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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통과했던 문이다. 문루에는 반정에 공을 세운 정사공신(靖社功臣)들의 명단이 편액으로 결려있다
▲ 창의문.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통과했던 문이다. 문루에는 반정에 공을 세운 정사공신(靖社功臣)들의 명단이 편액으로 결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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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첩이 낳은 자식을(孼孫)을 보낸 평성부원군 신경진과 첩의 자식을 심양에 볼모로 보낸 판부사 심열이 지레 겁을 먹고 부복했다. 신경진은 인조반정 당시 선봉장으로 활약했던 혁명 동지이며 병자호란 때는 병조판서를 역임했던 사람이다. 심열은 호조판서와 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혁명동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인조는 갈등을 느꼈다.

"임금을 속인 자들은 모조리 처단하여야 합니다."

대사간 이행원이 강력한 처벌을 주청했다. 청나라 군대가 도성에 들어오기 직전 승지 이행원은 임금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삼전도 항복 후, 부빈객 자격으로 소현세자를 심양까지 호종했다. 그는 명나라와 의리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나의 뜻은 다른 사람의 아들을 대신 보낸 자들을 불경하다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인조가 한 발 물러섰다. 청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은 이후, 청나라를 배격하자는 세력은 지리멸렬했다. 심양에 끌려가 희생되거나 관직에서 물러났다. 반면, 조정을 장악한 세력은 국난엔 아랑곳 하지 않고 일신의 안위에 급급했다. 솔선하여 자식을 위험 지역에 보내야 할 자들이 꽁무니를 뺐다. 이에 공분을 느낀 세력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척화파의 잔존세력과 원리주의자들의 협공에 궁지에 몰린 주화파

"국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들은 모두 조치해야 마땅합니다."

사간원과 별도로 조사를 진행하던 비국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원로급 대신들의 반국가적 행태에 회의를 느끼던 젊은 당상들이 반기를 든 것이다. 썩은 고목은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척화파의 잔존세력과 비국의 원리주의자들이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권력실세를 협공한 것이다.

"경중을 분간하여 논죄하라."
인조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혁명동지와 정권실세를 내치고 누구와 이 국난을 헤쳐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청나라를 멀리 하자는 대신들? 아니 될 말이다. 그들은 발목을 잡고 깊은 수렁에 몰아넣을 것이다. 산성에서의 실기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두 번 다시 그러한 과오는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믿을 사람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자는 대신들이었다. 그들을 모두 내치고 노선을 바꿀 경우 혼란만 가중될 뿐, 실익이 없을 것 같았다. 인조가 장고에 들어가 있는 사이, 남별궁에 있는 오목도가 승지 박노를 불렀다.

원구단, 남별궁터에는 현재 원구단과 조선호텔 건물이 있다.
▲ 원구단, 남별궁터에는 현재 원구단과 조선호텔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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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급이 연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이리 꾸물거리는 거요?"

박노는 청나라의 첩보 수집력에 놀랐다. 박노와 오목도는 서로 잘 아는 사이다. 박노는 빈객으로 심양에 머무를 때 세자관의 정보를 관리했고 오목도는 대 조선 첩보 수집을 총지휘했다. 박노는 오목도에게 청나라의 정보를 귀동냥하기도 했고 역정보를 흘려 오목도의 첩보망을 교란시키기도 했다. 정보에 관한 한 호적수였다.

"오목도가 조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흐름을 읽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정에서 암약하고 있는 청나라 세작의 일일 보고를 오목도가 받고 있단 말인가?"

박노는 섬뜩함을 느꼈다. 조정에서 오고간 말이 오목도에게 송두리째 전해진다는 것은 두려움을 넘어 무서움이었다. 실언 한마디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현실에 등골이 오싹 했다. 어젯밤, 남별궁 뒷문을 통과한 조선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박노는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언제부터 우리 조정이 이 모양 이 꼬라지가 되었나?"

한탄해본들 소용이 없었다. 박노가 심양에 있는 사이 조정은 많이 변해 있었다. 청나라를 극복해야겠다는 의지는커녕 패배주의에 함몰돼 있었다. 청나라에 끈을 대어 가족을 속환하려는 사람과 청나라에 줄을 대어 승차해보려는 사람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빈양문.  창경궁 정전 명정전에서 임금의 처소 사이에 빈양문 회랑이 있다. 왕과 왕후의 생활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이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으나 수많은 충신과 역신이 다녔던 곳이다.
▲ 빈양문. 창경궁 정전 명정전에서 임금의 처소 사이에 빈양문 회랑이 있다. 왕과 왕후의 생활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이므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으나 수많은 충신과 역신이 다녔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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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전하의 조치가 있을 것입니다."
"궁에 돌아가거든 내가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고 꼭 전하시오."

오목도가 조치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재촉이 아니라 압박이다. 창경궁에 돌아온 박노는 오목도의 의중을 임금에게 보고했다. 청나라의 사신 오목도가 남별궁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인조는 지체할 수 없었다.

"영의정 최명길과 이조판서 이경석을 파직하고 병조판서 이시백과 전 판서 남이공은 의금부에 내려 중도(中道)에 정배시킨다고 알려라."

청나라의 압박에 인조가 무릎을 꿇었다. 자기 살을 베어낸 것이다. 사후 통보가 아니라 사전 결재요청이다. 박노를 통하여 인조의 조치를 접수한 오목도는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인질을 대신 보내어 죄를 얻은 최명길이 물러난 것은 용장과 황제의 뜻이다. 특히 용장이 최명길의 태도를 온당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최명길은 용골대에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거듭된 청나라의 지원병 요청과 병선 파견에 갖은 구실을 붙여 지연시킨 것이 괘씸죄에 걸린 것이다. 오목도의 재가를 받은 인조는 정승과 판서를 파직시키고 이시백과 남이공을 유배보내라 명했다. 사건은 여기에서 수습되지 않았다. 정언 권즙이 들고 일어났다.

썩은 가지는 잘라내야 한다

"전 판서 이경석은 처족의 친척을 아들 대신 인질로 보내어 나라를 욕되게 하고 일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조사과정에서 장황하게 핑계를 늘어놓으며 전하를 속이려 하였습니다. 그 죄가 이시백보다 더한데 파직에 그쳤으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에 신이 사실에 의거하여 논핵하려 했으나 동료에게 저지당하였습니다. 신을 체직하소서."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대사간 최혜길이 해명하고 나섰다.

"이경석은 바로 신의 사촌 매부여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이 혐의스러울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료가 핑계를 댄다고 하니 어이없습니다. 신을 체직하소서."
"모두 체직을 불허하니 출사하라."

인조가 진화에 나섰다. 대사헌 남이웅과 장령 홍무적의 주청을 받아들인 모양새를 갖추었으나 속이 탄 것은 임금이었다. 청나라의 실력자가 도성에 들어와 있다. 적전에서 자중지란을 보이는 것은 통치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소방수 역할을 자임한 임금의 노력으로 불꽃은 잦아들었지만 언제 다시 불붙을지 모르는 세력 구도였다.

영의정과 두 판서가 날아갔다. 최명길의 파직은 단순 영의정직의 교체가 아니다. 청나라가 조선 대소신료들을 길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청나라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청나라의 지시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자만 관직에 두라는 것이다.


#인조#오목도#박노#최명길#신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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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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