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풀인지 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개망초은 학교에 있는듯 없는듯,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보통아이들을 닮았습니다.
▲ 개망초 풀인지 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개망초은 학교에 있는듯 없는듯,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보통아이들을 닮았습니다.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토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막 청소지도를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두 여학생이 무슨 큰 죄라고 지은양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앞에 서 있었습니다.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두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약속한 거야. 자, 새끼 걸어."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누가 그거 끼리 하자고 했어?"          
"예? 그럼…."
"주말 잘 보내란 말이야. 그리고 행복하고. 자, 끼리 해. 주말 행복하게 보내기다."
"호호호. 선생님도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당근이지." 
 
두 아이는 전날 방과 후에 하는 영어 수업을 빼먹었습니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던 아이들이라 더욱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지요.
 
"내일이 가기 전에 선생님께 와서 잘못을 빌라고 해."
 
개망초를 보면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 개망초 개망초를 보면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두 아이가 청소시간에 저를 찾아온 것을 보면 '내일이 가기 전에…'라는 말을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두 아이를 교실로 찾아가지 않고 두 아이로 하여금 저를 찾도록 한 것은 오고가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을 했다면 더 이상의 잔소리는 생략해도 될 것 같았지요.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다짐의 약속 대신 행복의 끼리를 제안한 것이 두 아이로 하여금 저를 찾아오게 한 목적에 위배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을 했으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주말을 행복하게 보내라는 달콤한 명령(?)으로 벌을 대신 한 것이 잘한 일 같기도 합니다. 벌을 받으러 온 아이가 오히려 마음 가득 행복을 안고 돌아간 그 일로 해서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교사로서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너 행복하니?" 하고 자주 묻기도 하고, "행복해야 돼!" 하고 아비가 자식에게 하듯 행복을 강권하기도 합니다. 물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행복전선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목적의 함정'에 빠질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개망초가 참 예쁩니다. 하지만 예쁜 눈으로 봐야 예쁘지요.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요.
▲ 개망초 개망초가 참 예쁩니다. 하지만 예쁜 눈으로 봐야 예쁘지요.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요.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몇 해 전,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첫 목적지인 천지연 폭포를 구경하고 나온 아이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실망 섞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진만 못하다는 둥, 저런 것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냐는 둥,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현상은 다음 목적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날 아이들은 줄곧 담임인 나에게 다음 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고, 그 다음 목적지 도착하면 또다시 실망 섞인 말을 내뱉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4월의 제주도는 그야말로 유채꽃 낙원이었습니다. 날씨가 약간 추운 듯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해맑은 햇살이 피부에 와 닿는 감촉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아침 햇살을 머금은 노란빛의 유채꽃과 맑은 물색만으로도 삶을 돌이키게 하는 제주도의 옥빛 바다가 다음 목적지로 가는 사이사이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서 저로서는 사실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보다는 그런 과정 속에서의 일들이 더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다수 아이들에게는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의 과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차가 출발하면서 창밖으로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 일색의 풍경도, 제주도 특유의 오름들이 바라다 보이는 평원에서 한가로이 뛰노는 조랑말들의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별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차에 오르면 다음 목적지를 묻고는 곧바로 음악을 청해듣거나 전날에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눈을 붙이기가 바빴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여행 목적지만을 생각하고 그 과정의 것들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것은 혹시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우리 교육의 잘못된 풍토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 교육의 유일한 목적을 대학 진학을 위한 성적향상에만 두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이 아이들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과 사물에 대한 감수성, 혹은 사회적 자아의 눈뜸과 발전을 위해 기여해야할 과목들마저 고득점 전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우리 교육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개망초가 핍니다. 왜 피었을까요? 또 아이들은 왜 피었을까요? 잘은 몰라도 피었으니 행복해야지요.
▲ 개망초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개망초가 핍니다. 왜 피었을까요? 또 아이들은 왜 피었을까요? 잘은 몰라도 피었으니 행복해야지요.
ⓒ 안준철

관련사진보기


여행 마지막 날, 저는 제주도에서 완도로 향하는 배 갑판 위에서 몇 명의 제자 아이들과 함께 뱃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검푸른 바다가 파도로 밀려와 뱃전에 부서지면서 은은한 옥색이 섞인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움에 취해 있다 보니 배는 어느 덧 뭍에 이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더 가야 완도에 도착하느냐고 짜증스레 물으러 왔다가 저에게 붙잡혀 함께 바다의 아름다움에 취한 그 아이는 배가 뭍에 닿는 것을 매우 섭섭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교육의 효과였지요.

교무실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저는 가끔 이렇게 묻곤 합니다.
 
"너 행복하니?"
 
뜬금없는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도리질 하는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그 벌의 결과가 아이의 행복과 무관하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
 
지난 토요일, 나와 새끼손가락을 건 두 아이가 오늘 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개망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