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까치꽃(개불알풀) 봄맞이꽃처럼 작고 조롱조롱한 꽃송이들이 무리를 지어 핀다. 특유의 은은함으로 봄의 들녘을 수놓는다.
봄까치꽃(개불알풀)봄맞이꽃처럼 작고 조롱조롱한 꽃송이들이 무리를 지어 핀다. 특유의 은은함으로 봄의 들녘을 수놓는다. ⓒ 국은정

봄이 갔다. 두 번 오지 않기에 봄이기에 떠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해를 보내고 다시 돌아오는 봄을 작년의 그 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한번 지나간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계절은 처음이자 곧 마지막이다.

지나간 봄에 더 귀하게 보아주고 살펴주어야 했던 모든 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쉬움과 함께 내 가슴에 오롯이 남았다. 떠난 봄이 남긴 것들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나는 올봄에 찍어 두었던 사진 파일들을 뒤적거렸다. 역시나 내게 제일 많은 인상을 남겨 준 것들은 야생화들이다. 언제나 고맙고, 언제나 날 설레게 하는 꽃들 사진 앞에서 나는 또 바보처럼 웃는다.

"너희들이 없었으면 내게 봄도 없었을 거야!"

노루귀 세상의 소음을 피해 다소곳이 숲의 한 자리를 밝히는 노루귀.
노루귀세상의 소음을 피해 다소곳이 숲의 한 자리를 밝히는 노루귀. ⓒ 국은정


노루귀 깊은 숲에서 피어난 노루귀.
노루귀깊은 숲에서 피어난 노루귀. ⓒ 국은정


노루귀 겨울이 다 물러가기 전 차가운 땅을 뚫고 피어난 노루귀.
노루귀겨울이 다 물러가기 전 차가운 땅을 뚫고 피어난 노루귀. ⓒ 국은정


하얀색 노루귀 하얀 빛의 노루귀.
하얀색 노루귀하얀 빛의 노루귀. ⓒ 국은정


사진 속 꽃들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간절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꽃들을 향한 내 마음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내게 살아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꽃들에 대한 내 사랑의 불꽃은 쉽게 꺼질 것 같지가 않다.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들엔 소유도 없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가 이웃집에 들어가 꽃을 꺾은 후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선생님께 혼이 날 때 했던 말. "이 세상의 모든 꽃은 하느님의 것이 아니에요?"라고 묻던 제제의 이 질문에 읽던 내가 순간 멈칫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보다 먼저 선생님의 꽃병이 비어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팠을 어린 꼬마의 착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봐도 제제의 질문은 틀리지 않았다.

어디 처음부터 인간의 소유가 있었을까. 세상의 많은 나무와 바람과 구름까지 본래는 주인이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그 스스로 존재 가치가 있고,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스스로 그러한 것들'에 가장 잔인한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어느 때부터인지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들이 아마도 자연 에겐 제일 몹쓸 존재일 것이다.

동의나물 노란 꽃잎이 환하다.
동의나물노란 꽃잎이 환하다. ⓒ 국은정


매발톱 속꽃과 겉꽃 빛깔이 달라서 훨씬 더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매발톱속꽃과 겉꽃 빛깔이 달라서 훨씬 더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 국은정


복수초 봄을 노래하는 느낌의 복수초 두 송이.
복수초봄을 노래하는 느낌의 복수초 두 송이. ⓒ 국은정


얼레지 얼레지의 꽃빛에 매혹되다.
얼레지얼레지의 꽃빛에 매혹되다. ⓒ 국은정

인간들의 욕망이 이러한대도 우리 땅 어딘가에서 여리고 가는 꽃대를 밀어올리고, 그 끝에 기어이 꽃송이를 피우는 자연 앞에 어떻게 성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을까.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고자 싸웠을 고통의 흔적 끝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뿜는 꽃들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갖고 있던 근심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권력과 욕망에 얼룩진 인간들의 세상에서 조금은 빗겨나 자기 존재의 절정을 보란 듯이 피워놓고 "나 여기 이렇게 살아 있어요!"라고 온몸으로 보여주는 들꽃 앞에 설 때면 겉모습이 화려한 꽃들을 만날 때보다 훨씬 더 가슴이 뛴다.

내 안에 깊이 감추어두었던 가장 진실한 내면과 마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들꽃을 보고 있는 내 가슴의 고요한 수면에서 작게 동심원을 그리던 떨림은 조금씩 그 파장이 커지면서 급기야 내 존재의 전부를 흔든다. 감출 수 없는 '살아있다'는 기쁨의 정절을 맞보는 것이다. 차갑게 식어가던 용광로에 다시 새빨간 불덩이가 들끓어 오르는 것처럼 나에게 있어 들꽃은 그런 존재다.

저만치 여름의 열기가 성큼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 요즘, 이제 떠난 봄에 만났던 꽃들에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 것만 같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만나게 될 꽃들에 더 진한 기쁨의 인사도 준비해 두어야지!

“잘 가라, 내 안에서 오래 두근거리던 들꽃들아!"

미나리아재비 그늘에서 피어난 산뜻한 아름다움.
미나리아재비그늘에서 피어난 산뜻한 아름다움. ⓒ 국은정


하늘 매발톱 그늘에서 피어나 훨씬 더 청초하고 여린 빛깔이다. 하늘빛을 닮은 붙여진 이름 하늘매발톱.
하늘 매발톱그늘에서 피어나 훨씬 더 청초하고 여린 빛깔이다. 하늘빛을 닮은 붙여진 이름 하늘매발톱. ⓒ 국은정


하얀 매발톱 흔하게 볼 수 없는 하얀색 매달톱
하얀 매발톱흔하게 볼 수 없는 하얀색 매달톱 ⓒ 국은정


할미꽃 유난히 작게 피어난 할미꽃과 대면하다.
할미꽃유난히 작게 피어난 할미꽃과 대면하다. ⓒ 국은정


할미꽃 길가에 피어난 할미꽃 무리.
할미꽃길가에 피어난 할미꽃 무리. ⓒ 국은정


#들꽃#야생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