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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한 청년이 "네팔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한 청년이 "네팔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 이주빈

일정대로라면 나는 오늘(28일) 카트만두 인근에 있는 모노하라 마을에 가서 '행복한 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첫날의 풍경을 취재해야 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엔지오 품'이 네팔에 만든 '네팔 엔지오 품'과 네팔의 대학생 자원활동가 그룹인 'Happy Vibration(행복한 진동)'이 3년째 지속하고 있는 학교 살리기·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다.

그러나 나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팀도 모노하라 마을에 가지 못했다. '번다' 때문이었다. 번다는 네팔의 마오이스트들이 내리는 일종의 비공식 계엄령 같은 것이다. 번다가 내리면 자동차는 멈춰서야 하고, 가게는 문을 닫아야 한다.

28일 번다가 내린 이유는 국왕의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하야를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네팔은 200년 넘게 왕정 통치를 해온 나라다. 그런 네팔이 지난한 민주화투쟁과정을 거쳐 지난 4월에 총선을 실시했다. 이 총선에서 '산사람들'이라 불리는 마오이스트들이 20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차지하며 원내 1당이 되었다.

원내 1당이 된 마오이스트들과 그 밖의 다른 정파들도 왕정통치 종식에는 이견이 없어서 사실상 네팔은 이제 왕정국가에서 민주공화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들은 왕정종식에 대한 네팔 민중들의 염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네팔 국왕에게 현재 거주하고 있는 네팔 왕궁에서 떠나라고 요구하면서 보름 동안의 시한을 주었다.

어? 이거 진짜 시위 맞아?... 축제같은 네팔 시위

번다가 내린 28일은 그 시한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부터 젊은 마오이스트들은 호각을 불며 번다에 동참할 것을 주장했다. 국왕이 살고 있는 왕궁 주변으론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어 왕에게 자신의 집을 떠날 것을 요구했다. 거리거리엔 "네팔이여, 영원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들의 붉은 깃발이 휘날렸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뒤바뀌는 엄혹한 역사적 순간. 그러나 번다를 요구하는 젊은 마오이스트들도, 왕궁에 몰려든 민중들도, 거리시위를 벌이는 시위대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축제에 참석하는 듯 즐거웠다.

실제로 이들은 네팔 전통 북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거리시위를 벌였고, 외신기자들의 카메라를 향해 밝고 해맑은 미소를 아낌없이 보냈다. 그들은 희망에 들떠 보였고, 새로운 네팔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왕정 유지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던 군부도, 그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총과 몽둥이를 휘둘렀던 경찰들도 이들의 축제같은 시위를 편안하게 지켜보기만 했다.

춤 추고, 노래하고.... 그들의 시위는 축제같았다. 축제같은 그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경찰도 없었다.
춤 추고, 노래하고....그들의 시위는 축제같았다. 축제같은 그들의 시위를 강경진압하는 경찰도 없었다. ⓒ 이주빈

시위대를 촬영하고 있는 기자에게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카마라 파하레(36)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더욱 열정적인 모습으로 "당신 나라의 민주화과정을 잘 알고 있다, 네팔 민주화와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주화에 한국의 역할이 컸다"고 반갑게 대해주었다.

친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는 그는 "네팔의 가장 행복한 날에 당신이 네팔을 방문해서 더없이 기쁘다"면서 "네팔 민중 그 누구도 더 이상 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다시금 왕의 퇴장을 요구했다. 

새로운 네팔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는 네팔 사람들 사이를 스치며 나는 우울해지고 말았다. 조만간 돌아갈 한국의 상황 때문이었다.

'책'을 요구하면 거리시위를 벌이는 네팔 학생들

<오마이뉴스>는 현장 기사를 통해 촛불집회 및 시위과정에서 경찰에 연행된 이들의 수가 200명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이 중에는 고등학생들도 있다는 소식에, 또 이들이 경찰에 연행되자 주변에 있던 아주머니들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울먹였다는 소식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뿐이 아니었다. 이 낯선 땅에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와 엔지오를 만들며 아시아 청년들의 행복한 연대를 꿈꾸는 심한기 대표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네팔의 청년들에게 "예술은 과정"임을 역설하는 김월식 교수는 "미쳤나 봐, 진짜 미쳤나 봐"하고 혀를 내두른다. 네팔 교사와 청년들에게 이미지로 말하는 법을 전수하는 임지은 사진작가는 "제발 우리가 다른 나라 와서 쪽팔리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어제(27일)는 14살 어린 네팔 학생들이 거리에 뛰쳐나왔다. 이유인 즉 공부를 하고 싶은데 책이 없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네팔은 아직 가난한 나라다. 학생들은 한 시간이 넘게 시위를 벌였고 학생 대표 10명이 한국으로 치면 교육부 장관과 면담을 해서 "책을 조만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학교로 다시 돌아갔다.

책을 달라고 시위를 벌인 이 어린 학생들을 향해 네팔의 그 어떤 언론도 "연예인들이 하니까 따라한다"고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시위를 벌인 이 어린 학생들을 향해 네팔 어느 당국자도 "배후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검거하겠다"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두 나라의 상황이 자꾸만 겹쳐 보이면서 씁쓸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곳에서의 취재가 끝나면 나는 바로 한국에 돌아가 한국의 현장에 서있을 것이다. 그 때 나의 펜은 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일행 중 한 명이 촛불시위를 나갔다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몸조심하고…"라고 말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지금 몇 시인가?

 지나가는 시위대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는 네팔의 군인과 경찰들.
지나가는 시위대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있는 네팔의 군인과 경찰들. ⓒ 이주빈


#촛불시위#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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