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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걸어 놓은 글귀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요. 얼마나 마음에 들면 가져가겠어요. 화장실에서 가슴에 와 닿는 글 한 줄 읽고 혼자 읽기 아까워 가져간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대전 도시철도 월드컵경기장역 김관규 역장의 말이다. 경찰 선배인 역장의 넉넉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수년 전에 발표한 나의 졸고 수필 <시집을 베끼는 여학생들>을 떠올렸다.

 

가르침이 될 만한 '인생철학' 나눠주는 넉넉한 인심

 

서점의 시집코너에서 여학생들이 삥 둘러 있기에 무엇을 하나 슬쩍 엿보았더니, 시집을 베끼는 게 아닌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빈약한 용돈으로는 마음에 드는 시집을 한 권 살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점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도 일종의 '절도(?)'가 아닌가. 하지만 서점 주인은 그렇게 야박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책이 잘 팔리지 않아도 서점을 자주 찾아주는 학생들이 고맙게 여겨진다는 내용의 수필이었다. 역장은 모처럼 만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슬쩍 가져가는 것을 대비해서 다시 끼워 넣을 수십 여 종의 글귀를 확보해 놓고 있지요."

 

아~, 이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넉넉한 인품이 아니고는 아무나 그렇게 하지는 못할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긴 그럴 만도 하구나!라고 느낀 것은 잠시 후 화장실에 가서 문구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글의 내용이 놀랍게도 모두가 '감사'를 주제로 한 글이었다. 평범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진리와 가르침이 그 속엔 들어 있었다.

 

감사하는 삶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만족하지 못할 때 따르는 결과는 불평불만과 짜증과 자포자기이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감사하면 행복과 기쁨이 가득해 진다.

감사할 만한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진정한 감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때조차도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함이 행복의 근원이다. 감사와 행복은 한 몸이요, 한 뿌리이다.

감사하는 마음의 밭에는 실망의 씨가 자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김관규 역장과의 인연은 오랜 동안 이어져왔다.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럽던 80년대 초반부터 충남도경 경비분야에서 밤을 꼬박 새우는 힘든 근무를 함께했다. 이후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곰팡내가 풍기는 도경 지하 사무실에서 <충남경찰사>와 <경찰직무편람> 등 책자도 함께 편찬했다.

 

반듯한 성품과 깔끔하고 분명한 언어구사

 

이렇게 오랜 동안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느낀 점은 남달리 반듯한 성품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당당한 직무 태도였다. 그런 느낌은 어디서 풍기는 걸까? 유년시절부터 언어 훈련을 받은 사람처럼 바른 말 구사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특히 표준어를 잘 구사하는 특유의 언어습관도 그의 남다른 개성을 말해준다. 그가 도경 교통주임을 할 때다. '푸른 신호등'이라는 아침 라디오 방송에 매주 출연해 운전자 유의사항이라든가 교통정보를 알려주곤 했는데, 그의 목소리가 방송 전파를 타고 나올 때마다 집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관이 어쩌면 저렇게도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말을 잘하는지 몰라요. 경찰관이 저렇게 언어를 분명하게 구사하면 단속 현장에서도 위반자들은 꼼짝 못할 것 같아요."

 

그의 그런 바른 언어습관은 평소 올곧은 생활철학에서 나온다는 것을 함께 근무해 본 사람들은 잘 안다. 경찰생활 후반부에는 '감찰반장'을 했다. 동료들의 업무상 잘잘못을 따지고 품행을 감시하는 이른바 '감찰반장'이라는 역할이 그에게 주어진 것도 어쩌면 그런 특유의 반듯한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경찰 퇴임 후 현직 경찰관에게 밝히는 '아쉬운 소회'

 

퇴직 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바보처럼 살아온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현직에 있을 때, 실수한 동료 경찰들에게 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려요. 물론 감찰이란 업무의 특성상 어찌할 수 없는 처신이라는 것을 많은 분들이 이해는 해주었지만…."

 

자신을 '바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에게서 나는 왠지 모른 연민과 함께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 말 속에는 '원칙론에 충실하려다보니 바보처럼 산 것 같다'는 직장인으로서의 우직함과 진솔한 감정이 묻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역장 직을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왔다. 그가 이런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그는 본시 '교통문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도경 교통주임을 다년간 하면서 도로교통법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식견을 가지고 있다. 그가 퇴임 후에 도시철도 역장 직을 이어가는 것 역시 어찌 보면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직무라 할 수 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주요 경기나 대형 콘서트가 열릴 때는 평소 보다 몇 배가 넘치는 인파가 밀려오지요. 이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승객의 안전이지요."

 

교통 분야 전문가답게 '몸에 밴 안전의식'으로 승객 보살펴

 

그러면서 그는 아찔했던 순간을 실감나게 얘기해 주었다.

 

"월드컵 경기장의 경기 시간이 임박하면 승객들이 출입구를 향하려 마치 단거리 선수처럼 뛰어 올 때, 자칫 잘못하면 안전시설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요. 넘어지면 신체를 크게 다칠 수밖에 없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다리 기운이 허약한 노인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다가 헛디뎌 넘어진 경우도 있었어요."

 

승객의 모든 안전을 책임진 역장으로서 자나 깨나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선배 경찰의 이같은 성실한 근무 태도를 보면서 어쩌면 경찰직이나 지하철 역장직이나 타고난 운명처럼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사는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30여년이 넘는 경찰직을 통하여 몸에 배인 안전의식과 교통 문제에 대한 평소 노하우를 바탕으로 승객의 사소한 불편까지도 치밀하게 살펴 해소해 주고자 노력하는 그의 성실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새소리가 들리는 역 구내 시설도 특별하다. 이곳이 '농수산물시장'과 연결되는 지하철역을 감안하여 역 구내 쉼터 장식품도 '모형 농산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나눔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역장답게 귀여운 햄스터도 키워 승객들에게 분양하기도 했다고 한다. 잠시 동안이지만 이곳을 머물다가는 승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감사하는 마음'을 삶의 기본 철학으로 삼아 남들에게도 넉넉하게 베풀고 퍼뜨리니, 이곳을 통과하는 승객들은 알게 모르게 행복한 마음을 가슴 가득 담아가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SBS '유포터뉴스'와 디트뉴스24'에도 소개합니다. 

필자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보람을 느끼는 현직 경찰관입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수필문학인이기도 합니다. 1990년 '한국문학' 지령200호기념 '지상백일장'에서 장원 당선. 2001년 '경찰문화대전'에서 수필부문 금상을 수상했습니다. 수필집<삶을 가슴으로 느끼며><우리동네 교장 선생님><부자유친><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등을 펴냈습니다. 현재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으로 문학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윤승원#경찰관#지하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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