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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어미의 부끄러운 고백

 

아들 아이에게 두고 두고 미안한 비밀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결혼 생활에 대한 심각한 회의 때문에 뱃속에 있는 아이를 낙태할까 말까 내 마음대로  아이 생명을 저울질한 사건이다. 

 

당시 나는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중이었는데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혼자 고민하다가 무조건 달려간 친구네 집에서 밤새워 구슬을 꿰며 마음을 추스른 뒤 차마 산부인과에 들를 용기가 없어 그냥 살아보자며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임신 7개월쯤 되었을 때 초음파를 통해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이는 주먹을 쥔 채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어 빨고 있었다. 귀중한 한 생명이 내 뱃속에서 손가락을 빨며 세상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로움을 넘어서 모성애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일까? 이후엔 어떤 이유로도 내 삶의 편안함을 위해 뱃속의 생명을 저울질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만혼이라 임신이 늦은 편이어서 병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초음파 검사를 받아라, 나이 많은 임산부일 경우 다운증후군 아이를 임신할 확률이 높으니 '양수천자법' 검사를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둥 이런저런 주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의사의 말에 덩달아 불안해진 나는 양수천자법을 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그 검사가 지닌 위험 부담도 만만찮다고 하기에 검사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검사를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이기심으로 귀한 생명을 살해하지 않은 사실에 더욱 감사한다.

 

초산인 엄마가 출산 후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우리 아기 손가락 발가락 다섯 개씩 달렸나요?"이고 그 다음이 "딸이에요? 아들이에요?"라고 한다. 실제로 아이를 안고 손가락 발가락을 일일이 세어봤다는 지인도 있으니 장애아 출산에 대해 어미들이 갖는 심리적인 공포감이 상당히 크다는 증거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문명의 이기를  통해 생명의 신비를 엿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문명의 이기를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 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양수천자법으로 장애 여부를 판별하고, 위험부담 요금을 물어 가며 초음파를 통해 태아의 성별을 감식한 뒤, 선별적으로 장애아나 여아를 살해하니 말이다.

 

사실 그렇게 마음대로 아이를 골라 낙태를 하는 것은  명백한 살해 행위임에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범죄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는다. 나 자신도 사실 잠정 살인까지 포함한다면 이미 두 번이나 태아를 살해했다. 한번은 심정적으로 또 한 번은 도저히 둘을 낳아 기를 자신이 없어서.

 

이제 비로소 생명의 존엄성과 신비에 대해 자문하다

 

마사 베크가 쓴 <아담을 기다리며>는 임신 중  아들이 저능아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 아이를 세상에 맞이하기로 결심해 아이를 낳은 하버드 생 부부의 실화이다.

 

박사과정을 앞에 두고 일어난 원치 않던 임신, 게다가 그 뱃속의 아이는 저능아일 것이라는 의학적 판별이 나와 산부인과 의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주변 사람들이 낙태를 권유한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지닌 최고 엘리트 부부. 한참 자신들이 계획한 출세를 향한 지름길을 달려가던 그들이 돌연 그 저능아를 낳기로 결심하자 대학 사회 모두가 경악한다.

 

마사 자신도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이성적인 이유를 댈 수 없다. 그러나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가 저능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그들은 여러 가지 신비한 체험들을 하게 된다. 보이는 세계나 외적인 것이 다가 아니며 인간의 삶은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세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큐가 35 정도인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실제로 그들 부부는 파탄의 위기를 경험하기도 하고 우울증과 한시적 절망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아이를 낳은 마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은 아주 틀린 말이다. 사랑은 지상에서 오직 하나 우리에게 서로를 가장 정확하게 보게 해주는 것이다."

 

뱃속의 아이들은 인간이 지닌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신과 닮은 놀라운 존재다. 하지만 죽음과 비견할 만한 어둠의 터널인 산도를 지나는 동안 그들이 지닌  놀라운 능력을  상실해 마치 씨앗이 움트듯 이 세상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신의 기쁨은 표시 없는 상자에서 표시 없는 상자로,

조그만 방에서 다른 조그만 방으로 옮겨간다.

빗물이 내리듯이, 장미가 땅에서 솟아오르듯이.

밥과 생선이 담긴 접시로 보이기도 하고

포도넝쿨이 덮인 절벽으로 보이기도 하고

안장이 얹혀 지는 말로 보이기도 한다.

이들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그것을 깨고 나온다.

- 책 인용

 

아담이 태어나기 두어 주일을 겨우 남겨놓고, 그녀는 그녀 자신이 비로소 정말로 그리고 제대로 깨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산과 의사가 나에 대한 처치를 거의 마쳤을 때 나는 처음으로 아담을 볼 수 있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내 작은 사람. 한 의사가 옆으로 움직이자 어른의 엄지손가락만한 조그만 발이

옆으로 발길질을 하는 것을 아주 잠깐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상적인 발이 아니라

걸 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엄지발가락이 다른 네 발가락과 약간 너무 벌어져 있고

작은 발가락 두 개는 거의 끝까지 붙어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기형은 분명히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알아볼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 특징을

살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명백하게 다운증후군 아기의 발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한 어떤 것 못지않게 그 발을 사랑했다. 나는 내 아기를 사랑했다. 아기에 대한 나의 사랑은 평범하고 제한된 것이고 필멸이 것이다. 다른 어떤 어머니라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그거면 되었다.

- 책 인용

 

아기를 낳아 본 어미라면 안다. 저 고백이 얼마나 절실하고 진심이 담긴 것인지를... 만일 내가 내 뱃속의 아이가 저능아이고 스무살 이전에 죽을 확율이 있으며 평생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난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결혼 생활이 파탄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하나로 뱃속의 생명을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며 잠정 살인을 염두에 두었던 이기적인 어미인 나라면….

 

어쨌거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생명의 비밀만큼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신비, 절대로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남겨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기심을 절제하지 못해  인간 스스로 절망과 불행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주려고 신이 베푸는 마지막 사랑의 선물이 될 것이기에.


아담을 기다리며 - 개정2판

마사 베크 지음,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2019)


#아담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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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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