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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얘기만 들었는데 군 의문사위 결정문으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맞아 죽고 얼어 죽은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명예회복을 못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 올해로 기한이 끝난다니 안타깝네요."

그이가 태어난 것은 아버지가 국민방위군에 끌려가 숨진 뒤다. 그래서 이름을 '유순'이라 지었단다. 박유순(57세)씨는 지난 18일 전화통화에서 지금 심정을 "꿈만 같다"고 밝혔다.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의문사위, 위원장 이해동)가 지난해 '국민방위군'에 끌려가 숨진 아버지 박술용(6.25 당시 24세)씨 사건을 진실 규명하기로 결정하고 국방부가 순직결정을 내린 데 이어 보훈처가 이를 받아들였고, 오늘(19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위패를 봉안하기 때문이다.

딸은 이미 당시 숨진 아버지보다 두 배는 훌쩍 나이를 먹어버렸지만, 아직도 그는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아버지일 뿐이다.

고 박술용씨는 51년 1월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훈련 중 구타당해 초주검이 된 상태로 삼촌 집에 버려졌다가 사흘 만에 숨졌다.

 박술용 씨 부인 이남희 씨는 “한 맺힌 세월 말도 못하지만 이제 기쁘다”고 말한다.
 박술용 씨 부인 이남희 씨는 “한 맺힌 세월 말도 못하지만 이제 기쁘다”고 말한다.
ⓒ 군의문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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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희(78세, 박술용씨 부인)씨는 "남편이 입대할 때 갖고 간 돈 때문에 상급자에게 맞아 부산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시어른께 들었다"며 "설을 쇠고 면회 가려 했는데 남편이 거반 죽어서 시삼촌 집에 왔던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유순씨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두 딸이 살아온 세월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이 안 되지만, 순직이 인정되고 현충원까지 안장되니 군의문사위에 고마울 따름"이라 말했다.

"꿈만 같습니다. 군의문사위라는 게 있어서 가능했어요. 그전에도 10년 넘게 애썼지만 군번이라든가 하는 단서도 없어 외면당해 왔는데, 위원회가 조사를 많이 해주었어요. 결정문을 받을 때는 전국을 다니며 조사한 내용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습니다."

유순씨는 2006년 3월 13일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 소집돼 훈련받다 부상당해 사망했음이 명백하다"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군의문사위에 진정한 바 있다.

군의문사위 조사결과, 국민방위군으로 소집해 훈련·이동 중 사망한 사람의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박유순씨의 이웃과 친지 등의 증언이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은 "징집된 지 얼마 안 돼 군복 입은 사람들이 박술용씨를 트럭에 싣고 와 내려놓고 도망치듯 가버렸다"고 증언했다.

군의문사위는 이를 토대로 박술용씨 거주지인 울산 등지에 국민방위군 교육대가 있었고, 부상자를 치료하던 병원이 부산·마산 등에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 그가 징집됐고 부상당해 치료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박술용씨가 처삼촌 집에 버려진 날짜(51년 2월 13일)와 사망한 날짜(2월 16일)가 국회에서 '제2국민병처우개선 건의안'을 채택해 비전투국민병을 귀향 조치한 시점과 일치했다.

국민방위군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1월 제2국민병으로 국민방위군(1950년 12월 11일 설치법 공포)을 편성했다.

그러나 당시 군 수뇌부 등 간부들이 예산을 유용하여 양곡·피복 등을 빼돌려 약 9만여 명이 추위와 배고픔,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국회는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 해체를 결의했고, 군법회의에 회부된 국민방위군 사령관 김윤근과 부사령관 윤익헌 등 5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그해 8월 12일 총살됐다.
군의사위는 결정문(2007년 10월)에서 "한국전쟁 당시 대다수 국민방위군에게 소집영장 발부는커녕 군번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망인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며 "그러나 '망인이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되었다'는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육군본부 전사망심의위는 이를 받아들여 "고인은 1951년 2월 16일 교육훈련 중 구타로 상해를 입고 사망하였으며, 국방부 훈련 제293호 전공사상자처리규정에 의거 '순직'으로 가결 조치됐다"고 확인했다. 국가보훈처도 지난해 말 심의·의결을 거쳐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군의문사위는 19일 오전 11시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고 박술용씨(국민방위군 51년 사망), 고 김성원 상병(1959년 사망, 병사), 고 박정훈 이교(1996년 사망, 자살)를 비롯한 14명의 유해와 위패를 모시고 '순직군경 의문사 희생자 합동 안장식'을 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의문사위#국민방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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