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발표 이후 경남 함안 우시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발표 이후 경남 함안 우시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한숨만 내쉬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함안 우시장의 소값도 내리고 거래도 많이 성사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서 함안 우시장의 소값도 내리고 거래도 많이 성사되지 않았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장관이 축산농민 대표들과 협의한 뒤에 고시인가 뭔가 한다고 했잖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워낙 맘에 안 드니까 농민대표들이 장관을 안 만난 거 아니냐. 그러면 대책을 다시 세워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고시발표를 해버렸잖아. 그게 국민 섬기겠다던 정부의 자세냐."

31일 아침 경남 함안 우시장(가축시장)에서 만난 50대 농민이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가 뿜으면서 말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고시발표를 한 뒤 처음으로 열린 우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창녕·합천우시장과 함께 꽤 많은 소가 거래되고 있다. 1일과 5일에 시장이 열리는데, 31일이 있는 달은 30일에 열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열린다.

우시장에는 한숨만 가득했다. 농민들은 장관고시 발표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관보게재만은 미루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었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가운 탓에 모닥불을 피워 놓았는데,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농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지진 피해 현장 방문과 촛불문화제 등에 관심이 많았다. 김정곤(59)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실용인가 뭔가 강조하던데. 국민 섬기겠다고 하더니만 이건 아니지. 촛불집회 하는 사람들을 마구 연행하더라고. 국민 때려잡자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모자를 쓴 50대 농민은 "촛불집회라 하지 말고 탄핵집회를 해야 하는 기라. 경제 살린다고 해서 찍어주었더니만 이게 뭐꼬"라고 말했다. 그는 "관보 게재 하지 말고 미국과 재협상 해야 하는데..."라고 덧붙였다.

김씨가 다시 말을 받았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밤에 왔다고 하던데 중국 지진 피해 현장 방문했다고 난리더라고. 중국사람 눈물 닦아주기 전에 우리 국민 눈물부터 먼저 살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50대가 다시 감정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지진 피해현장에 갔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그때 지진이 다시 나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만큼 국민들 감정이 안 좋은 거지"라며 "중국 갔다가 한국으로 올 게 아니고 미국으로 가라는 말도 하더라"고 전했다.

소를 팔았는지 돈뭉치를 들고 선 60대는 "이명박이 미국에 우리나라 팔아 먹고 주지사나 하지 뭐"라고 했다. 그러자 50대는 "누가 주지사는 시켜준대, 주지사 될 자격이나 있냐 말이다"는 말로 불만을 드러냈다.

 함안 우시장은 경남권에서도 꽤 큰 규모다.
 함안 우시장은 경남권에서도 꽤 큰 규모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뚝 떨어진 거래

소값도 뚝 떨어졌지만 거래도 뚝 떨어졌다. 중매인은 매매를 성사시켜 보려고 사고파는 농민들을 달래보기도 했다. 송아지 한 마리를 두고 10여명이 둘러서 있었다.

소를 몰고 온 이원진(63)씨가 떨어진 소값에 팔지 않겠다며 몇 걸음 뒤로 물어났다. 그러자 중매인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하잖아. 이형! 이리 와 보소"라며 이씨의 소매자락을 잡아끌었다.

7개월 된 암송아지를 놓고 사겠다는 측은 160만원, 팔겠다는 측은 170만원을 불렀다. 10만원 차액이다. 중매인은 "입에 거품이 날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흥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농민들이 불안하니까 그런 거지.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저 정도면 250만원까지 거래가 되었지"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농민들도 굳은 표정이다. 한 농민이 "서로 5만원씩 양보하면 안되겠냐"고 제안했다. 그래도 두 농민은 마음이 쉽게 돌아서지 않는 모양이다. 중매인이 5만원부터 받아 이원진씨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농민들은 "송아지는 참 좋네"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흥정이 된 것이다.

파는 이와 사는 이 모두 얼굴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씨의 송아지를 산 농민은 새 주인이 되었지만 이내 고삐를 잡지 않았다. 소를 사기는 했지만 미련이 남는 모양이다. 그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사료값이 걱정이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트럭에 실린 송아지가 밖을 바라보고 있다.
 트럭에 실린 송아지가 밖을 바라보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열흘만에 35만원 손해

또 한 쪽에서는 생후 6년산 암소를 놓고 흥정이 한창이다. 세 번째 새끼를 뱄다고 한다. 이창근(64)씨는 두 장(10일) 전 320만원에 샀던 소다. 그런데 이날 거래된 값은 285만원. 열흘만에 35만원이나 손해를 봤다. 그동안 먹인 사료값까지 포함하면 더 손해다.

이씨한테 왜 팔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키워서 새끼 만들어 보려고 사갔는데, 막상 키워보니 마굿간도 비좁고 새끼를 배서 그런지 사료값도 장난이 아니다. 더 갖고 있어 봤자 돈이 안 될 거 같아 손해 보더라도 팔았다"고 대답.

이씨한테 고삐를 넘겨받은 50대는 "소값이 낮으니까 샀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도 없지만 마굿간을 비워 놓으면 뭐하겠느냐. 우리 같은 농민이 배운 거는 소 키우는 것뿐인데 그래도 마굿간을 비워놓을 수는 없잖아"라고 덧붙였다.

 함안 우시장에 나온 농민들이 소를 두고 흥정을 하고 있다.
 함안 우시장에 나온 농민들이 소를 두고 흥정을 하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현호 회장 "정부 대책 실효성 없다"

이현호 경남농업경영인협회장을 이곳에서 만났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다가와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기자들이 새벽부터 고생이네"라며 잡아끈다. 커피를 한 잔 하잖다. 이 회장은 지난 29일 창원에서 다른 농민단체 대표들과 삼보일배를 하면서 삭발식도 했는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그가 열변을 토한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실효성이 없고 이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 나왔던 정책을 재탕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축산 농가는 죽으라는 소리다. 소값 최저가 보상 기준을 15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인상한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대책이냐. 10만원 인상 갖고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또 무슨 1조원 넘게 자금을 마련해 이자를 낮추어 농민들에게 준다고 하는데,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사료값 안정제'와 '육류 안정제'가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생산원가 절감도 중요하고 예산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사료값이 천정부지로 뛰는데 어떻게 소를 키우겠나. 농민들의 소득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은 화물연대 노동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차량을 더 운행하면 할수록 손해를 본다며 멈춰버린다. 그런데 농민은 그렇지 않다. 수입이 나지 않는다고 소를 키우지 않을 수 없다. 적자 보면서 하는 거다. 농민들이 우매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후속대책이 없으면 농민은 다 죽는다."

 한 농민이 소를 판 뒤 받은 돈을 헤아리고 있다.
 한 농민이 소를 판 뒤 받은 돈을 헤아리고 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시세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나왔다고 한 하종욱(66)씨는 "소값이 똥값이다"며 "이전에는 송아지 한 마리에 400만원도 넘었는데 지금은 절반도 안 되잖아. 정부 정책을 어떻게 하는 건지"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한 농민은 "소는 원래 비싸면 비싸다고 난리, 싸면 싸다고 난리 친다"고 말했다. 다소 낙천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그도 "그래도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리니 정말 걱정이다"고 덧붙였다.

부인과 함께 온 50대 농민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열쇠를 끄집어내 흔들면서 말했다. "살 거 없다. 가자"고. 그의 트럭 짐칸은 비어 있었다.


#쇠고기#우시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