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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은 인류역사상 절대 사용되어서는 안됐던 핵무기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했다. 히로시마에서 42만 명, 나가사키에서 27만 명이 피폭을 당했으며 이중 10%는 전쟁 피해자이면서도 다시 원자폭탄까지 맞아야 했던 불행한 조선인들이었다. 약 7만 명이라고 추정(이치바 준코, <한국의 히로시마>)되는 조선인 피해자 중 4만 명이 사망했고, 간신히 살아남은 3만 명 중 2만 3천 명 가량이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폭피해자 생명과 인권 팔아 경제부흥 꾀한 한국 정부

 원폭의 후유증으로 평생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던 고 김형률씨.
원폭의 후유증으로 평생동안 병마와 싸워야 했던 고 김형률씨. ⓒ 휴머니스트
일본은 1952년부터 자국내 원폭피해자를 위하여 건강진단, 의료비 급부 등 제반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968년 '특별조치법' 이후, 1994년에는 '피폭자 원호법'을 제정하여 원폭피해자에 대한 종합적인 사회복지정책을 국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단 한 번의 실태조사도 한 바 없으며, 어떠한 보상과 책임도 진 바 없다. 원폭피해자와 관련한 정부 부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1965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한일협정을 체결하여 일본정부로부터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등 5억 달러를 제공받는 대가로, 일반 국민의 청구권까지 일괄타결해 버렸다. 이로써 일제의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정책으로 인한 한국인 피폭자 개개인의 고통과 인권을 박탈하고 짓밟아 버렸다. 그나마 일본으로부터 지원 받은 자금은 피해자 보상이 아니라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에 투입했다.

단지 1990년 일본으로부터 약 40억엔을 지원받아 원폭피해자 복지기금을 조성함과 함께 국고에서 약간의 병원진료비와 사망장제비 등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 전부다. 

지난 2004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를 통해 '원폭피해자 2세의 기초현황 및 건강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조사보고서에서는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와 2세의 실태를 조사하고 일본의 정책과 실태와 함께 한국정부에 1세와 2세에 대한 보다 면밀한 국가적 차원의 진상조사와 의료·생계 지원 등의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은 법적 효력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담당부서인 보건복지가족부에서도 어떠한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당시 원폭피해자 2세로서 중증의 질환을 겪고 있던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김형률씨가 서른 다섯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미 원자폭탄의 직접 피해자인 1세대 중 90% 이상이 사망했고, 남은 분들의 여생도 얼마가 될 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에서는 한 차례도 국가적인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 이제 와서 조사를 벌인다 해도 이미 사망한 분들이 다수라 엄밀한 조사를 벌이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여기서 더 늦춘다면 이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이며 역사와 인간에 대한 범죄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 생존자는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회원수를 기준으로 할 때 2200여명쯤 되며 이들의 2세는 7000여명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미 1세 피해자의 90% 이상이 사망한 점을 감안하면, 2세대 자녀의 수는 최고 8~9만 명까지도 추정해볼 수 있다.

유전질환 및 원폭병과 유사 증상 보이는 2세 환자 많아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방사능의 영향을 설명하는 코너에 서 있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방사능의 영향을 설명하는 코너에 서 있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 전은옥

원폭피해자 2세 가운데는 선천적 기형을 안고 출생하거나, 현재 유전적인 질환 및 원폭병과 유사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가 많다. 사례를 보면 희귀· 난치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도 있으며 과도한 진료비와 질병으로 장기간의 노동능력 상실 등으로 생존권 자체가 위협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또 원폭피해자의 자녀라는 사실만으로 결혼이나 취업 등 사회의 편견과 차별로 인한 정신적 고통도 겪고 있다. 그러나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복지 및 의료지원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라, 이들의 생존권 및 건강권의 문제는 완전히 방치되어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며칠 후면 일본에서는 대대적으로 피폭63주년 위령제와 다양한 심포지엄 행사와 대회를 개최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피해자 단체가 기금을 출연해 각 지역별로 소박하게 희생자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러한 한일간의 원폭피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 차이 때문에 마치 원폭피해자는 일본인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고, 국내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한국인 피해자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일본인 피해자는 그 피해의 정도와 역사적 의미가 다르다. 한국인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식민정책으로 인해 고통받고, 일본으로 떠밀려가 원자폭탄까지 맞아 생명을 유린당했으며, 피폭 후에도 적절한 치료와 구호, 보상을 받지 못했다. 한·일·미 3개국 정부에 각각의 책임이 있지만 이 중 어느 한 곳도 자국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미국의 원폭투하로 인해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가족이 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던 사람들, 큰 후유증 없이 잘 살아왔지만 자녀 세대와 손자손녀 세대에서 원인미상의 질병이 발생한 사람들, 사회적 인식의 척박함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부역자' 또는 '문둥병환자' 취급을 당하며 사회적 차별 속에서 개인의 인권을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폭 사실을 숨겨야 했던 사람들…. 더욱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과거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아무리 억울해도 국가를 대상으로 항의를 한다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원자폭탄을 아직도 몸에 안고 사는 이들

지금까지 원폭피해자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조금이나마 드러나게 된 배경, 또 의료비나 장제비 지원을 받고 일본에서 피폭자수첩을 받을 수 있게 된, 여기에도 다소 문제점이 있으나 원폭피해자의 인권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면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피해자들 스스로가 목숨을 걸고 싸운 덕분이다. 이 모든 역사적 배경에서 한국정부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싸움 속에 시간은 벌써 63년이 흐르고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고령화되어 이제 10년 후면 거의 명맥이 끊길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일본도 미국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서 '골치 아픈'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죽기만을. 그러나 원폭피해는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특성상 유전자 돌연변이 등 그 피해가 1세뿐 아니라 2세에게까지 미칠 가능성이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한국 정부도 '유전성 여부는 과학적으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과학의 수준이 미처 거기까지 다다르지 못해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지, 방사선의 영향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님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원폭피해자 2세· 3세의 몸이 이미 그것을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몸으로 과거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수탈정책과 탄압 그리고 핵무기 사용이라는 미국의 인류역사 미증유의 엄청난 범죄행위의 모든 결과를 겪어 내고 있는 2008년의 원폭피해 2세· 3세 환자들이 여기 있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차별에 시달리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솔직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식이 아픈 것이 자신 때문이라며 자책하는 1세대 부모가 있고, 자신도 아프면서 또 3세나 4세에서 질병이 나타날까봐 늘 불안에 떠는 2세들이 있다. 지금 아픈 사람도, 지금은 건강하지만 언제 아플지 모르는 이들도, 1945년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지배를 받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매년 8월이면 광복 몇 주년 운운하면서 많은 국가예산을 들여 전국에서 다양한 기념사업이 펼쳐진다. 그러나 일제 전쟁범죄의 피해자로, 수탈정책과 강제동원, 원폭 피폭, 한일 양 정부의 완전 방치와 무대책· 무지원, 사회적 차별과 냉대 등 인권을 유린당한 역사의 산 증인들인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은 아직도 모든 아픔을 개개인이 떠안고 살아간다.

원폭피해자 문제는 '인권'과 '생명'의 문제

 2일 오후, 국회민원실 의안과에 한국인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청원서를 제출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김용길 회장과 '공동대책위원회' 강주성 집행위원장.
2일 오후, 국회민원실 의안과에 한국인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청원서를 제출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김용길 회장과 '공동대책위원회' 강주성 집행위원장. ⓒ 전은옥

한국인 원폭피해자 문제는 단순한 피해자의 탄원에 머물지 않는다. 정치적 거대담론에 휩싸인 추상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인권'의 문제이며 생명과 생존의 문제다. 더불어 올바른 역사와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가 반드시 주목하고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대한민국 정부와 한국사회 전반이 반성해야 한다.

이토록 가까운 곳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려온 원폭피해자들에게 우리는 너무나 무관심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원폭피해자 2세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금도 한국인 원폭피해자 1, 2세들은 제도적 지원뿐 아니라 사회적인 편견과 인식 수준 자체가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연일 정치 공방만 오가는 가운데, 18대 국회는 아직 원 구성도 하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일 처리 하나 못하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와 원폭 공대위에서는 지난 7월 2일 다시 한 번, 국회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피해자 자녀의 진상규명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청원했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삶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올바른 역사인식과 인권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 고령화된 1세대뿐 아니라, 아직은 비교적 젊은 2세 중에서도 환자들에게는 기다릴 시간도, 기다릴 힘도 없다. 자기 국민의 생명을 언제까지 방치할 생각인가.

정부와 국회, 그리고 보건복지가족부는 다시 한 번 2004년 발간된 국가인권위원회의 발간보고서를 공부하기 바란다.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원폭2세환우 김형률 평전>도 꼭 단체로 구매해서 일독해 주기를 부탁한다.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도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특별법과는 별도로 지금 당장 기존의 법안이나 사회복지적인 틀을 활용해서라도 원폭피해자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자활능력을 상실하고 아픔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선지원'의 원칙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에 의료비 지원과 생계지원을 해주어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늦은 대책이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환우들의 삶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원폭피해자에 무관심하고 무지하고 냉대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그 아픈 이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원폭피해자#특별법#2세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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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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