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1월 <채식하는 사자 리틀타이크>를 고지율 100%(고지율이란 재생지에 폐지가 사용된 비율로 고지율이 높을수록 폐지가 많이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고지율 100%란 폐지만을 이용해 만든 종이라는 뜻으로 나무를 하나도 베지 않았음을 뜻한다) 재생지를 사용해 출간하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관련기사 참고). 결국 의지대로 100% 재생지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단행본용 종이가 아니라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가능하면 단행본용 재생지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단행본용 100% 재생용지가 있다는 곳이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물었더니 "고지율 100%의 단행본용 재생용지가 있기는 하지만 찾는 출판사가 없어서 생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고지율 20%인 재생용지도 수급이 어려운 상태였고(<해리포터> 마지막 권이 환경단체의 압력으로 고지율 20%인 재생용지인 그린라이트에 찍혔으나 초판 이외에는 일반 모조로 찍었고, 수요가 없자 그린라이트는 현재 생산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단행본에 만화용 중질지를 사용할 수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수입 재생지는 사용할 경제적 여력도 없지만, 수입 재생지가 한국으로 오기까지 소비될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보다 바보 같은 짓은 없었다.  

 

종이 가격의 급등으로 재생지 시장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재생용지로 찍는 두 번째 책 <나비가 없는 세상>의 종이 종류를 정하기 위해 제지사에 갔다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최근 종이값 급등으로 재생용지를 문의해 오는 출판사가 간혹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 출판계는 종이값 급등으로 제작비 부담이 부쩍 늘었다. 끝없이 물량을 쏟아내던 대형 출판사들이 종이값 때문에 종수 조정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마당이니 종이값이 출판계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지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종이값이 무섭게 오른 거 아시죠? 그런데 책공장(출판사)은 다행인 게 저번에 썼던 재생용지가 1% 올랐다는 거네요. 다른 종이는 기본적으로 15% 이상 올랐거든요. 이번에도 그 종이 쓰실 거죠?"

 

인쇄 전 인쇄할 종이를 부탁하기 위해 만난 지류업체 담당자에게 들은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 몇몇 출판사에서 단행본용 재생지 관련하여 문의를 한 모양이었다. 제작비 절감을 위한 궁여지책이지만 이런 이유에서라도 재생지 사용이 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점점 좋은 종이, 화려한 종이로 책을 만들려는 분위기가 팽배한 요즘, 편집자가 재생지로 책을 낸다는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겠지만.   

 

살 떨리는 로스율, 어부지리로 종잇결은 맞아! 

 

책공장은 이번에도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고지율 100% 종이에 신간을 찍기로 했다. 단행본용 다른 재생용지가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인쇄 3일 전 연락이 왔다.

 

"그 종이는 국전지가 안 나와요. 사륙전지밖에 없습니다. 일전에 말씀 안 드렸었나요? 이 종이가 단행본용이 아니라서요."

 

아니 이게 웬 날벼락. 종이 로스율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표준규격인 국판형으로 책 판형을 정하고 국전지(규격 936×636mm의 종이. 46전지와 더불어 가장 일반적인 규격의 용지로, 국판형의 책을 만들 수 있는 전지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를 주문했는데 국전지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종이를 주문하면서 국전지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다. 단행본용이 아닌 종이를 사용하니 이런 생각지도 못한 난간을 만나는구나. 그렇다면 국판형을 사륙전지에 찍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 로스율을 어쩔 것인가. 고민이었다. 여기서 고지율 100% 종이를 포기할 것인가.

 

인쇄업체와 디자인업체 관계자들은 별 수 없으니 일반적인 종이를 쓰라고 권했다. 좋은 종이 많은데 왜 꼭 그 종이여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책 만드는 사람이 종이를 한 가지로 고집하면 안 된다는 충고도 받았다.

 

하지만 결국 고집을 부리기로 했다. 사진집 같은 책만 아니면 최대한 고지율 100% 종이에 책을 찍자는 원칙을 세웠고, 이 정도 일로 원칙을 깨면 번번이 원칙을 깰 일이 벌어질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비가 없는 세상>은 고지율 100% 재생용지를 사용했고, 덕분에 종이값도 30%가 더 들고 말았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국판형을 사륙전지에 찍다 보니 종이결이 맞았다는 것이다. 지난 번 <채식하는 사자>는 횡목, 종목을 구미에 맞게 고를 수 없어서 종이결이 맞지 않아 책넘김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종잇결이 맞는 어부리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 참….

 

종이에 책을 맞춰라!

 

 

그래서 결론은 단행본용 고지율 100% 재생용지가 없는 지금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그런 종이를 사용하고 싶다면 '종이에 책을 맞춰라'가 되고 말았다. 인쇄가 돌아가는 사이 인쇄소 부장님을 붙잡고 앉아서 내가 선택한 종이에 로스율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단행본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판형으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매달렸고, 종이 전문가인 부장님은 마지못해 5가지 판형을 추천해 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저 종이를 써야 해요?"라는 퉁을 주시면서. 국산 재생용지가 없다면 별 수 있을까, 있는 것에라도 맞춰서 어떻게 사용할 밖에! 그래도 지난 책을 읽은 독자 중에 '재생지여서 더욱 다정한…'이라는 글을 온라인 서점 리뷰난에 올려주신 분이 있어서 힘을 얻는다. 재생지 사용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똥고집에 동참해주는 독자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이다.

 

<사족1 - 1쇄와 2쇄 사이>

 

동물을 사랑하는 동물애호가들의 애정에 힘입어 이번 주에 <나비가 없는 세상>이 2쇄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종이값이 3%나 더 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하다 하소연을 했더니 지업사 담당자 분의 말.

 

"그래도 이번 달에 찍어서 다행이지 이 종이 다음달 7월에 5% 더 올라요. 물론 다른 종이들 오른 것에 비하면은 새 발의 피지요. 요즘 미모는 10%, 20% 너무 무섭게 올라요."

 

이 말이 위안이 되려나요? 어쨌든 종이값이 계속 무섭게 오르고 있으니 대형 출판사에서도 재생지에 관심을 좀 가져주려나?

 

(재생지 사용에 대해 <나비가 없는 세상> 세 마리 고양이 주인공에게 물었다. "책을 재생지로 만드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에 똑부러지는 성격의 신디 아줌마의 대답! "당연하지")

 

<사족2 - 복사용지로 단행본 만들기!>

 

며칠 전 재생지 활성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번 호를 봤더니 100% 재생지를 사용했더군요. 페이퍼코리아의 종이로 물론 단행본용은 아니고 복사용지인데 거친 재생지 느낌이 많이 납니다.

 

복사용지인데도 국전지, 사륙전지가 다 있다고 합니다. 거칠고 투박한 재생지 느낌을 일부러 원하시는 분도 더러 계시니 그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책공장이 사용한 100% 재생용지는 대한제지의 이플러스입니다. 

 

("책을 재생지로 만드는 것에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에 대한 왠지 애처로운 고양이 추새의 대답 "좋아요 *^^*)

 

<사족3 - 나무가 보존되어야 동물도 산다!>

 

출판사 '책공장더불어'는 동물책만 전문으로 출판하는 동물 전문 1인출판사입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재생지 사용에 대해 똥고집을 부리느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밝힙니다. 나무가 살아 남아야 동물들도 살 수 있거든요!

 

(* 같은 질문에 대한 낭만 고양이 페르캉의 대답.....ㅠ,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비가 없는 세상

김은희 지음, 책공장더불어(2008)


태그:#재생지, #재생용지, #고양이, #재활용지, #1인출판, #나비가 없는 세상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사랑하고, 먹고, 입고, 즐기는 동물에 관한 책을 내는 1인출판사 책공장더불어를 운영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