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무얼 반찬으로 먹어볼까?’라는 생각으로 부엌을 뒤지다가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점이 발견된다. 오늘 아침엔 아내가 출근하면서 찌개나 국, 반찬 등을 만들어 놓고 가지 않았다는 것.
평소 아내는 하루 종일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고, 나는 거의 집에서 일을 하는 편이라 아내의 ‘음식 만들어 놓고 가기’는 우리 집의 일상생활이다. 반면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가사노동을 많이 하게 된다. 예컨대 설거지, 빨래 널고 빨래 걷기, 집안 청소 등이다. 그렇게 나는 아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위 ‘밥값’은 하고 사는 셈이다.
오죽하면 며칠 전 지인이 어떤 모임에 나를 초대하는 전화 대화에서 이런 말이 오갔을까.
“목사님, 내일 모임에 사모님, 아니 바깥 분이신가. 암튼 함께 오세요.”
“바깥 분이 맞습니다 맞고요.”
“하하하하. 그렇군요.”
이제 안성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내용으로 내가 글을 좀 자주 써대었어야지.
암튼 오늘 점심은 아내의 도움 없이 나 혼자 해결해야 할 판이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다보니 답은 금방 나온다.
‘그래, 바로 고추다.’
생각하고 나니 잠시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집 앞 마당에 있는 고추밭으로 향한다. 고추가 아주 탐스럽고 먹음직스럽다. 크기도 큼지막하니 잘생겼다. 뚝뚝 고추를 딴다. 몇 개를 딸까. 아무튼 생각 없이 딴다.
부엌으로 가져가 물에 씻는다. 고추를 물에 씻고 나니 꼭 금방 목욕하고 나온 새색시 같다. 색깔도 파르라니 이팔청춘이 따로 없다. 밥통에서 밥을 푸고 된장 종지 내오고, 숟가락 준비가 끝난다. 젓가락은 따로 필요가 없다. 손으로 찍어 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왠지 궁금해서 고추가 몇 개인지 세어보니 16개다. 오늘 나의 점심을 즐겁게 해줄 비타민 C덩어리가 16개라는 이야기다.
새파란 고추를 구수한 된장에 푹 찍어 입에 넣으니 맵지도 않은 것이 기가 막힌다. 씹어 먹으니 아싹아싹 한 게 미감도 남다르다. 크기도 커서 먹을 게 있다.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표현대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내가 그렇게 먹는다는데 누가 말릴까.
그렇게 고추 반찬으로만 점심을 끝내고 나니 고추가 4개씩이나 남는다. 정확하게 12개로 오늘 점심을 해결한 것이다. 작은 고추였으면, 한 끼에 해결될 것을 워낙 고추가 커야지 말이다. 점심을 끝내고 나니 설거지도 수월하다. 밥그릇과 숟가락만 설거지 하면 되는 것이다. 된장 종지야 놔두면 될 것이고, 다른 그릇은 손 댈 일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래서 시골에 사람들이 살려고 하나 싶다. 시골 흙집에 사니 텃밭 가꾸는 맛이 쏠쏠하다. 아내가 주로 가꾸는 텃밭(바깥마당, 뒷마당, 앞마당)을 소재로 내가 글을 자주 쓰게 되는 것도 행운 중 행운이다. 지인들이 찾아왔을 때 “아내가 가꾼 것”이라고 생색내며 채소를 따가라고 하는 기쁨도 대단하다. ‘곰이 재주넘고 사람이 돈 번다’는 속담과 같이 재미있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일 점심도 고추 하나로 해결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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