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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책상마다 '삐라'는 뿌려지고. 광우병 괴담을 반박하는 교육용 홍보물이 교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를 받아든 교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주변의 한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영혼 없는' 교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교무실 책상마다 '삐라'는 뿌려지고.광우병 괴담을 반박하는 교육용 홍보물이 교사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를 받아든 교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주변의 한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영혼 없는' 교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습니다. ⓒ 서부원

얼마 전 교무실 책상 위마다 '광우병 괴담'을 차단하라는 교육용 전단이 삐라 뿌려지듯 놓여지더니,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라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문을 통해 상급 기관의 지시가 피라미드식으로 하달되면, 학교는 지금껏 그래왔듯 아이들 앞에서 그 내용을 충실히 전달합니다. 교육청이든, 일선 학교든 권력의 홍보 도구로만 여겨져 온 관행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전봇대'를 뽑겠다고 호언한 새 정부 역시 말뿐 달라진 게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손만 넣으면 빼먹을 수 있는 주머니 속 곶감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괴담이다, 억측이다, 유언비어다 하며 깎아내리기 일쑤지만, 10대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가는 반정부적 주장들을 잠재우는 데는 교사들을 활용할 수 있는 학교 수업만한 '효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몇몇 곳에서는 교육청 장학사와 교장, 교감 등 학교 관리자, 심지어 학생부장 교사들을 동원하여 학생들의 시위 참가를 막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또 정부 고위 관료가 나서서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시위에 참가하는 것"이라는 막말도 서슴없이 해대는 실정입니다.

 

초등학생 유괴 범죄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얼마 전에는, 아이들 안전을 정부가 책임진다며 방과 후 시간에 맞춰 교문 근처에 경찰을 상주 시키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사진 몇 장 찍고는 흐지부지되기도 했습니다. 들끓었다 식기를 반복하는 여론의 눈치를 적당히 봐가며 대처한 '쇼'였던 셈입니다.

 

공무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동원되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난데 없이 '캠페인 복장'을 하고 선 공무원들이 교통안전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루 이틀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풍경입니다.
공무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동원되고.이른 아침 출근길에 난데 없이 '캠페인 복장'을 하고 선 공무원들이 교통안전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하루 이틀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풍경입니다. ⓒ 서부원

그런가 하면, 새 정부가 법질서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 마디 하자 아침 일찍부터 건널목에는 난데없는 공무원들이 봉사활동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경험으로 보건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보여주기식 '반짝' 활동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손에는 소속 기관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교통안전 깃발과 함께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 있었습니다. 아이들조차 '저 사람들 뭐 하나' 싶어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이내 비웃으며 건널목을 지나갑니다.

 

막무가내로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라는 요구에 시늉만 내 보고하는 구태의연함은 새 정부 들어 더욱 심해진 듯합니다. 요즘 들어 '철밥통'이라는 말 대신 '영혼이 없다'는 비아냥을 훨씬 더 자주 듣는다는 공무원들의 하소연이 이를 말해줍니다.

 

하나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우리 사회의 이러한 낡은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의 촛불 시위에서 보듯, 아이들은 그릇된 관행에 찌들어 버린 기성세대의 치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생기발랄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컨대, 입만 열면 '규제라는 전봇대를 뽑는 것'이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라고 떠들어대지만, 그보다도 먼저 뽑아야 할 것은 아이들 보기조차 민망한 '구태의연함'이라는 전봇대가 아닐지.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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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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