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 송주민

 

"우리 아이들을 보라. 정말 절박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여기 나왔다."

 

청와대 분수대 앞 들머리에 앉아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진화 위원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정부의 방침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하자는 것"이란 격한 표현도 썼다.

 

정 위원장은 25일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기한 없이 간다"는 짧은 말과 함께 청와대 앞에 자리를 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전격적인 '4˙15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에 이어 연달아 진행된 서울시 교육청의 '학교 자율화 세부 추진계획'은 정 위원장에겐 큰 충격이었다. '무제한 입시지옥' 속에 아이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시키는 방안이라는 것.

 

정 위원장은 "도대체 얼마나 아이들이 죽어나가야 하냐"면서 "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니냐"며 혀를 찼다.

 

2006년 이어 두 번째 단식... "역주행 못 견디겠다"

 

정 위원장이 단식 농성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5월, 서울시 교육청의 '국제중학교 설립 추진'등에 맞서 16일간 교육청 앞에서 단식을 진행했다.

 

"그 때는 서울시 교육청에서 후퇴했다"며 잠시 미소를 지어보인 정 위원장은 "그런데 지금은 간단치가 않다"고 말했다.  '수준별 이동수업 내실화', '방과 후 학교운영 계획' 등 29개 조치를 즉각 시행하고, 13개 법령을 정비한다는 정부의 광범위한 자율화 방침 때문.

 

정 위원장은 "우리가 이미 30년 전에 경험했던 교육현장의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 현 정부가 없애려는 29개 조치"라며 "더 이상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 싶어 정말 절박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무기한 단식에 나선 정 위원장과 함께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 걸터앉아 30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 송주민

-2년 전에도 교육청 앞에서 16일간 단식을 진행했다.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가?

"당시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국제중학교를 만든다는 안과 '좋은 학교 만들기' 자원학교 선정 안을 냈었다. 당시에는 교육청이 전교조가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단식을 진행하자 후퇴하는 안을 내놨다. 그러나 지금은 몇 개의 이슈로 서울시 교육청을 상대했던 때와는 다르다. 전국에 있는 시도교육청별로 다 일어날 문제다. 지금 정부가 폐지하려고 하는 29개 지침이 그냥 만들어 진 것 아니다. 우리가 이미 30년 전부터 경험했던 일에 대해 부작용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최소한의 공교육 안전판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행위 아닌가.

 

-'영어 몰입 교육'등 이명박 정부에 대해 전교조가 날을 세우고 있는데, 자율화 방침이 또 터졌다.  

"정신없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내 버리고 있지 않나. 과정과 절차를 모두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독주하기 때문에 정말 화가 난다.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교사들의 의견수렴조차 전혀 없는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 아이들에게 경쟁이 부족한가. 지금도 너무 지나쳐서 학생들이 마음 붙일 때가 없다. 가정에서의 대화시간도 짧고, 잠자는 시간도 짧다. 도대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뭐가 있나. 이것은 교육이 아니고 사육이다. 실제로 우리는 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다. 얼마나 학생들이 더 죽어나가야 할까." 

 

-전교조는 현 상황도 부족해서 '공교육 정상화'등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많은데, 정부는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답답하다. 지금도 미흡한데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학교 자치'다. 진짜 '학원자율화'를 하려면 학생회,학부모회,교사회를 법제화 해야 한다. 지금은 이들이 학교에 참여할 통로가 없다. 학부모회도 대표와 운영위원 뽑아 놓으면 끝이다. 보통의 학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돈과 시간 있는 학부모가 대표로서 목소리를 낸다. 학교에 참여하는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식의 자율화를 한다는 것은 학교장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는 교육 철학 자체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 학교장, 교육감 권한으로 교육을 집중시키면서 일반 교육주체들의 소통창구를 원천봉쇄했다. 그러면서 '입시 무한경쟁'만을 외치고 있는 게 이 정권의 교육철학이다. 우리는 다르다. 시급히 이 문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한편, 학교개혁에 대한 움직임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가 핀란드,스웨덴, 프랑스가 아니지만 입시지옥의 현실 속에서도 변화를 위한 작은 몸부림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입시경쟁 교육'과는 다르게 대안적인 방향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자율적 교육은 찍기 교육이 아니다"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전교조 정진화 위원장 ⓒ 송주민

- 서울시 교육청에서 발표한 '방과 후 학교운영 계획'이 질 높은 교육을 싼 가격에 받게 해 사교육 절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방과 후에는 교과교육이 아니라 특별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규시간 동안 교육해서 마쳤으면, 후에는 독서나 상담,사회체험,봉사활동 등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 방안은 초등학교까지 방과후 수업으로 영어와 수학 등의 교과교육까지 허용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방과후 수업을 학원에 맡기겠다는 것 아닌가. 더우기 학원 강사가  가르치는 것은 폭넓은 교육과 인성교육이 아니다. 성적올리기식 찍기 교육이 될 것이 분명하다."
 

- '수준별 이동 수업' 방침이 효율적인 수업 운영이라는 의견도 있다.

"결국 위장된 우열반 아닌가. 한 교실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비슷한 아이들만 모아놓고 획일적으로 하는 교육이 다원화가 아니다. 장애아동 교육할 때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같이 섞여 있을 때 서로 배우는 것이다. 일반교육도 마찬가지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한데 마치 이것을 아이들을 나누는 유일한 잣대인 것처럼 내세우는 것은 잘못이다.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융화되려면, 나아가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해 내려면 아이들이 교실에 함께 있어야 한다."

 

"수준별 학습 그만두고 개별화·협력화 교육으로 가야"

 

- 지금 하고 있는 영어, 수학의 수준별 학습도 문제가 있다 보는가?

"몇 년 전에 다 해 본거다. 효과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사실이다. 연구결과도 많이 나와 있다. ABC 우열반으로 나눴을 때, 못하는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을 '열반'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극이 없다. 오히려 공부를 안 하려고하고, 책상에 엎어져 있고, 교사마저도 의욕을 잃게 된다. 그렇다면 우반은 괜찮을까 거기 안에서도 특별히 잘하는 학생 빼고 나머지 학생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그동안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보니 포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자기 존재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게 낙인찍기 수업은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수준별 교육이 아니라 개별화 교육을 해야 된다. 학생 개개인에 대해서 다각적이고 심층적인 수업을 해야 한다.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아이가 섞여서 하다보면 서로 간 협력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 한 교실 안에서 개별화 수업과 통합 교육을 함께 진행하자는 것이다."

 

- 언제까지 단식 농성을 진행할 계획인가.

"기한 없이 한다. 부작용에 대해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규제니까 푼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교육주체들을 다 포함해서 같이 공개토론 하자고 얘기했을 때 이 문제에 대해 '경청 하겠다, 전면 수정할 용이 있다'는 방향으로 나오기 전 까지는 단식농성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


#학교자율화#전교조#정진화#우열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