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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내가 일찍 퇴근했다. 그동안 낮에 일하고 밤엔 공부하러 가느라 보통 밤 10시 가까이 되어야 집에 들어오는 아내였다. 작년에 야간대학을 졸업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아내는 요즘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간호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아들이 엄마와 누나가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다.
아들이 엄마와 누나가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다. ⓒ 송상호

“오늘 일찍 퇴근 했으니 얘들하고 저녁 같이 먹을 수 있겠네.”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평일에는 아이들(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과 나  이렇게 셋만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 저녁 반찬 메뉴는 아침에 아내가 끓여놓고 갔던 김치찌개와 상추쌈이 전부였지만, 모두 궁궐의 진수성찬을 먹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특히 아들아이는 아내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끝내주게 잘 먹었다. 아들아이는 김치와 돼지고기 건더기를 다 건져 먹었는데도 양에 안 찼는지 김치찌개 국물을 밥그릇에 다 부어버리고는 아주 맛있게 말아먹어 버린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야, 아들. 그렇게 맛있니?”

“예. 정말 맛있어요.”

“그래.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아내의 얼굴엔 연신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옛 어른들 말씀에 “자기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기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큼 보기 좋은 게 없다”는 말이 아내에게 현실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저녁을 보내고 그 다음 날, 아내가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해놓고 간 반찬으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느낌이 새로워졌다. 아내가 만들어 놓은 반찬은 예사로운 마음으로 만든 반찬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만든 반찬에 대한 아내의 태도는 일관적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만들어 놓은 반찬(각종 찌개와 국, 무침, 쌈 등)이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어떻게 처리 되었느냐를 두고 희비가 엇갈리는 것이었다.

 

아이들과 내가 맛있게 잘 먹어서 반찬이 남은 게 거의 없으면 아내는 좋아했고, 반찬이 많이 남아 있으면 아내는 속상해 했다. 남은 반찬의 양에 따라 아내 얼굴의 날씨가 달라진다는 것은 남자인 나로선 그 느낌을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쓴 글에 사람들이 반응하며 좋아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그 느낌과 비슷하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어떤 때는 아이들이 반찬을 잘 먹지 않고 남기면 내가 아이들 몫을 대신해 두 배로 열심히 잘 먹을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편식을 하지 말라고 일러줘도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도 편식이 나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과 고쳐서 실행하는 것에는 적잖은 간극이 있지 않던가. 그렇다고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그것만큼 아이들에게 고문이 있을까 싶어서 아이들의 성향을 존중하는 차원에서라도 강요하지 않는 우리 집 가풍이 있기에 간혹 반찬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반찬 중에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찬을 아내가 아침에 만들어놓고 간 날은 곤욕을 치르는 날이다. 나라고 해서 싫어하는 반찬이나 잘 먹지 않는 반찬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자면 싱싱하지 않은 생선 반찬(냉동 생선), 명태 국과 찌개, 계속되는 똑같은 메뉴 등이 그렇다. 이런 날은 십중팔구 반찬이 남게 된다. 내가 잘 안 먹으니 아이들도 잘 먹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반찬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녁에 퇴근한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자신이 만든 반찬을 식구들이, 특히 아이들이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일희일비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내 어머니와 어쩌면 저렇게 닮았을까 싶어 괜히 오늘따라 가슴이 짠해온다.

 

  비오는 휴일에 온 가족(나의 아버지와 어머니, 우리 형제 3명)이 집에 있을 때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뭐 맛있는 거 해줄까”라시며 무엇을 못해줘서 안달이셨다. 비오는 날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셨던 ‘부추 전, 파전’등이 지금 내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을 어찌하랴.

 

  자식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 채신 어머니는 시장에서 복숭아 파치(팔다가 흠집 남아 정식 상품이 되지는 않지만, 먹는 것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복숭아)를 한 보따리 사셔서 집에 있는 커다란 솥에 설탕을 넣고 삶아 몇 날 며칠을 두고 먹게 하셨다.

 

몇 날 며칠 우리 3형제가 먹었던 것이 요즘 말로 말하면 ‘복숭아 통조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때 좀 더 다른 친구들에게도 자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봐라. 우리는 비싼 복숭아 통조림을 날마다 먹는다”라고 말이다.

 

그런 음식을 해줄 어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신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런 예쁜 마음을 닮은 아내가 내 옆에 있어서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세월이 지나가도 아이들 뱃속을 챙겨주는 따스한 엄마의 마음이 여전히 아내를 통해 내 옆에 있기에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왠지 아내가 생각이 나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이 만든 맛있는 반찬 덕분에 점심 잘 먹었소.^^”

 

답신이 왔다.

 

“네, 고마워요. 사랑해요.”

덧붙이는 글 | ‘더아모(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은 경기 안성 금광면 장죽리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며, 본인은 이곳의 목사이다. 


#더아모의집#송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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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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