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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언을 듣는 순간, '다부진 각오'가 필요했다

"1만 명의 촛불은 누구의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

이젠 일상처럼 자리잡은 촛불시위 취재 및 참여지만, 지난 5월 31일에는 나름대로는 비상한 각오를 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저 발언을 듣는 순간, 가두시위가 벌어지면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예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순서는, 촛불문화제에서 만나 여동생으로 삼은 중2 여학생을 단속하는 것이었다. 워낙 앞서 나아가기 좋아하는 녀석이라 보호를 하자니 내 힘으로도 부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인의 집에 있다길래, 그 지인에게 집에 가둬서라도 무조건 밖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녀석의 참여 권리와 발언권을 빼앗은 것으로도 보일 수도 있다. 욕해도 좋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안전'과 '보호'를 우선으로 여기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깊은 밤에 접어들어 시위대와 전경의 대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내 판단은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귀국 후 첫 시위였기 때문일까. 경찰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경했다.

 1일 새벽, 시위대와 대치하는 전경의 모습
 1일 새벽, 시위대와 대치하는 전경의 모습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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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법 위반'의 댓가는 물대포와 군홧발 구타?

'집시법'은 더이상 이야기하기도 싫다. 헌법의 취지와 어긋난 법, 그리고 그 취지를 왜곡하는 법을 우리는 '위헌'이라고 부른다. '집시법'은 명백한 '위헌'이다. "악법도 법"같은 이야기는 하지도 말자. 소크라테스도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제군들을 따르기보단 오히려 신을 따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신'이란 내면의 정의, 즉 신념을 말한다. 오히려 반대로 이야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시위를 탄압하는 근거는 도로교통법 '도로 무단점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해 시민들의 교통 불편을 야기시켰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도로 무단점거'에 나선 사람들은 오히려 경찰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면서 행진하는 시위대가 갈 길도 바쁜 판국에 왜 도로에 정체할까? 전의경과 닭장차를 동원해 시위대를 막고자 하면서 대치를 벌이는 경찰에 의해서다. 그들은 병력과 닭장차를 이용해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면서 교통혼잡을 부추긴다. 도로교통법 위반? 오히려 경찰이 저지르고 있다.

설령, 경찰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 시위대가 '도로교통법 위반'을 저질렀다고 가정해봐도 대관절 어떤 법이 '도로교통법 위반자'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특수기동대까지 동원해가며 구타를 가할 수 있는 권한을 줬나? 도로교통법 위반자에게는 이런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명동 노상에서 행인을 상대로 전도 활동을 벌이던 김 모(51) 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김 씨는 명동 일대에서 전도를 하며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불법으로 현수막을 설치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김 씨는 2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전도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김 씨의 행위에 대해 경범죄로 취급해 범칙금만 부과했지만 개선의 여지가 없어 형사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노컷뉴스> 4월 2일자 기사 <길거리 전도하던 50대, 도로교통법 위반 입건>-


'남대문경찰서'가 유난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시위대에게 '도로교통법 위반' 운운하며 서장이 직접 비아냥과 함께 '해산 협박'을 일삼은 기관이기 때문이다.

자, 전도 활동을 위해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불법으로 현수막을 설치한 51세 김모씨가 '물대포'를 맞고 '특수기동대에 의한 구타'를 당했다는 부분이 있는지 기사를 샅샅히 뒤져보자. 어디에 있나? 없다. '상습적 점거'를 벌였는데도 구타를 당했다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굳이 엄하게 적용해봐야 '불구속 입건'이다. 게다가 그동안은 "경범죄로 취급해 범칙금만 부과했다"지 않나? 개선의 여지가 너무 없어서 형사 입건을 했고, 그나마 '불구속 입건'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위대가 굳이 '도로를 점거'했다면, 경찰이 이미 점거한 상황에서 길이 막혀 덩달아 점거했다는 것이 옳다고 봐야 한다. 시위대의 불법을 지적하고 싶다면 소위 말하는 '딱지'나 한장씩 끊어주면 된다. 단, 먼저 점거한 경찰 전의경 병력에게도 한장씩 꼼꼼하게 끊어줘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공평하지 않겠나?

 "여러분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해 시민들이 불편해 한다." 이게 불편해 짜증내는 모습인가? 이 아주머니는 오히려 불편을 감수하고 시위대에 환호하셨다. 이 아주머니 뿐만이 아니다. 많은 운전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여러분들이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해 시민들이 불편해 한다." 이게 불편해 짜증내는 모습인가? 이 아주머니는 오히려 불편을 감수하고 시위대에 환호하셨다. 이 아주머니 뿐만이 아니다. 많은 운전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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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하나 없는 그들을 향한 선물, '물대포'와 '몽둥이'

1일 새벽녘에 같이 있던 지인이 시위 도중 다쳐서 급히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병원 응급실에는 이미 부상당한 시위대와 전경들이 있었다.

나로서는, 시위현장 인근에 함께 있던 고1 학생 2명을 주시할 수 밖에 없었다. 왜 다쳤는지를 묻자,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그 학생은 교복을 입고 시위에 가담했는데, "어린 XX가 깝친다"는 말과 함께 전경에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물어보니, 대치 상황에서 전경이 3명의 여성을 포위하고 있었길래 이 학생들이 나아가 2명을 포위에서 빼내고 남은 1명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달려갔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둘째 대열에 있던 전경 1명이 갑자기 "어린 XX가 깝친다"면서 방패로 학생의 뒷통수를 가격해 기절했다는 것이다.

이내 정신을 차렸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고 한다. 4명의 전경이 학생을 둘러싸고 구타를 가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나마도 고참급으로 보였던 다른 전경 1명이 그들을 말려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했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그 학생이 '소설'을 쓴 것이었을까? 물론, 학생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학생의 주장을 무시하자니 언론에도 보도되고 내 눈으로 직접 봤던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아 기절한 여성을 연행한 것과 더불어, 전경과 특수기동대가 한몸이 돼 돌멩이 하나 없는 시위대를 향해 뛰쳐나와 몽둥이와 방패를 휘두르던 상황을 나로서는 너무나도 생생하게 봤던 것이다. 사실, 그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집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는 것 자체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시위현장을 취재하거나 참여하려면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 물대포가 엄청난 부상자를 양산시켰다. '비폭력'을 외치는, 돌멩이 하나 들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퍼부어지는 물대포다.
 이 물대포가 엄청난 부상자를 양산시켰다. '비폭력'을 외치는, 돌멩이 하나 들지 않은 시위대를 향해 퍼부어지는 물대포다.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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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어디까지 후퇴시킬 생각인가?

상당수의 시위대는 대통령의 귀국과 말 한마디와 더불어, 경찰의 진압 방식이 갑작스레 더욱 폭력적인 양상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이전부터 우려했던, '피로 누적'으로부터 비롯될 전의경의 감정적인 대처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견지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와 권리만큼은 지키고자 목숨을 걸곤 한다. 반드시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가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명박 정부,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린 것 같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저항했고 목숨마저 버렸던 역사를 간직한 사람들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도 그렇게 거리로 나섰던 젊은 시절이 있다.

그런데, 이 대처는 뭔가? 그나마 내건 법적 근거마저도 옹색을 넘어 '황당'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시민들이 과연 '물대포'와 '몽둥이'에 굴복할 것으로 보이는가?

 '물대포'와 '몽둥이'에 대해 손피켓과 함성으로 대항하는 시위대
 '물대포'와 '몽둥이'에 대해 손피켓과 함성으로 대항하는 시위대
ⓒ 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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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이 모교에서 을 받는다는 이유로, 여대에 남성 경찰 병력 수백여 명을 배치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과는 상관없는 '등록금 투쟁' 때문에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던 학생회를 경찰이 출동해 몸싸움이 벌어졌던 일도 있었음을 떠올려보자. 나로서는 본질적인 의문을, 참담한 심정으로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나라, 그리고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촛불문화제#촛불행진#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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