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임기 시작 5개월째를 맞은 이명박 정부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어륀지'로 시작된 영어몰입교육 논란, 대운하 논란, '강부자'(강남 땅부자)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인맥)까지 등장한 인사파문, 광우병 파동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우는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정권 초기부터 시작된 고유가 행진과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한중 정상회담 때의 푸대접 논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강행 등 외환까지 겹쳤다.
'머피의 법칙'과 '1:29:300의 법칙'요즘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다시 올랐다면 악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머피의 법칙'이란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다' 또는 '잘못될 수 있는 일은 하필이면 최악의 순간에 터진다'는 뜻이다.
대북 강경책 대신 전면적 대화재개 카드를 꺼내든 날, 하필이면 금강산에서 북한군의 총격에 여성 관광객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 것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식을 전한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이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불운을 겪고 있다(star-crossed presidency)"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좌파정권 10년의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역대 대통령 중 취임 후 100일 동안 가장 빠른 속도로 지지율이 하락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게다가 100여일만에 청와대 참모진을 전면 교체하고 부분 개각을 하는 '불운한' 기록까지 남겼다. 취임 직후 4.9총선 때문에 '허니문(밀월기간)'을 누리지 못한 것도 이 대통령에게는 불운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머피의 법칙'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의 사고가 일어난 경우, 그 배경에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29개의 사건이 있으며 다시 그 뒤에는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은 300건의 징후가 있다." 한때 인터넷에 화제가 됐던,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H.W.하인리히 법칙'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겪고 있는 내우외환의 위기는 결코 우연히 발생한 게 아니라 29번의 사건이 있었고, 다시 그 뒤에 300번의 경고가 축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운'은 순수한 '우연'과 다르기 때문이다.
취임도 하기 전에 숭례문이 화염에 휩싸여 전소된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라고만 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 안전 대책 없이 숭례문을 개방한 것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이 화마를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명기 강행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일본측은 잊을 만하면 독도 문제를 분쟁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선언, 알아서 면죄부를 준 것이 이번 사태를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금강산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12일이 지났지만, 북한은 남한의 거듭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현장조사를 거부하고 있다. 북한측의 비협조에 대한 비판은 별개로 하고, 정작 대화가 필요한 시점에 비공식 대화 창구조차 뚫지 못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첫 단추를 잘못 꿴' 대북 정책이 화근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수위 시절 북한과 대화창구 노릇을 했던 통일부를 폐지하려고 했고, 현재도 통일부의 위상은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참의장 내정자는 '선제타격' 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붙였고, 지난 3월말 통일부장관의 "핵 포기 없이 개성공단을 확대할 수 없다"는 발언이 북한을 자극해, 당국간 대화가 중단된 상태다.
그렇다고 '운 타령'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머피의 법칙에 대한 판디크의 추론'은 오히려 "최악이라고 해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2007년 '샐리의 법칙'이 그리운 이 대통령이명박 대통령이 원래부터 '운이 없는 사나이'는 아니었다. 한나라당 경선 때와 대선후보 시절, 이 대통령에게 악재가 생길만 하면 다른 큰 사건이 발생해 덮어주는 행운이 뒤따랐다. 이른바 '샐리의 법칙'이다.
2007년 초 범여권 선두주자이면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 중 한 명이었던 고건 전 총리가 자진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탈당해 당내 중도성향의 표를 독식하는 '불로소득'을 올렸다.
경선 때는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BBK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남북정상회담 발표 등 초대형 이슈가 터지면서 여론의 관심을 돌려놨다. 본선에서도 신정아 스캔들, 삼성비자금 사건, 태안기름유출 사고 등 대형 사건들이 쏟아져 뜻밖의 행운을 이어갔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 라이벌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도가 아니다"는 말로 구원에 나섰고, 'BBK 동영상' 공개 등 대선막판까지 악재가 터졌지만 위기감을 느낀 보수층이 결집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반면 범여권은 선거기간 내내 통합작업 실패를 거듭하면서 무기력한 캠페인을 펼쳤고, 결국 이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표 차이(530만표)의 압승을 안겨줬다.
휴가 떠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법칙은?취임 하자마자 불운을 겪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2007년 '샐리의 법칙'이 그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통령의 운은 다 했을지 몰라도 나라의 운은 다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명박 법칙'이 나라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째를 맞고 있고, '국민의 눈치'를 보던 이 대통령은 고심 끝에 나흘이라는 짧은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왜 자신에게 연이어 악재가 발생했는지, 냉정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간단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라는 '메이어의 법칙'에서 현재의 난국을 풀어나갈 해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이 대통령은 "뛰어난 판단력은 쓰라린 경험에서 생기지만 그 경험은 형편없는 판단력에서 생긴다"는 '힉돈의 법칙'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했다. "아무리 잘못된 것도 옳게 보일 수 있다"는 '스콧의 제1법칙'에 너무 매몰돼 대규모 촛불집회를 불러왔다.
이제는 "실용 1㎏이 이론 1t의 가치가 있다"는 '부커의 법칙'만 신봉할 것이 아니라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는 장자(莊子)의 깨우침을 되새겨야 한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신임 비서관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왜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독려했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은 "상사보다 자신이 더 유능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상사가 깨닫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급부하의 제1법칙'을 과감히 버릴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이 대통령에게 '직언'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