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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간의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끝내 고시가 강행되고 말았다. 고시 하루 전날 밤, 광화문에는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정부를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절규를 막기 위해, 경찰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경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차벽으로, 명박산성으로, 물대포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려온 정부와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눈치보지 않고 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을 내몰고 있다.

 

새문안 교회 뒤편에 길이 뚫렸다는 소식이 들려 그 쪽으로 가보았더니, 아직 길이 뚫린 것은 아니고 시민들이 전경을 뒤로 꽤 많이 몰려 든 상황이었다. 늘 그렇긴 하지만, 전경들을 앞세운 채 안전하고 편안한 살수차 안에 앉은 지휘관은 시위대에게 막말을 해댔다. 그 껄렁껄렁한 살수 경고를 듣고도, 5월 31일의 살수차가 보이지 않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갑자기 엄청난 수압의 물대포가 쏘아졌다.

 

어지간하면 버티려 했지만, 사람이 맞을 수 있는 물이 아니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한 물대포가 아닌, 시위대를 공격하기 위한 물대포였으니. 인터넷 기사에서 본 대로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주저 앉아, 함께 간 선배들과 부둥켜 안고 등쪽으로 물을 맞았다. 나중에 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내게, 사람들은 웃으며 '안마 한번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하란다. 물론 그 분들도 물 맞으신 분들이고, 웃자고 하는 말씀인 거 알지만 나는 도저히 그 말을 듣고 웃을 수 없었다. 경찰을 앞세운 국가폭력이 이미 도를 넘고 있다.

 

금요일(27일)에는 위성중계가 끊겨 시위 생중계가 중단되었단다. 언론이 통제됨과 함께 경찰은 물대포에 색소를 넣어 끝까지 추적해서 ‘검거’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최근 경찰의 진압뿐 아니라 경찰방송 또한 상당히 강경해졌다. 시위의 ‘해산’에서 ‘검거’로 표현이 바뀐 것은 단순한 단어교체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는 정부가 현재의 촛불시위를 미신고 집회라는 의미에서의 불법시위가 아니라 중대한 불법행위로, 범죄행위로 간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요사이 잇달아 언론에 발표한 경찰의 진압작전-색소 물대포, 화염액 물대포-은 도저히 시위를 한 사람들을 잡는 작전이 아니다. 마치 정부는 갱단이나 조직폭력패를 잡듯, 시민들을 향해 ‘검거작전’을 펼치려 한다.

 

손가락이 잘리고, 방패로 얻어맞고, 물대포를 맞으며 버티는 지금 광화문의 시민들은 그럼 변질촛불들, 과격세력들인가? 보수언론에서는 시민들이 촛불을 버리고 생수병을 던졌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이 공권력의 폭력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을까? 적게 모여도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인 거리에서, 이토록 폭력행위가 적다는 것에 오히려 주목해야 하진 않을까? 

 

손가락이 잘리고, 밀침 당하고, 물대포를 맞는 시민들은 때로 너무 착해서 나를 울린다. 경찰 지휘관들은 폭력을 조장하기 위해, 일부러 전경부대를 교대해 주지 않고 있다. 한 쪽에서 시위대와 격렬하게 충돌한 전경부대를 또다시 시위대와 마주 세우는 게 자주 눈에 띄고있다. 피곤하고 예민한 이들을 자꾸 몰아세우니,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개는 시위대가 전경에게 맞는 일이 보통이지만, 가끔 시민들이 전경을 잡는 경우가 생긴다. 상황이 격렬하다 보니, 그렇게 잡힌 전경들이 몇 대 맞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러나 그 순간, 수많은 손들이 그  전경을 감싼다. 여기저기서 “때리지 마세요, 돌려보내, 무장해제만 시키고 돌려보네”, 이런 소리들이 터져나온다.

 

심지어 그 전경이 부대로 돌아간 뒤 상관에게 당할 폭행을 염려해 헬멧(화이바)을 찾아주자는 사람들도 나온다. 경찰의 물대포와 방패에 수없이 두드려 맞고, 최근 신무기로 떠오른 소화기에 얼굴을 직사당하는 시민들이 전경이 당하는 폭력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처음처럼 시민들은 전경들을 걱정하며 물을 나눠 마신다. 시민들은 처음 촛불을 들고 자유발언을 하며 소통하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전경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앞으로 가서 시민들의 분노와 의지를 대통령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 뿐이다. 시민들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상황들에 유연하게 잘 대처하고 있다. 이런 시민들의 자정능력을 더 눈여겨 보아야 한다.

 

팔순노인에서 초등학생, 시민에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불법’연행과 경찰폭력에 항의하여 경찰내부의 인권위원 14명이 전원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폭력시위가 아니라 경찰의 폭력이 먼저 있었다. 인권문제, 법집행의 합법성에 대한 논란이 자꾸 일자, 경찰은 시청앞광장의 천막을 강제철거할 때 여경 방송을 통해 ‘집단’ 미란다 고지를 했다.

 

집단 고지라는 엄청난 결함을 눈감아주더라도 공무집행 방해, 변호사선임권, 변명의 기회라는 세가지 요소만 고지된 불충분한 고지였다. 단지 어떻게 해서건 시비를 피해보겠다는 경찰의 얄팍한, 너무나도 가벼운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경찰의 ‘불법’행위, 불법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고, 수없는 폭력을 당한 시위대의 대응 폭력만을 문제삼는가?

 

국가의 법집행, 행정활동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먼저 문제삼아야 한다. 애초에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고, 우리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결정 자체가 '폭력'이다. 

 

청와대와 국회의 수많은 정치꾼들과는 달리, 시민들은 촛불의 초심을 지키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길이 뚫려 있다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비를 맞으며 구호를 외치며 행진할 것이다. 국민의 염원을 폭력으로 막지 말라. 국민을 섬기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초심이나 지키길 바란다.


#촛불시위#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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