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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성을 면치 못한 정치

 

몇 해 전, 집에서 오래 쓰고 있는 무선전화기를 리콜(recall)해 준다고 하기에 가까운 대리점에 들고 갔더니 군말 없이 새 제품으로 바꿔주었다. 우리 집에서 쓰던 무선전화기는 별 말썽이 없었는 데도, 회사는 새 모델 무선전화기로 바꿔줘서 참 우리나라 기업도 선진화되었음을 보고 매우 뿌듯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이런저런 일로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세 차례 다녀왔는데, 세계 최대 번화가인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한국제품 광고를 보고 얼마나 감격했던가.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95번 남북 관통 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면서, 띄엄띄엄 눈에 보이는 한국자동차를 보고는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리며 확인하였다. 한국전쟁 직후에 미군들이 버린 군용 지프차에다가 드럼통을 두드려 시발택시를 만들었던 한국이 자동차의 종주국에 수출한다는 것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로, 꿈같은 현실이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 제품이 세계인의 신뢰를 받고 있는 걸 볼 때마다 흐뭇함을 금할 수 없는데, 현지 동포들도 한국 상품에 대해 한결같이 자부심을 느끼지만 정치권 이야기만 나오면 정치는 삼류요, 아직도 후진국을 면치 못했다고 몹시 개탄하였다.

 

깃털 몇 개 뽑고서야

 

쇠고기 파동으로 벌어진 촛불집회는 그제(6·10)를 고비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정부 당국은 한숨을 돌리며, 그 후속대책으로 난국의 몸통은 그대로 둔 채, 불쌍한(?) 깃털 몇 개를 소모품 마냥 뽑는 걸로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갈 속셈인가 보다.

 

나는 이 며칠 동안 산골에서 새 정부 출범 100일도 안 돼 총체적 난국을 맞게 한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곰곰이 따져보았다. 그 1차 책임은 이명박 후보를 공천한 한나라당에게 있었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이라는 인물(상품)을 공천(공식적으로 추천)하여 국민에게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제품)이라고, 온갖 감언이설로 판매하였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선전에 현혹되어 좀 더 깊이 헤아려보지 않고 그들의 말을 믿고 덥석 제품을 샀는데, 사고 보니 곧 형편없는 불량품으로 눈 멀거니 뜬 채 속았다는, 자기 손에 장을 지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잘못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끓이고 있는데, 이를 눈치 챈 자녀들이 먼저 부모를 대신해 촛불을 들고서 불량 상품을 리콜해 달라고 거리로 나간 것이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이즈음 국민 100명 가운데 80명이 속았다고 느끼는 형편없는 불량제품을 판 셈이다. 그래서 먼저 한나라당은 불량제품을 판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한 뒤, 그 책임을 지는 것과 아울러 국민들이 리콜을 원한다면 따라 주는 게 선진민주정당의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이 난국에 누가 책임져야 할까?

 

그 책임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정당을 해산하거나, 당대표를 비롯한 모든 당직자가 당직이나 공직에서 자진 사퇴하거나, 공천한 후보자를 당에서 제명하는 등,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이것이 책임 있는 공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은 그들이 책임지는 진정성을 지켜본 뒤, 다시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계속 맡길 것인가를 냉정히 판단하는 게, 이 총체적 난국을 풀어가는 바른 해법이라고 산골 서생이 감히 충고하는 바다. 이는 마치 당랑거철(螳螂拒轍)인 버마제비처럼,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쓴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 난국을 어물어물 적당히 넘어가다가는 우리 모두에게 더 큰 비극이 올 것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고 싶지 않다. 원래 그런 인물인 줄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한나라당 지도부도 이명박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굳이 호도(糊塗)하여,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속였다. 한나라당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오늘의 총체적 난국에 대국민 사과를 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책임을 져라.

 

백성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이 이 난국에 책임지는 모습을 바로 본 뒤, 두 번 다시 똑같은 사술(詐術)에 속지 않아야 후세에 못난 조상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태그:#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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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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