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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무엇으로 하죠?"

"교열이 끝나고 곧 인쇄에 들어갈 예정인데..."

 

한 달 전인 4월 22일. 우연찮게도 '책의 날'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세상을 떠난 4월 23일은 1995년 제2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5개월 전부터 시작된 출판 작업이 막바지에 달했음을 출판사 편집진이 알려왔다. 일순간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인물과 사상> 출판사에서 2년여 동안 <오마이뉴스>에 실린 필자의 '지역언론 별곡'이란 별난 제목의 글들을 선별해 책을 내기로 의견을 모은 건 지난해 연말 무렵. 당시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의 강력한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참으로 유별난 서울 중심적 소통채널을 경계해 오던 그가 부합되는 의제에 경종을 울릴 만한 필자의 몇몇 글들을 눈여겨 보아왔던 모양이다.

 

'베스트셀러' 기본조건에 벗어난 책 그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과거엔 베스트셀러의 조건으로 통용됐지만 지금은 모든 보통 책에도 적용되는 이른바 3T 조건에 멀기 때문이다.

 

3T란 시점(Timing), 과녁(Target), 책제목(Title)을 일컫는다. 부연하자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독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제목으로 책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인터넷시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요즘이다.

 

이러한 조건 모두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들이었으니 출판사 편집자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는가. 아마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머리에 쥐가 났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내용을 수정하고 보강하면서 필자와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마다하지 않는 편집자의 진지함에 새삼 놀랐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시대라는 말이 드러내는 장밋빛 전망은 지역언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집중과 과점을 통해 형성됐던 오류와 권력을 해체하고 서울과 지역이 서로 평등하게 소통하는 세상은 꿈에 불과한 걸까?'

 

지난 2005년 2월 <오마이뉴스>를 통해 시작된 '우둔하고 미련한 화두'들이다. 3년여 만에 출판사의 피드백을 불러왔다는 점에선 내심 긍정적으로 반겼으나, 한편 걱정이 앞섰다. 서점에서 가장 팔리지 않는 유형의 브랜드가 '지방'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목의 책이라는 조심스런 진단들 때문이다. 책이 영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나. 초조함과 조바심, 수치심이 내내 작동했다.    

 

비록 부족할망정 독자들에게, 아니 지역언론을 자사의 방파제로 여기며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운영하는 제왕적 사주들에게 한번만이라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역언론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었지만 말이다.

 

이러한 마음을 읽었던지, 출판사 편집진은 더욱 뼈를 깎는 노력과 정성을 쏟아 부은 듯 했다. 책이 출간된 이후 제목과 표지,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 등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책의 편집과 교열 등 출판 작업은 그렇게 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5월 21일. <기사를 엿으로 바꿔 먹다뇨?>란 큼지막한 제목의 책을 소포로 받아든 순간 출판사 편집진이 그간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한 눈에 읽을 수 있었다. '지역과 언론, 그 복마전을 들여다 보다'라는 조그마한 글자의 부제목이 오히려 더 강조되는 묘한 뉘앙스까지 묻어난다.

 

"책을 신문에 소개해주고 싶은데...죄송해요"

 

출판사 홈페이지를 본 몇몇 후배기자들이 축하전화를 해왔다.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역언론을 더욱 몰아세우며 사주의 전횡을 고발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해괴한 간부들의 해석 때문에 책 소개를 지면에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됨을 용서해 달라는 전화도 있었다.        

 

지나친 노파심 때문이었을까. 의외의 해석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자신들의 약점이 조금이라도 노출될까 두려워 책을 소개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사주들이 알까봐 미리 연막을 치며 차단하는 중간간부들의 충정어린 마음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다. 솔직히 그건 '지역언론 별곡'을 부르게 한 동인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전국지’들의 편향된 시각과 서울중심주의에 일침을 가하고, 지방에서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지방언론들의 실태와 한계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런 내막을 미리 예측한 것일까. 출판사는 더 나은 언론의 미래에 대한 희망, 이 책은 그런 소망으로 시작되고, 쓰이고, 묶였다”고 책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소통 채널은 온통 서울에 집중돼 있다. 모든 것은 서울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지역이라는 대칭 개념으로 바꾸어 불러도, 지방은 그저 ‘변방’으로 통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야 인재로 대접받고, 서울에서 살아야 ‘촌사람’ 소리를 안 듣고, 서울지역의 일간지가 전국지로 통한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새로운 미디어가 속속 등장하면서 소위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시대'가 열렸다고들 하지만,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소통은 머나먼 이야기다. 지역에도 언론은 존재하지만 지역 신문은 독자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열독률 1위, 판매부수 1위는 대한민국 지역신문사에게 꿈같은 이야기다. 서울지역 신문이 전국지로 통하는 세상, 지역언론은 언론계의 변방이다. 자사의 관점만을 은근슬쩍 강요하는 보수언론들의 횡포 속에 언론계가 멍들어가는 사이, 지역언론은 무관심과 냉대로 두 번 죽어간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지역언론계의 현실이다."

 

지역과 언론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로 해석하고 이해해줬으면

 

<기사를 엿으로 바꿔먹다뇨?>는 지역언론의 현실을 밝히고 되짚어 진정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진짜 소통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쓴 책이다. 이 책은 현 사회의 지역언론, 그 어두운 현실 속에 가려진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라는 점도 고백해 둔다.

 

따라서 지역언론사 사주들은 이상한 눈으로 이 책을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번 기회에 단 한 번만이라도 사내 모든 기자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면서 대안을 논한다면 그 이상 더 바랄게 없다.    

 

17년 넘게 지역언론에 종사하면서 현직 기자부터 논설위원에, 시민편집국장까지 역임한 필자가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본 지역과 언론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로 해석하고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고, 생활한 필자는 대한민국 사회가 들여다보지 않는 지역의 문제를 언론의 갈등과 결부시켜 풀어내려고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초창기 지역언론의 다양한 초상부터 해외의 잘나가는 지역언론사 현황 탐방, 지역언론의 다양한 문제와 갈등, 그리고 지역언론인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만감이 너무 왜소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작 지역언론의 어젠다를 논하고자 한 책이건만 지역언론 사주나 간부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필자가 직접 책을 소개하는 기막힌 지금 이 순간도 대한민국 언론과 사회적 관계망의 초상은 중심과 변방으로 갈려 소통불가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다.

 

<기사를 엿으로 바꿔먹다뇨?> 지역언론 희망 그린 첫 번째 스케치

 

잔뜩 비틀려 있는 지역언론의 초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안에도 어쩔 수 없는 사람냄새는 있다.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좌절스러움에도 여전히 희망적으로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필자는 작고 초라한 지역언론의 문제에도 해결책은 존재하며 비틀리고 막힌 소통의 구조도 언젠가는 올곧게 뚫릴 것이라고 믿는다.

 

시민 참여형의 저널리즘 등장과 지역언론의 자정 움직임, 그리고 새로이 언론의 그림을 그려가는 수많은 노력들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 <기사를 엿으로 바꿔먹다뇨?>는 그러한 필자의 희망을 그린 첫 번째 스케치라는 점을 고백한다.

 

"책은 독자가 펼치기 전까지는 '단어가 가득 담긴 상자'에 불과하다"고 혹자는 말한다. 하지만 사회적 허상을 심층적으로 파헤치며 꼬집는 데는 그만한 매체도 없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언론의 허상을 더욱 진보적이고 발전적으로 꼬집는 책들이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덧붙이는 글 | 누구보다 흩어져 있던 글들이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노력해 준 <인물과 사상>과  '지역언론 별곡'이 중단되지 않도록 부단한 오기의 불씨를 지펴준 <오마이뉴스> 편집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기사를 엿으로 바꿔 먹다뇨?>는 <오마이뉴스>에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실렸던 '지역언론 실태'와 '지역언론 별곡', 그리고 지역 일간신문에 게재됐던 필자의 일부 글들 중 '지역언론' 또는 '지역문제'라는 주제에 맞는 글을 선별하여 분류해 모은 첫 번째 책이다.  


#지역언론 별곡#기사를 엿으로 바꿔 먹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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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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