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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993년에 출간된 초판과 2003년에 재출간된 엽서
엽서1993년에 출간된 초판과 2003년에 재출간된 엽서 ⓒ 박균호

 

헌책방을 가는 즐거움은 우선 책을 싼 값에 살 수 있다는 것이겠지만 헌책방 마니아들은 절판되어서 이제는 새책으로 구할 수 없는 희귀본이나 귀중본을 구하는 재미를 우선으로 칩니다.

 

그런 헌책 마니아들 사이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엽서>는 단연 최고 우선 목록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마도 <엽서>는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엽서>는 잘 알려진 대로 20년 동안 옥고를 치른 신영복 선생님이 친구나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를 초고와 똑같이 영인한 책이며 가까운 지인들끼리만 나눠가지자는 의도에 걸맞게 자비 출간의 형태로 한정판만 이 세상에 나왔었지요.

 

이 책은 무엇보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자필 엽서를 그대로 영인한 터라 마치 독자들이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엽서를 받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생생함과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입니다.

 

그러다가 2003년 새로운 인쇄기술로 더욱 완성도를 높여 결정판의 형태로 재출간되었지만 1993년에 나온 까만 표지의 초판이 역시 이 책의 풋풋한 매력을 더욱 잘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엽서>에 200편이 넘는 엽서와 조각글, 그림이 실려 있지만 그중 백미는 역시 선생님과 6명의 초등학생들과의 우정을 그린 '청구회 추억'입니다. 청구회라는 명칭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의 명칭을 따서 지은 이름이며 그들과 선생님은 그저 100원어치의 문화 빵을 나눠먹고 아이스케이크를 함께 쭉쭉 빨고 <로빈 후드의 모험> <거지왕자> 따위의 책을 같이 읽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저 만나면 즐거웠고 골목청소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걱정과 어려운 일을 서로 상의하면서 우정을 키워나갑니다. 그러다 선생님이 구속되면서 자연스럽게 청구회와의 추억은 막을 내리게 되는데 '청구회 추억'은 현대 수필의 백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감동도 감동이려니와 문학적 완성도도 뛰어난 작품입니다.

 

 2008년 7월30일 나온 <청구회 추억>
2008년 7월30일 나온 <청구회 추억> ⓒ 돌베개

 

2008년 7월 30일에 출간된 <청구회 추억>은 <엽서>에 수록되었던 것을 따로 떼어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 입니다. 신영복 선생님과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영문학자 조병은 선생님이 영어로 번역을 해서 영문이 곁들였으며 김서현님이 예쁜 삽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책이 좀 팔린다 싶으면 '청소년을 위한 ~' 따위의 제목으로 얄팍한 돈벌이를 하려는 꼼수나 하드커버로 꾸며서 한정판이라는 상술을 뻔뻔스럽게 발휘하는 여타의 것과는 다릅니다. 다른 책에 수록된 수필 한 점을 한 권의 책으로 엮기는 했으나 그 진득한 감동이 사라지기는커녕 수십 년 만에 만난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만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예쁜 삽화가 곁들여 있고 신영복 선생이 직접 낭독한 오디오 북도 딸려있습니다.

 

한편 이 청구회 활동은 선생님이 구속되고 검찰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엉뚱한 오해를 받았고 '청구회 노래'의 한 구절 즉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의 '주먹 쥐고'라는 것은 국가 변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추궁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들과의 친목모임이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는 단체로 둔갑하게 된 것이죠.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아서 이 책을 처음 읽은 수년 전에는 어의 없어했지만 최근의 촛불집회의 배후에 좌익공산주의자들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요즘 처지가 그때와 별반 다름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www.yes24.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청구회#신영복#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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