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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작 자기 사진은 못 찍는데: 사진을 찍다 보면 정작 자기 사진은 거의 못 찍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사진을 못 찍는 일이 하나도 아쉽지 않습니다. 남 사진을 찍으면서 남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자취를 오롯이 담아내는 일이 훨씬 즐겁고 반갑습니다.

 

자기 눈으로 자기 얼굴을 바라볼 수 없고 다른 사람들 얼굴만 바라보듯, 사진기는 우리 눈이 지닌 이런 빛깔을 고스란히 옮겨 가 세상을 담아내는 연장이라고 봅니다. 이리하여 내 눈으로 이웃을 보고 세상을 보고 둘레를 보듯, 사진기로 이웃을 담고 세상을 담고 둘레를 담는다고 생각합니다.

 

 

[8] 어떤 사진기를 고를까 생각하기 앞서: 어떤 사진기를 고를까 생각하기 앞서 어떤 사진을 찍을 생각인지를 먼저 잡아야 합니다. 무엇을 찍으려 하는가가 서 있어야 이에 알맞는 기계를 고를 수 있어요. 대충 찍다가 자기 사진감(주제)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찍을거리를 안 잡았을 때는 정작 좋은 기계를 손에 쥐었다 해도 제구실을 못하고 말지요.

 

 

[9]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만 찍으면 된다. 남이 찍는 사진을 흉내낼 까닭도, 부러워할 대목도 안타깝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10] 분통이 터지면서 배운 사진 : 50mm 렌즈 하나만으로 사진을 찍던 때 일이다. 가끔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나 사진작가라 하는 이들이 헌책방을 취재한다고 와서 엄청나게 좋은 장비로 사진을 찍어 가는데,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분통이 터지기도 했다.

 

저 사람들은 헌책방을 그저 기삿거리나 작품거리로 생각하고 찍어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네들이 찍은 사진은 퍽 그럴듯하게 보인다. 게다가 나로서는 돈이 없어서 사 쓰지 못하는 넓은각렌즈나 멀리보기렌즈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한편, 헌책방 일꾼과 책손들 앞에서 불까지 펑펑 터뜨리며 거리끼지 않고 마구마구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흔한' 사진만 찍는 사람들이라고. 자기가 헌책방을 찍는다면 헌책방을, 들꽃을 찍는다면 들꽃을, 공장 노동자를 찍는다면 공장 노동자를, 가을 들판 농사꾼을 찍는다면 가을 들판 농사꾼을 '작품'이나 '기사'로 찍을 일이 아니라고. 그 사람이나 그 자연과 하나가 되는 가운데 저절로 녹아들면서 찍지 않는다면 겉보기로는 더욱 그럴싸해 보이고 예술 값어치가 있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나는 내가 믿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는 사진을 찍을 뿐이라고.

 

이리하여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헌책방 구석구석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담는 한편,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다른 헌책방 삶을 담고, 헌책방은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니라 '책을 사고파는 자리'인 만큼 나부터 책을 즐기는 가운데 한두 장 사진을 찍을 뿐이요, 헌책방은 나 혼자만 책을 즐기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책 구경 하는 다른 책손들 비위를 거스르거나 귀찮게 하거나 번거롭게 하는 짓은 말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헌책방은 '사진 찍는 곳이 아니'고, 헌책방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사진을 '찍어대기만' 할 뿐, 자기가 찍는 곳을 속깊이 헤아리거나 마음 쓰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헌책방에서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달은 셈이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사진말#사진가#사진기#사진#사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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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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