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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원한 동생은 계속 잠을 잡니다. 벌써 점심때도 한참 지났건만, 동생은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방바닥이 찰까봐, 전기장판까지 가져다주었지만, 장판은 가져다 놓은 그대로 접혀진 채 방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아마도, 장판 깔 여력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긴 무슨 의욕이, 무슨 힘이 있을까요. 3일간 항암치료를 받고, 음식 냄새 때문에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는데, 어디서 힘이 날까요.

방바닥이 많이 찼을 텐데도, 동생은 괜찮다고만 합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어제 병원에서 입고 온 옷 그대로 잡니다.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자면서 추워서 떨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4월 25일은 동생이 3살이 되는 날입니다. 3년 전 이날 동생이 수술을 받았거든요. 동생이 몸이 좋았더라면, 그 정도까지 욕심내지 않더라도 항암치료 마친 지 얼마쯤 되어 입맛이 돌아왔더라면 작은 케이크라도 하나 사서 촛불 3개를 켜고 생일 축하라도 했으련만, 이날은 마침 동생이 퇴원하는 날입니다. 3일간 맞았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입니다.

동생 퇴원을 시키려고 병원에 가느라 지하철을 탔는데, 곧 동생이 전화를 했습니다. 이제 겨우 11시를 넘긴 시각인데, 항암주사를 벌써 다 맞았다고 합니다. 점심도 취소했다고 빨리 오라고 합니다. 웬만하면 점심시간도 다 되었겠다, 점심을 먹고 퇴원을 해도 되겠건만, 음식 냄새에 아주 민감해져 버린 동생은 그냥 퇴원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케이크는 더더구나 말도 안 되는 거지요.

케이크는 못 먹더라도 미역국은 못 먹더라도, 한 끼도 못 먹은 동생 밥 먹이려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전복을 꺼냅니다. 2주 전 동생이 치료 받을 때, 엄마가 가지고 온 전복입니다. 제가 전복을 만질 줄 모르니까, 굳이 그 전복을 손질해주려고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것입니다.

치료하고 퇴원해서 기운 없는 동생 먹이려고, 참 멀리서 가지고 오신 전복입니다. 그 전복을 총총 썰어서 비닐봉지 하나에 전복 하나씩을 담아 냉동실에 넣습니다. 퇴원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죽을 끓이라고 하십니다. 쌀은 요만큼 넣으라고 하면서, 주먹을 작게 쥐어 보이십니다.

전복 참기름을 두르고 전복을 볶습니다.
▲ 전복 참기름을 두르고 전복을 볶습니다.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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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복을 끓여 보려고 전날,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을 시켰습니다. 죽 끓일 준비를 합니다. 쌀 한 컵을 씻어 놓고, 전복을 참기름에 볶습니다. 비싼 전복이라고 비닐봉지에 묻어있는 국물하나까지 버리지 말라고 엄마가 말씀하셨는데, 그 비닐봉지에 물을 조금 부어 씻어서 그 국물을 죽에 붓습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아픈 막내 딸 먹이려고,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 전복을 사고 손질하고 또 죽을 끓였을지 제가 그 마음을 이해한다면 거짓말이겠죠. 엄마 정성의 반에 반도 안 되는 마음이겠지만, 그래도 동생이 이 전복죽을 잘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죽을 끓입니다.

생쌀로 끓이는 죽은 처음인지라, 물 가늠을 할 수 없어 중간에 물이 졸아드는 바람에 조금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물을 다시 붓고 끓이고 또 붓고 끓이고, 마침내 전복죽을 끓입니다. 

단백질이 부족할 거 같아 장 봐온 두부도 꺼내고, 멸치도 새로 볶아 상을 차립니다. 미역국이 없는, 케이크도 없는 동생 3번째 생일상이 차려졌습니다. 아침에 받는 생일상이 아니라, 저녁 늦게 받는 생일상이 차려졌습니다.

동생 덕분에 저도 전복죽을 먹어봅니다. 군데군데 섞여있는 전복이 참 쫄깃쫄깃합니다. 전복이 이런 맛이었네요. 전복죽을 다 먹고, 두부도 반 모쯤 먹고, 동생은 한 마디 합니다.

“오늘 나 3번째 생일인데…….”

생일상 미역국도 케이크도 없는 생일상
▲ 생일상 미역국도 케이크도 없는 생일상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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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3번째 생일이라고 해서, 동생에게 혹은 우리에게 더 소중한 날일까요. 이렇게 숨을 쉬고, 웃고, 즐거워하고 또는 가끔씩 화도 내고, 그렇게 살고 있는 이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할 텐데요.


#생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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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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