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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는 여성비하나 인신 공격성 발언을 최대한 피한다. <개그콘서트> 왕비호 같이 10만 안티를 양성하려는 야무진 꿈이 있지 않다면 시청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무슨 수로 견디랴.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중파의 이야기다. 케이블은 그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내세우며 통쾌하게 현실을 반영한다. 설사 그것이 막돼먹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우리 주변이야기, 궁상맞고 짜증도 나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운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3를 맞으며 우리 곁에 있다.

 

이영애, 이름 석자가 가지는 판타지란?

 

이영애, 한국 남성들에겐 전통적인 여성의 미가 떠오르고, 특유의 참한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그녀의 모습.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건장한(?) 체격에 먹는 것을 좋아하고, 약간은 되바라진 성격을 가진 대한민국 평균 여성이다.

 

영애씨는 직장에서 여성비하 발언과 인신공격을 밥먹듯이 당하고, 가정에선 노처녀로서 시집도 못가는 능력 없는 철부지 취급을 받는다. 이쯤되면 드라마 특유의 판타지가 '떡' 하니 등장해서 나름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주어야 할 터.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에 그런 판타지는 없다.

 

이런 일에 잠시 잠깐 짜증은 나지만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지원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날리거나, 퇴근 후 맥주 한 잔으로 위안을 삼는다. 엄마에겐 당당한 커리어 우먼으로서 가치를 설파하기보단, 짜증을 내다가 뒤에 가서 울어버리고, 결국은 집에서 독립하는 수순을 밟았다. 어디 현실의 굴레를 벗어던지기가 그렇게 쉽나. 지극히 우리 누나, 옆집 동생의 이야기가 '막돼먹은 영애씨'다.

 

케이블 특유의 적나라한 내레이션, 재미 쏠쏠한데

 

케이블 드라마의 특징은 적나라한 내레이션에 있다. 공중파 드라마는 보통 내레이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김수현 작가의 <부모님 전상서>나 <엄마가 뿔났다> 등의 작품에서는 내레이션이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인공의 입을 빌어서이다.

 

막돼먹은 영애씨는 3인칭 시점의 관찰자가 내레이션을 한다. 그것도 겉포장 다 뜯어내고, 마음 속 원초적인 본성을 모티브로 한다. 이 내레이션은 마초적인 관점에선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 보이는 영애씨의 소녀 같은 마음도, 지지리도 궁상맞으면서 능력 없는 혁규의 마음도, 마누라한테  말 한 마디 못하며 집안을 배회하는 영애씨 아버지의 마음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렇다면 왜 재밌냐고? 내 마음 들키면 창피하지만, 남의 마음 들여다보면 그 묘한 동질감에 끌리잖아!

 

공중파 드라마의 문제제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황금만능주의, 가정불화, 학벌사회 고발 등. 하지만 이마저도 재벌, 숨겨놓은 자식 등의 판타지와 결합되곤 한다. 물론 드라마가 판타지가 없으면 곤란할 터. 하지만 매번 되풀이되는 공식 같은 판타지에 시청자들은 질리기 십상이다.

 

한때,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드라마 열풍이 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로지 돈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막돼먹은 영애씨는 완전 우리 사는 이야기다.

 

대머리를 걱정하며 돈세기에 여념없는 사장 앞에서 윤과장과 정대리는 센스쟁이와 재치쟁이를 남발하고, 퇴직한 아버지는 숨겨놨다 걸린 비상금 30만원을 다시 받기 위해 어머니에게 하루 종일 징징대고, 쥐뿔 없는 윤과장은 지원을 좋아하지만 그녀가 이혼녀라는 압박과 미용실 사장님 은실의 재력(?)에 끌려 어설픈 줄타기를 한다. 이 모든 사례의 중심은 바로 돈이라는 것.

 

공중파 드라마는 이렇게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사랑이나 휴머니티, 혹은 새로운 판타지를 등장시켜 난관을 극복하곤 한다.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오히려 다양한 사례의 현실세계를 맞보게 해준다.

 

부잣집 아들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거덜난 능력없는 원준을 쑤근대는 목소리들, 공부와는 거리가 멀은 한량 대학원생 혁규의 팔푼이 같은 행동들, 명품계를 들어서 친구들과 명품을 돌려입는 양양과 땡전 한푼이 아쉬워서 병팔러 다니는 정대리까지.

 

지지리 궁상이라도 이게 우리 사는 얘긴데,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경제만은 살려줄 것 같은 대통령을 뽑은 바로 우리 얘긴데,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을 적나라한 파고든다.

 

물론 난관에 봉착하면, 내레이션이 위로도 하고, 영애씨 술도 한 잔 먹고, 때론 찌질한 캐릭터들이 진지한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디가랴 그 본성이!

 

여성에 대한 인식, 정면돌파만이 능사는 아니다?!

 

남성편향적이고 여성에 대한 비하가 꼬리에 꼬리는 무는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 이런 왜곡된 사회를 비판하며 정면돌파하는 캐릭터들이 드라마에 등장하면 우리는 대리만족 정도는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같은 얘기에서 어찌 위로를 받으랴.

 

영애씨는 항상 이런 왜곡된 사회의 중심에 서 있고, 피해자지만 이런 부분을 대놓고 소리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한 맛이 있다.

 

작은 회사지만, 그 안에서 능력있는 사원이고, 따뜻한 감성을 가져 주위 사람이 따르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항상 잘 먹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모습은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영애씨의 모습, 물론 그녀를 흠모하긴 하지만 그녀에게 드리워지는 시선이 여성비하와 인신공격이라는 원준의 용기있는(?)는 발언을 통한 에피소드가 드라마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나도 마초중심적 사회, 무지 싫어한다. 하지만 현실이니까. 버스 안에서 얄미운 정대리에게 발길질하고, 선 보러 나왔다가 외모만 보고 딱지 놓는 남자가 들어간 화장실 칸막이에 대걸레를 짚어던지는 그런 판타지를 오히려 기대하지 않을까?

 

벌써 시즌3. 프렌즈나 섹스앤더시티처럼 엄청난 시즌을 이어가길 바라는데, 자못 어떤 식의 결론을 이끌어 낼지도 궁금하다.

 

평범하게 결혼을 해서 살아가도, 홀로 독신으로 살아가도, 무작정 여행을 떠나도, 영애 씨의 결론에 남을 막판의 내레이션, 나는 너무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CASTO#막돼먹은 영애씨#영애씨#이영애#케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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