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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기쁜소식

.. 둘째로, 본래말의 의미의 폭보다 대안의 의미의 폭이 좁게 잡힌 경우에는 바로 본래말의 다의성을 띤 경우가 있고(‘에프론’을 각각 ‘앞치마’, ‘물받이’, ‘앞무대’로, ‘건견’을 각각 ‘마른고치’, ‘고치말리기’로 함), 한 대안의 뜻이 본래말의 뜻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경사’를 각각 ‘비탈’, ‘물매’로, ‘희소식’을 각각 ‘기쁜 소식’, ‘즐거운 소식’, ‘좋은 소식’, ‘반가운 소식’으로 함) ..  《북한의 어학혁명》(백의,1989) 209쪽

북녘에서 ‘새말 만들기’를 하면서 세운 잣대 가운데 하나는, 어느 한 낱말을 다른 한 낱말로만 쓰도록 못박지 않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 곳에 따라서, 흐름에 따라서 다 다르게 쓸 수 있는 길을 터놓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세우는 잣대가 마땅합니다. ‘全혀’ 같은 낱말은 ‘조금도’나 ‘아주’로 걸러내야 할 때가 있는 가운데, ‘아무것도’나 ‘도무지’로 걸러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도’나 ‘그예’로 걸러내면 알맞을 때도 있고요.

 [희소식(喜消息)] 기쁜 소식
   - 희소식을 전하다 / 희소식을 듣다 / 희소식에 접하다

국어사전에서 ‘희소식’을 찾아보면 “기쁜 소식”이라고 풀이를 달아 놓습니다. 그러나 ‘기쁜소식’은 한 낱말이 되지 못합니다. 굳이 한 낱말로 삼지 않아도 됩니다만, ‘-소식’을 뒷가지로 삼아서 ‘기쁜소식-즐거운소식-좋은소식-반가운소식’처럼 새말을 빚어낼 수 있습니다. ‘기쁜-’을 앞가지로 삼아서 ‘기쁜소식-기쁜얼굴-기쁜빛-기쁜뜻-기쁜말-기쁜사람-기쁜일’같이 새말을 빚어내어도 되고요.

.. 어쩌면 오늘은 기쁜 소식이 올지도 모른다고 괜히 가슴을 설레며 하루 해를 보낸 적도 많았다. 어쩌다 뒷산 아카시아숲 ..  《손춘익-작은 어릿광대의 꿈》(창작과비평사,1981) 40쪽

우리들은 ‘기쁜소식’을 말하면서 살아갑니다. 말에서도, 글에서도 ‘기쁜소식’은 어렵잖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낱말, 또는 관용구는 ‘사전을 엮을 때 하는 말모이’ 자료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희소식’은 처음부터 한 낱말로 삼았으니 보기글 자료를 모으기 쉽지만, ‘기쁜 소식’처럼 띄어서 쓰니까 보기글 자료를 모으기 어려운 가운데, 모을 생각을 아예 못합니다.

 ┌ 기쁜소식 / 반가운소식 / 좋은소식
 └ 기쁜생각 / 기쁜일 / 기쁜사람 / 기쁜마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방송이나 신문에서 이와 같은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은 으레 ‘낭보(朗報)’라는 말을 씁니다. ‘낭보’란 무엇이냐? 바로 ‘기쁜 소식’을 한자로 옮긴 말입니다. ‘희소식’은 앞글 ‘喜’가 ‘기쁘다’를 뜻하고 ‘朗報’는 아예 한문입니다.

ㄴ. 마음밥

― 책은 마음의 양식

예수님을 믿는 분들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는 기도글을 외웁니다. “일용(日用)할 양식”, 그러니까 “날마다 쓰는 양식”이고, 날마다 쓰는 양식이란,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을 가리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한테 고맙게 먹을 밥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 양식(糧食)
 │  (1)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
 │   -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다 / 쌀이든 보리쌀이든 어쨌든 양식인 모양이다 /
 │     일 년 먹을 양식 걱정
 │  (2) 지식이나 물질, 사상 따위의 원천이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책을 읽어 마음의 양식을 쌓다 / 정신의 양식도 장만해야지
 └ 식량(食糧) = 양식(糧食)
      - 식량을 구하다 / 올해는 풍년이 들어서 식량이 남아돈다

‘양식’을 여러 가지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어느 국어사전에서는 “식용인 곡식. 식량”으로 ‘양식’을 풀이합니다. ‘식용(食用)’이란 “먹을거리로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낱말풀이를 “식용인 곡식”으로 했다면 “먹을거리로 쓰는 곡식”, 곧 “먹는 밥”이라는 소리입니다.

 ┌ 먹는물 / 마실물
 ├ 먹는샘물
 │
 ├ 마실거리 / 먹을거리
 └ 먹다 + 곡식 = 먹는곡식 / 먹는밥

‘생수(生水)’와 ‘식수(食水)’라는 한자말이 있습니다. ‘음료수(飮料水)’라는 한자말도 있습니다. ‘생수’는 ‘먹는샘물’로 고쳐쓰도록 되어 있고, ‘식수’나 ‘음료수’를 따지기 앞서, 우리들한테는 ‘먹는물’과 ‘마실물’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마시니까 ‘마실물’입니다. 또는 ‘마실거리’입니다. 먹으니까 ‘먹는밥’입니다. 또는 ‘먹을거리’입니다.

 ┌ 먹을 양식이 다 떨어졌다 → 먹을거리가 다 떨어졌다
 ├ 어쨌든 양식인 모양이다 → 어쨌든 곡식인 모양이다
 ├ 식량을 구하다 → 먹을거리를 찾다
 └ 식량이 남아돈다 → 곡식이 남아돈다

한자로 된 말이라 해도, 우리 말인 한자말이 있고 일본말인 한자말이 있으며 중국말인 한자말이 있습니다. ‘양식’이나 ‘식량’은 우리 말이 아닌 한자말입니다. 우리 말인 한자말은 ‘곡식(穀食)’입니다. 그리고, 우리들한테는 ‘먹을거리-먹는밥-밥’, 이 세 가지 낱말을 때와 곳에 맞추어 알뜰히 쓰면 됩니다.

 ┌ 마음의 양식 (x)
 └ 마음밥 (o)

그런데, 우리들은 몸으로만 밥을 먹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도 밥을 먹습니다. 이를테면 책읽기는, 마음을 살찌우는 밥먹기와 같습니다.

 ┌ 책은 마음의 양식이다
 │
 │→ 책은 마음을 살찌운다
 │→ 책은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다
 │→ 책은 마음을 가꾸는 밥이다
 │→ 책은 마음밥이다
 └ …

몸에 밥이 되면 ‘몸밥’입니다. 마음에 밥이 되면 ‘마음밥’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이 있고 우리 터전이 있고 우리 얼하고 넋이 있으나, 아직까지 제대로 우리다움을 간수하거나 추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한테 가장 알맞고 사랑스러운 우리 말과 글이 있으나, 여태까지 우리 말과 글을 가꾸거나 돌보면서 우리 마음과 몸을 슬기롭게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몸밥도 마음밥도 알맞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몸밥을, 마음밥을 살뜰히 다스리면서 북돋우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한결 나은 길이 있어도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훨씬 애틋한 길이 있어도 등돌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 있어도 못 본 척했습니다. 그지없이 훌륭한 길이 있어도 나 몰라라 했습니다. 서로서로 돕고 도움받을 길이 있어도 돈에 따라서, 이름값에 따라서, 무리힘에 따라서 이리저리 흩어지고 쪼개지고 갈라지며 제 배속을 채우려고만 했습니다. 바보짓을 해 온 우리들이라고 할까요. 바보짓을 하면서 바보말을 하고 바보글을 쓰며 바보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할까요. 바보니까 바보얼과 바보넋으로 살아갑니다. 바보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살려쓰기#우리말#우리 말#토박이말#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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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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