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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6월 3일) 아무 생각 없이 제 신발장에서 가장 불편한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섰습니다. 비가 쏟아져 자유발언 시간 때에도 앉아있지 못 했으니, 지금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항상 운동화만 고집하던 아이가 왜 난데없이 딱딱한 샌들을 신고 나섰을까요. 제가 집을 나서기 직전, 정운천 장관이 깜짝 발표를 했습니다. "30개월 이상 소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웬 일인가 놀라고 있던 제게 룸메이트가 "그럼 이제 집회 안 가겠네?"라고 물었지요. 

 

 저는 "글쎄, 30개월 소 얘기 빼고는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잖아."라고 대답하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리고는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집회에 가고 있을까' 생각하며, 행진하기에는 좀 불편한 신발을 발에 껴넣은 채 집을 나섰습니다.

 

 학교에 와서 인터넷 뉴스와 자세한 발언내용들을 뒤적이니 30개월 이야기도 단지 미국에 대한 요청에 불과하더군요. 장관마다, 간부마다 말이 제각각이고 재협상의 의지보다는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적 이벤트 성격인 듯 했습니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지요.

 

 컴퓨터실에 우두커니 앉아 '과연 재협상이 된다면 이 촛불이 계속 켜질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계속 촛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대답을 얼버무리고 있던 제게 룸메이트가 "계속 나가면 이명박 하는 짓 다 싫다 이거 아니야?"라는 말에 반박을 하려다 만 게 떠올랐습니다.

 

 현재 촛불집회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패션 관련 인터넷 까페에서부터 박사모까지 나오는 이 광장에서 지금까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것은 '고시철회 협상무효', '광우병 쇠고기 먹기 싫다'였습니다. 이 촛불집회 시발점이자 정수가 그것이었으니까요.

 

 자세히 들어다보면 '광우병' 뒤의 다양성은 여기저기서 툭툭 터져나옵니다. '이명박 탄핵' 구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만, 저처럼 그 구호만은 외치길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민주노총 관계자가 자유발언 자리에서 민주노총의 강력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공감대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여고생이 과도한 민족주의적 이야기를 하면 실소를 터뜨리기도 합니다.

 

 단일의 지도세력에 의한 집회가 아닌, 자유로운 시민들에 모임인 집회이다보니 앞날을 더욱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오늘 정운천 장관의 발표가 있은 직후에도 2만 여명이 서울광장에 모인 것과 자유발언 내용, 구호들을 보아하니 단지 '광우병'만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인 듯 합니다. 재협상이 타진된다 하여도, 이 촛불들이 모여야할 이유는 점점 명확해져 갑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의식과 정책을 비판하고 바로 잡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쇠고기 통상 재협상은 단지 일부분일 뿐, 제 촛불이 꺼지기에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때 서울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다른 방법으로 저는 촛불을 밝히고 있을 것입니다. 정부가 '그렇다'라고 말하면 뒤에 숨어 끄덕거리거나 궁시렁거리는 법만 알았던 제게 이번 촛불집회가 가르쳐준 것은 '네 스스로의 권리와 진실을 찾기 위해 행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불편한 신발을 신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지만 촛불행진에 함께 한 시간만큼은 마음이 더 없이 가벼웠습니다. 그런데 물집은 여전히 잡혀있습니다. 아얏!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 ansi.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촛불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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