교도소 마당 양쪽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는 감옥이 있고, 안쪽으로는 실험실이 있다.

일제 때의 원장이 이곳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들을 불법감금하고 출감하는  날에는 예외 없이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행했던 감금실과 검시실. 이 검시실 앞에는 25세 젊은 나이에 강제로 정관수술을 받은 환자의 애절한 시가 남아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설명에 따르면, 감금된 원생의 대부분은 굶겨서 죽였고, 일부는 생체 실험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실험실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 가운데에 커다란 돌로 만들어진 하얀 침대가 놓여있고, 찬장 안에는 수술도구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짐작하게 해 주고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단종수술을 받은 환자가 쓴 통곡의 시를 읽으니, 마음이 절로 아프다.

소록도 감금실 벽에 있는 시

아무리 죄가 없어도 불문곡직하고 가두어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억울한 호소는 들을 자가 없으니 무릎을 꿇고 주께 호소하기를
주의 말씀에 따라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내가 불신자였다면 이 생명 가치 없을 바에는
분노를 기어이 폭발시킬 것이오나
주로 인해 내가 참아야 될 줄 아옵니다.

이 속에서 신경통으로 무지한 고통을 당할 때
하도 괴로워서 이불 껍질을 뜯어 목매달아 죽으려 했지만
내 주의 위로하시는 은혜로 참고 살아온 것을 주께 감사하나이다

저희들은 반성문을 쓰라고 날마다 요구받았어도
양심을 속이는 반성문을 쓸 수가 없었노라. (김정균, '감금실' 전문)

 올 10월 개통 예정인 소록대교(소록도-거금도 연결도로).
 올 10월 개통 예정인 소록대교(소록도-거금도 연결도로).
ⓒ 오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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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나병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기사로 이어집니다.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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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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