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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월 촛불집회 과정에서 처음 구속된 윤아무개씨의 변론을 맡은 민변 소속 이광철 변호사와 <중앙일보> 간에 '쇠파이프 발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일 <중앙일보>가 보도한 "시위 구속자 무료 변론 민변 변호사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는 기사에 대한 왜곡 여부에 관한 것이다. 이후 민변의 반박 기자회견, <중앙일보>의 재반박성 후속보도 등을 통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 진실게임의 한 축에 서 있는 이광철 변호사가 5일 <오마이뉴스>에 기고를 보내와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이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말]
애초 간단한 사안이 간단치 않게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갈 길이 멀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갈 길을 점검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이번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중앙일보와의 대회전을 준비하기 위하여 쟁점을 정리해보는 것도 그 맥락이다.

지난 7월 1일 나를 '쇠파이프 변호사'로 낙인찍고 후속기사와 '취재일기'를 통해서는 '거짓말쟁이 변호사'로 낙인찍은 <중앙일보>와 박성우 기자가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 독자께 전달되었으면 싶다.

윤씨 공소장에는 '쇠파이프' 단어조차 없어

이미 지난 2일 오마이뉴스 기사에서도 밝혔듯 이 사안은 6월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모씨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시작한다. 윤씨는 촛불집회 사상 최초로 구속된 사람이고 민변 소속인  나는 윤씨의 변호인으로 재판에 출석했다. 출석에 앞서 검찰이 제출할 예정인 증거를 보니 500쪽이 넘어가는 양도 양이려니와, 그 내용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가령 윤씨 공소장에는 '쇠파이프'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데(이거 굉장히 중요하다. '쇠파이프'를 들지도 않은 피고인을 위한 변론에서 '쇠파이프' 시위를 옹호하는 발언을 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볼 대목이다), 증거기록에는 다른 사람들의 쇠파이프 시위 사진이 다수 등장한다든지, 윤씨가 체포된 이후 시점의 폭력시위 장면이 담긴 사진들이 다수 등장하는 것 등이 그랬다.

나는 변호인으로서 그러한 증거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이 이에 대해 반박하기를 "양형의 자료로 쓰기 위하여 제출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고, 내가 이를 재반박한 것이 이번 <중앙일보>가 기사화한 바로 그 대목이다.

여기서 이 사안의 쟁점들이 등장한다. 하나는 바로 그 대목의 내 변론의 정확한 언급이 무엇인가일 것이다.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 발언의 전모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면, <중앙일보> 7월 1일자 기사의 진위여부가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검증이 필요한 부분은 <중앙일보> 기사 중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는 부분이다. 부수적이지만 하나 더 "당시 시위대 일부가 피고인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프락치 아니냐'고 외쳤습니다. 피고인은 자기가 프락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공명심에 그렇게 하게 됐습니다"라는 부분도 검증이 필요하다.

나는 당시 법정에서 "피고인이 입성이 허름하고 수염도 깍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프락치가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피고인이 프락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버스 위에 올라간 측면도 있다"라는 요지로 변론했다. 그런데 박성우 기자는 "피고인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라고 썼다. 과격한 행동이라는 언어선택에서 보듯 폭력성을 부각시키려는 고의적 왜곡의 느낌이 나는 대목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일 오전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민변에 대해 악의적인 사실왜곡 음해 보도를 한 언론들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일 오전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민변에 대해 악의적인 사실왜곡 음해 보도를 한 언론들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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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과 박성우 기자, 변호사 일반적 진술을 마치 신념인양 보도

쟁점 두 번째는 다음과 같다. <중앙일보>의 편집자는 위 기사의 제목으로  <시위 구속자 무료 변론 민변 변호사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고 뽑았다. 이것이 과연 본문의 내용을 압축하여 전달할 제목으로써 적합한 것이냐, 나아가 이 제목을 선정함에 있어 편집자의 어떤 악의적 의도는 없었던 것이냐를 살펴보아야 한다.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는 제목은 본문의 내용 즉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는 부분과 결합되어 마치 변호인이 변론과정에서 변호인 자신의 신념을 진술한 것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실제 그 기사 보도 이후의 7월 2일자 <세계일보> 사설과 인터넷상에 달린 댓글들 거의 대다수는 내가 그러한 신념을 법정에서 표출했다고 전제하고 변호사로서의 나의 자질과 양식을 비난하는 글들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문제는 내가 당시 법정에서 한 변론의 전부를 확인하는 문제로 귀착한다. 변론의 전모를 확인해 본다면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는 발언이 있었는지, 나아가 당일 나의 변론의 전체의 취지가 과연 <중앙일보> 편집자가 널리 세상에 퍼뜨린 대로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면서 폭력시위를 옹호한 것인지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의 최초 보도도 문제투성이지만, 그 이후 후속보도와 박성우 기자의 7월 4일 '취재일기'는 더 문제다. 앞서 본대로 이 사안의 쟁점은 내가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을 했는지도 문제이지만, 문제의 발언 앞뒤 맥락을 다 거세하고 오직 특정한 부분만을 제목으로 부각시켜 마치 민변 변호사가 쇠파이프를 동원한 폭력시위를 정당화한 것처럼 독자들에게 오인시킨 <중앙일보>의 저의가 더 큰 문제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러한 제목선정의 저의를 지적하는 나와 민변의 문제제기에는 한마디도 해명을 내 놓지 못하면서 내가 법정에서 "비폭력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고 폭력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이라며 변론했다고 보도해 진실게임의 양상으로 몰고 가면서 두 번째 쟁점은 자연스럽게 묻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중앙일보> 후속보도의 큰 문제는 <중앙일보>가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을 사실로 확인했다고 단정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박성우 기자는 "법원의 재판기록을 통해서도 사실로 확인됐다. 법원을 통해 재판 당일 녹음 내용을 확인한 결과 이 변호사는 '쇠파이프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중앙일보>가 재판 당일 녹음 내용을 확인한 것이 아니다. 확인해 보니 박성우 기자가 녹음 내용의 청취를 법원 쪽에 요청하자 법원 측은 소송당사자도 아닌 언론기관에 녹음자료를 들려줄 수 없다고 한 것이고, 이에 대하여 박 기자가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이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요청을 하자 법원 쪽이 이에 대하여 그런 발언이 있기는 하다라고 확인해 준 것에 불과하다.

법원이 그런 확인요청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확인을 해 준 것도 문제는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 불명확하게, 혹은 간접적으로 확인한 것에 불과한 것을 "법원의 재판기록을 통해서도"라느니 "재판 당일 녹음 내용을 확인했다"느니 하면서 마치 나의 발언 전부를 직접 청취한 것처럼 하여 내가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을 한 것처럼 기정사실화시켜 놓았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내게 입장을 물었더니 "노코멘트"라고 했다고 하니 참 말이라는 게 이렇게도 할 수 있는구나, 참 무섭다는 느낌이 엄습해 왔다.

박 기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이 변호사는 기자회견 직후 일부 기자들에게 '솔직히 그런 발언을 한 것도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고 썼다. 그러나 기자회견 직후 몇몇 기자에게 내가 한 발언은 이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촛불집회가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촛불집회에 나오지만, '그간 평화적인 의사표시로 얻은 것이 무어냐, 이제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정부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피고인은 쇠파이프를 든 사람도 아니고 피고인이 폭력적인 촛불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닌데 쇠파이프를 들고 폭력적으로 시위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인하여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된다면 이것은 명백히 부당한 것이다'는게 법정에서의 나의 변론요지였다. '이제는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정부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라는 발언과정에서 '쇠파이프'라는 단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을 전문(傳聞)형식으로 처리하여 책임을 회피할 수단을 마련해 놓으면서도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논지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활용하는 수법이 참으로 훌륭하다. 

 "피고인을 변호하는, 그래서 그의 무죄 내지는 가벼운 형을 얻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변호인이 어떻게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다'고 변론하겠냐"며 <중앙일보>의 보도를 비판하고 있는 이광철 변호사.
 "피고인을 변호하는, 그래서 그의 무죄 내지는 가벼운 형을 얻어내야 할 책임이 있는 변호인이 어떻게 '시위대가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다'고 변론하겠냐"며 <중앙일보>의 보도를 비판하고 있는 이광철 변호사.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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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발언 유무 확인해준 법원, 아예 녹음기록 공개하라

다시 문제의 핵심은 그래서 내 변론의 전모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발언의 전모를 통해서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변론의 전체의 취지가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는 제목을 뽑아도 무방한 것이었는지, 즉 변호인이 일반론적 언급이 아닌 자기의 신념으로서 그렇게 발언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게다.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래서 이 점 법원의 전향적 입장변화를 촉구한다. 법원 내부적으로 녹음한 것이라고 하여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더구나 비록 간접적이라고는 하나 그 발언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앙일보>에만 그 발언의 유무를 확인해 준 것도 무기대등의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 확인은 중앙일보가 "법원의 재판기록을 통해서도"라느니 "재판 당일 녹음 내용을 확인했다"느니 하는 주장의 유력한 근거로 악용되면서 <중앙일보>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민변이나 <오마이뉴스>가 나에게 속고 있다고 썼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는 법원도 분명히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확인을 통해 논란이 불식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증폭되어 버렸다. 문제의 나의 발언 전모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난 이번 <중앙일보> 보도로 변호사로서의 공신력에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피고인의 무죄 내지 형량의 감경을 구해야 할 변호사가 법정에서 쇠파이프를 든 폭력시위를 정당화한, 그래서 자질과 양심에 의심이 드는 변호사'라는 것이 <중앙일보>의 보도를 받아쓴 <세계일보>의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은 점잖은 축이다. 지금 인터넷에서는 나는 아예 죽일 놈이고, 정신없는 자로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욕설은 기본이고, 빨갱이로 덧칠하면서 나와 나의 가족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발언도 다수이다.

<중앙일보>와 박성우 기자에게 묻는다. 그 기사로 인해 이런 사태가 발생할 줄 정녕 몰랐는가? 그리고 당시 내 변론이 지금 내가 이런 극단적인 비난을 받고 이런 곤경을 당해도 좋을 만큼 문제가 있던 발언이었는가? 법정에 있던 그 누구도, 심지어는 박 기자를 제외한 <연합뉴스>와 <경향신문>의 기자조차도 내가 쇠파이프를 동원한 폭력시위를 옹호하는 것으로 듣지 않았다.

이제 이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내 발언의 전모를 들어 보는 것이다. 아니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내 발언의 전모를 듣고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이 있었는지, 그리고 내 발언의 전모를 통해서 드러나는 취지가 과연 내가 법정에서 폭력시위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것이었는지 판가름해보자. 그리고 나서 무얼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는 그 때 가서 이야기할 것이다. 다만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중앙일보>와 박 기자가 내게 가한 '테러'에 확실하게 대처해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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